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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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토마토가 공격하기 전까지는 여느 오후와 다름 없었다. 다행히 젊은 소서러(sauceror)는 후라이팬으로 이 토마토를 물리치고 '경멸의 왕국'에서 모험을 계속했다.
이 상황은 최근 13만명에 달하는 온라인 게이머들이 열광하면서 즐기고 있는 별난 온라인 게임 '경멸의 왕국(KoL : Kingdom of Loathing)'의 한 장면이다.  

이 게임은 고해상도 그래픽으로 무장한 '둠3'나 '에버쿼스트' 같은 최신 게임들과 달리 초기 컴퓨터 게임처럼 아주 단순하고 막대기 같은 형상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KoL 매니아들은 바로 거기에 이 게임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테네시주 멤피스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필 쇼워터도 이 게임을 즐긴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단순한 인물과 제한된 게임시간에 매료됐다. KoL을 시작한 이후 '에버퀘스트'에는 한번도 접속하지 않을 정도"라며 "하루 한시간 정도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무료라는 점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1년 반 전 등장한 이 게임은 독립 게임 개발업계에서 특이하면서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나 ‘엘 마리아치’같은 저예산 독립영화가 독립영화제작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처럼, 수십억 달러를 들여 속편을 제작하는 게임 개발시대에 최소비용으로 제작한 독립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KoL은 아리조나에 거주하는 28세의 개발자 잭 존슨이 개발했다. 그는 전문 개임개발자는 아니지만 대학졸업 이후 독자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왔다. 자신의 게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것에 오기가 발동해 새로운 게임으로 반응을 살펴보겠다는 것이 KoL의 개발 배경. 그는 "유치한 자존심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존슨은 거의 2년동안 쉬지않고 게임 개발에 전념했다. 무료로 게임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웹사이트에서 기부금을 받고 티셔츠 같은 관련 상품을 판매해 개발 비용을 마련했다. 벌이가 괜찮아 몇 달전 존슨은 개발자로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KoL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야채혐오증을 가진 14세 소년이 창조적인 게임 자문역을 맡아 개발된 이 게임은 ‘던전 & 드래곤'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며 한 번쯤 컴퓨터 게임을 해봤다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줄거리로 돼있다.

모험길에서 괴물과 싸우며 보물을 찾아 경험치를 쌓는 것이 기본적인 구성이다. 다른 온라인 게임처럼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공동으로 길드나 클랜을 만들어 아이템을 공유하거나 다른 클랜을 공격할 수도 있다.

여타 게임들과의 차이점은 그 세계관에 있다. '파스타맨서(Pastamancers)'와 '아코디언 도둑' 등이 주인공 캐릭터이며, 칼을 든 '아스파라거스 통조림'과 철자 틀린 공동묘지에서 '방황하는 좀비' 등이 몬스터다.

지난 석달동안 이 게임에 심취해있다는 '크레이지 애니'라는 대화명의 게이머는 "친구를 통해 우연히 이 게임을 알게 됐다. 특히 죽지 않는 마카로니의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라며 "기존 판타지 RPG 게임과는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게임에도 복고 바람이 분다 이런 반응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KoL이 최근 히트작 게임들보다 1970년대 중반이나 1980년대의 어드벤쳐게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어드벤처', '거대한 동굴(Colossal Caves)', '조크(Zork)'같은 컴퓨터 게임도 한 명이나 소수의 인원들이 틈나는 대로 개발해 대학 전산망이나 오늘날 인터넷의 원조인 알파넷에 무료로 공개한 것들이다.

이 게임들은 그래픽 기반 시스템이 나오기 전에 텍스트 형태로 개발됐지만 유머감각이 넘친다. 1970년대 후반에 애플2가 출시되고 1980년대에 PC의 보급되면서 이 게임을 즐긴 세대들은 이같은 독특한 게임양식에 빠져든 것이다.

존슨은 현재 하루 1000명 정도의 사용자가 신규로 등록하고 있으며, 아직 게임개발회사들과의 공식적인 접촉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MS와 몇몇 게임관계자들과 몇차례 얘기가 오고 갔다고 존슨은 밝혔다.

이 게임은 게임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고나 시장조사 없이도 게임 개발업체들이 꿈꾸는 2가지를 이뤘기 때문이다. 엄청난 게임 공동체를 이룬것, 그리고 평소 게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까지 게임으로 끌여들였다는 점이다.

KoL게임 공동체는 주로 채팅 보드와 포럼, 게임 아이템 교환 시장으로 구성된다. 게이머들은 가상공간에서 게임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거나 아이템을 주고 받고 함께 퍼즐을 풀기도 한다. 또한 팬사이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오프라인 만남을 갖기도 한다.

존슨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부자나 포럼리스트를 참고할 때 여성 사용자도 40% 정도인 것으로 보고있다. 과대한 추측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 및 컴퓨터 게이머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약 39%다. 여기에는 온라인 포커나 백가몬 같은 게임 사용자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업적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여성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온라인 게임인 애버퀘스트의 경우 여성 비율은 겨우 15% 정도다. 그동안 게임 개발사들은 대부분이 남성인 게이머 인구를 여성으로 확대해보려고 상당히 노력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심즈 온라인'도 그중 하나다. 심즈 온라인을 개발한 EA는 기존 심즈 게임의 매력을 이용해 온라인에서도 돈을 벌어보려 했다. 이 게임은 10만 명 정도의 게이머에게 관심을 끌었지만 기대에는 훨씬 못미쳤다. 존슨은 KoL 후속작으로 다른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KoL도 계속 개발하고 있다. 그는 만화책과 카드 게임을 연구하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데, 현재 KoL의 새로운 컨텐트를 개발하고 있다. '장난꾸러기 소녀 마법사(Naughty Sorceress)' 퀘스트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 중 하나.

게이머들은 그동안 '스톤 마리아치(Stone Mariachis)', 'F8 피클 핑거(Fickle Finger of F8)', '비어 배터(Beer Batter)' 퀘스트를 통해 게임을 즐겨왔고, 이제 소녀 마법사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존슨은 "나는 집안을 청소하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다시 컴퓨터에 앉곤 한다. 게임개발은 창의적인 작업이므로 일정표를 짜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John Borland ( ZDNet Kor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