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단초는 이렇습니다.
-유저가 체감하고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표 중, 레벨-업과 스킬 향상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는가?
-만약에 존재한다면 그것이 상대 유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사회적인 개념을 내포할 수 있을까?
입니다.
계기는 명확하지만 왜 이런 게 필요한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실제로 게임으로 구현이 된다면 무척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플레이어는 거대한 도시, 그러니까 거대하지만 그만큼 황량한 낯선 곳에서부터 무턱대고 게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작은 길드에 배속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길드가 아닌 '데모스'라고 부르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이 아이디어는 고대 아테네의 도시국가 개념에서 빌려왔습니다)
데모스는 고작 100~150명정도되는 작은 규모의 유저 집단을 말합니다.
(일반 필드가 아니라 엄연히 이름이 있는 마을입니다)
처음엔 유저가 데모스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데모스를 이탈하여 다른 데모스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유저는 데모스의 비호 아래 초반부 레벨-업 단계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데모스마다 가지고 있는 퀘스트의 형태가 조금 다른데, 어떤 훈련교관(NPC)을 고용하느냐에 따라
그 NPC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퀘스트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데모스는 이렇듯 유저들로부터 걷은 세금을 통해 NPC들을 직접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이 세금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로 의원들입니다.
일정 레벨에 도달하거나 세금을 많이 내서 기여도가 높은 유저가 의원이 될 자격을 얻습니다.
단, 데모스마다 의원을 선거로 뽑거나 추첨을 통해 선출하게 되는데, 이건 기존 의원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투표라는 건 일정 시간대, 일정 장소에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니라 데모스 회원이라면 누구나 팝업으로 메세지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팝업으로 띄울 의제는 물론 의원들이 최소 다섯 명 이상 동의해야 할 테지만요.
그리고 이런 투표 시스템은 의원을 추방하는데도 쓰입니다.
그 유명한 도편추방제가 바로 그것이죠.
유저가 도달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휘는 비단 의원 뿐만이 아닙니다.
전투를 지휘할 권한이 있는 장군이나 데모스간의 외교를 맡는 외교관직 역시 데모스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저는 작위와 계급을 목표로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이와같은 데모스는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가 공존하는데, 데모스들끼리 연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동맹관계에서 적을 협공할 수 있는 것이죠.
3개 이상의 데모스가 모이면 토리티스
다섯 개 이상의 토리티스가 모이면 필라이, 즉 국가 단위가 됩니다.
이런 체계는 대규모 전투가 능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고대 아테네에는 군주제와 참주제 그리고 민주정이 단계적으로 혹은 혼동되어 사용되었는데,
의장을 선거로 뽑느냐 추첨제로 뽑느냐 혹은 연임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등의 옵션만으로도
유저들은 충분히 특색있는 데모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심지어 의장이 두 명 이상일 수도 있는데, 이건 초창기 스파르타도 마찬가지였죠).
데모스간의 전쟁 역시 중요한데, 별도의 필드에서 공성전을 펼치더라도 마을을 직접 약탈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만 국고의 세금을 한꺼번에 걷어가버리거나 정복자들에게 일정 세율로 세금을 받쳐야만 합니다.
물론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 따르는 별도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지만, 뭐 데모스는 언제든 재정복이 가능하니까요.
일단은 깃발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습니다만, 어쨌든 구성원 개개인의 사유재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만약 데모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유저는 언제든 이곳을 떠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적인 스킬트리를 완성했다면 다른 데모스에서 장군직을 제의받고 높은 연봉으로 고용될 수도 있고, 스스로 용병을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대규모 전투에선 주위에 아군이 있는 만큼 공격력과 방어력에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쨌든 규모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겠죠.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분명 정해진 스토리가 아닌 유저들의 능동적인 이야기 생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면 가독성이 문제가 될 거 같아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결론은 나 좀 데려가 이 사람들아...
데모스 개념은 현실에서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가족이 핵가족화되고, 요즘은 다시 혼자 사는 인구가 늘고 있잖아요. 저는 사람들 심리 저변에 '돌아갈 곳'에 대한 향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돌아가서 고독을 달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대변 해주는 게 데모스인 것입니다. 데모스에 얽메일 필요는 없고, 필드의 광활함을 데모스가 대신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돌아갈 곳에 대한 근거지를 데모스가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맵을 재활용하는 의미도 있고, 또 퀘스트나 시나리오가 받쳐주지 못하는 빈곳을 메꿔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요. 단지 레벨이 높다고 해서 누구나 데모스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쌓고, 신입을 도와주면서 활동성을 키우고 같은 소셜적인 부가활동의 근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데모스와 길드가 다른 점은 자발성과 강제성인데,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 각광받는 요즘, 일부러 강제성을 준 건, 운명에 대한 수긍 혹은 인원수와 새로운 유입의 텀을 제한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입니다. 길드는 자발적으로 들어간 만큼 자발적으로 나오기도 쉽고, 필요에 따라 취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유입의 텀을 주고자 한 이유는 신입이 충분히 기존 유저들과 동화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섭니다. 데모스 인원을 100~150명으로 묶어두려는 것도 그만큼 소수가 모일 때, 커뮤니티가 활성화된다고 보고, 그 규모의 영향력이라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데모스가 잘나간다고 해서 거기에 합승하려는 사람을 배제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또 그렇게 돼야만 데모스 시스템이 무리없이 잘 돌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길드의 개념과는 접근방법이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당장에 떠오르는 걸림돌이 두가지가 있는데요.
도시국가가 개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도시 간 이동의 편의성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에서 소위 '서울'에 해당하는 수도급 도시들에만 사람이 바글대고 다른 도시는 휑한 걸 볼수 있는데,
대부분의 게임은 '주거'의 개념이 없어서 생활을 해결할 필요가 없고 포탈 등의 시스템을 통해 도시 간 왕래가 편하게 되어있어 발단한 단체를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처음에 데모스에 랜덤하게 배치하는 것 외에,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해당 집단을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티베이션을 부여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요?
결국 나중에는 DK연합 소속 길드1, 길드2, 길드3 뭐 이런 느낌으로 나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두번째는, 시스템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형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리니지나 와우같은 게임을 보시면 별도의 카페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요 안건은 카페에서 논의해서 결정하고 자잘한 주제에 대해서만 투표를 던진다던가 하면 해당 시스템이 '1길드당 1거점'이라는 제약 외에 기존 길드 시스템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를 알기가 어려운데요.
요컨대, '데모스 = 사회구조를 제시하고 시스템적으로 지원하는 길드 시스템'이라는 느낌인데...
사회구조의 설정에 대한 자유도를 높이면 결국 그냥 이름만 바뀐 기존의 길드시스템일테고,
자유도를 낮추면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