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세기와 대항해시대(온라인)를 평하는데는 약간의 배경 경험이 필요합니다.

두 게임은 항해 게임이라는 것이고, 시드 마이어가 87년에 Pirates!를 만든 이후로 약 20년간
적게는 수십 종의 항해 게임이 나와 있습니다. 시드마이어의 최근 리메이크 Pirates!를 포함해서,
Pirates of Caribbean, Anno 1503, Anno 1602, Age of Sail, Sea Dogs, Man of War 같은 게임들이 있고
시야를 좀 더 넓히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항해 게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항해 게임들의 기본적인 구도 - 항해와 무역, 해전 - 을 개별적으로 비교하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항해세기와 대항해시대만 경험하고, 이 둘을 비교하면 두 게임의 컨텐츠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극단적인 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사실 항해 게임이라는 커다란
테두리로 놓고 보면 두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는 것은 실제로 별로 보잘것 없는 것들입니다.

특히 대항해시대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스토리나 캐릭터 같은 특장점은 오히려 다른 게임들이
"좀 더 항해에 집중하기 위해" 버렸던 것들이고, 특히나 대항해시대의 중독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모든 항해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인용된 본문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항해세기는 저런 게임들의 기본적인 골격을 차용하고 있으면서
거기에 나름의 색깔을 넣으려고 노력한 것들이 보입니다. 오히려 대항해시대가 기존 게임 디자인을
답습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보이는 것이 거의 없는 것에 반해서, 항해세기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해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게임을 논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게임 하나의 경험으로 초점이 집중되는 것입니다. 게임 개발이란
하나의 게임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라, 유사한 다른 게임을
참고하면서 발전적인 고민을 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게임 디자이너가 참고했을만한 게임들을 함께
봐야합니다. 이것은 마치 논문을 쓸 때 얼마나 많은 참고 논문을 보았는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논문들을 참고한다는 것은 그들의 주장을 따라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
다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보고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숙고하는 과정이 있었는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게임 디자인도 같은 과정이고, 게임을 리뷰하는 것도 같습니다.




첨언하면, 제가 언제나 젊은 게임 개발자 지망생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IBM-PC가 나오기 이전의
게임들부터 차근차근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게임 하나만 죽어라고 파는 건 게임 매니아가 할 짓이고
개발자 지망생이라면 1970년대 게임부터 2000년대의 게임까지 게임들을 해보기를 권합니다.
그런 경험들을 선배들은 '살면서' 해왔지만, 젊은 후배들은 한번에 몰아서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2년 3년 스케줄을 잡고 하루에 하나씩이던 일주일에 2~3개던 해보고 짧은 소감문을 노트에 기록하세요.
나중에 개발을 하면서 그 경험들이 매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