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 순수한 선의라는것은 전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것이 존재할수 있다는것 부터가 국제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착각입니다.

가난한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지원하는 무상원조도 결코 무상이 아닙니다.  UN같은 국제무대에서 표를 갖고있는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기위해 뿌리는것이죠.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참전과 원조도 결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로서 한국의 자본주의 국가기반을 다지기 위해 했던 기초보강공사의 일환이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대기업 집단을 방치하고 천왕을 없애지 않고 존속시킨것.  패망한 독일에 대한 지원과 마셜플랜 역시도 둥그런 지구안에서 서로 함께할수 없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신들의 세계를 격리하기위한 동서 방파제 쌓기작업의 일환이었죠.





그런데 중요한점은 이런것을 머리속에 그리고 실행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이지 군인이 아닙니다.
군인들은 훨씬 단순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한국을 돕기위해 간다고 생각하고 싸우지 결코 스스로 용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피가 정치인의 거래수단이 된다는것을 의식하며 싸우진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그랬듯이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4.19 가 터졌을때.. 미국 대사관에서는 한국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를 알기위해 그 인천의 맥아더장군 동상앞으로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4.19 혁명을 인정했다고 하죠.    주변이 전부 시위인파로 술렁이고 무정부상태가 되어있었는데도 그 맥아더장군 동상앞에는 꽃다발이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  특히 맥아더같은 물불 안가리고 정치인 눈치 안보며 달려드는 미국군인의 투지 덕에 존재할수 있었다는것을 분명 아셨으면 합니다.






1945년 이후 미국의 정치인들이 생각하는건 미국의 압도적인 해공군력에 의한 해양방위 전략이었고 그 결과 나온것이 현해탄에 그어진 애치슨라인 이었습니다.   현해탄을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경계선으로 삼는다는 전략이었죠.   김일성이 6.25를 일으킨것도 그런 미국 정치가들의 장기적인 동아시아 전략을 보고서였습니다.   미국은 참전하지 않을것이라는걸 확신했기에 6.25를 일으켰고 서울을 점령한 이후 인민군 주력부대가 3일 넘게 죽치고 앉아 남한 이승만정권의 항복과 와해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때 개전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날아와서 미국의 정치인들이 뭔가 카드라는걸 내놓기 이전에 주일미군을 한반도로 솓아부은것이 바로 맥아더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전쟁 후반기에도 한반도를 완전히 통일시켜버리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핵폭탄 카드도 꺼내들고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도 불사했죠.
그러다가 대통령과의 마찰로 짤렸습니다.     뭐 다들 알만한 그 유명한 맥아더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말이죠.............




맥아더를 부정한다는것은 곧 한국을 일본의 손에서 꺼내주고 공산주의로부터 막아준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것과 같은것입니다.
(주한미군이 주둔을 시작한것은 한국전쟁 이후입니다.  해방이후 진주했던 미군과 미군정은 이승만 정부수립 이후 소수의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한반도에서 전부 철수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순수한 열정과 투지를 지녔고 물불 안가리던 어떤 한 군인의 힘 덕택에 존속할수 있었다는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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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정정합니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제가 틀렸군요.
지금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맥아더가 대통령 명령없이 독단적으로 병력을 투입한것은 아니군요.    몇군데 자료를 다시 확인해보니 개전 다음 26일날 투입됬던 미공군은 미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한 작전이 목적이었고 27일날 최초로 격추시킨 북한기 역시도 이 작전을 방해하기위해 선제공격을 해와서 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기의 선제사격 없이는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있었다고 나오네요.    본격적인 작전은 28일 UN안보리가 소집되서 참전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직후였다고 합니다.

맥아더의 독단적인 성향이나 25일 당일 주일미군을 비상대기 시킨것. 26일 곧바로 미국민을 서울 공항을 통해 항공편으로 철수시키려고 했던것. 그리고 UN안보리에서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28일 곧바로 공군에 작전명령이 떨어졌지만 38선 이북진출은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것으로 볼때 맥아더가 즉각 공격할 의지가 있었던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직접 독단적으로 주일미군을 투입했다고 제가 알고있던것은 잘못된것 같습니다.

오히려 의회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병력투입 결정을 내린것은 당시 미국대통령이던 해리 트루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