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골치 아픈 내용을 싫어하는 저같은 사람에게 좋지 않은 책입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백악관에 입성하고 나서 빌과 함께 의료 개혁 투쟁을 하는 부분은 정말 재미없죠. 힐러리 자신도 그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의료 개혁안에 대해 관심 있다는 사람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고 개혁안을 읽어보았다는 사람은 더더욱이 만나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개혁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자마자 난 그녀와 친구가 되버렸다." 1권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의료 개혁안에 대해 투자하고 있어 저에게는 고역이였습니다. 때로 심한 경우 아스피린 한 알이 2$, 목발이 2천$를 넘을 정도로 당시 미국의 의료복지 문제가 심각하게 좋지 않은 수준이라 상류층을 제외하고 의료 혜택을 별 걱정없이 누리기에 매우 나쁘다는 것에 공감하여 의료개혁에 관한 그녀의 투쟁을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나중에 항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충 훑어보고 다음장으로 넘겨버리게 되었죠. 아직 2권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거기 가서는 어떻게 견디어낼 지 참..

그렇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힐러리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에게는 많은 면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를 하나의 틀에 가두려고만 한다. 나는 아내이고 어머니이며 영부인이고 또한 딸이며 누나이고 아동복지에 관심있는 사람이고 변호사이고 ... " 누구나 많은 역할들과 많은 면면들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평면적으로 그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 파악되곤 합니다.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도 비슷한 말을 했던 걸로 압니다. "내게는 많은 성격들이 있는데 개그맨처럼 비치는 나도 나이고 '환생'에서 감성 어린 섬세한 남자 주인공도 나이다." 개개인은 구슬 무더기 속에서 각각의 구슬들이 비쳐내는 수 많은 이미지들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들의 주인들인데도 몇가지 면만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되어버리고 이런 일은 겪을 때 당사자에게 때로 불쾌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죠.

사실 힐러리가 르윈스키 추문을 알고 빌에게 크게 화를 냈다는 부분이 2권에 실려있다길래 그 흥미로운 부분때문에 1권을 읽으려고 한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음... 힐러리는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도 있었던 빌의 성추문에 대해서 관대하다 못해 관심이 별로 없던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이성적으로 대하고 있네요. 오죽하면 두 사람의 결합은 사랑의 결합이 아닌 정치적인 동반자적 관계라는 평이 자자했을 정도였을까요? 힐러리가 책에서 그 소문들을 의식한 듯이 "나를 웃길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이며 경이로운 설득력을 가진 남자이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이다."라는 내용을 주욱 썼습니다. 어째서 여자로서의 분노라던가 배신감에 대해서 털어놓지 않는건지? 르윈스키 추문 이전의 폴라 존스의 성희롱 고소는 남편인 빌을 너무나도 신뢰하였기에 빌에게 한 치의 의심도 두지 않았던 것이였던가요? 2권을 마저 봐야 알겠지요.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 아직도 들어오지 않아서 안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에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달라고 부탁 드렸을때 아버지는 이 책과 함께 "세상을 움직인 절반의 여성 50인"이란 책을 같이 가져오셨습니다. 저런 류의 어설픈 편집도서는 평소에 싫어하던 터라 당황스러웠는데 살아있는 역사를 읽다가 힐러리의 아버지가 힐러리에게 많은 사랑을 내려주면서 그녀의 자립심, 성취욕들에 대해 감탄하고 늘 격려해주려고 했던 것과 함께 힐러리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저희 아버지도 저에게 비슷한 것을 바라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 그대로.. 俊姬, 훌륭한 여자란 의미 그대로 되길 바라셨고 지금도 바라시는 것같습니다. 아버지만한 자식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자수성가한 아버지만큼 잘 성장할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또 아버지는 저와 같이 무기력한 데다가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아웃사이더에게 과분한 아버지시죠. 힐러리가 아버지를 잃으면서 딸의 성공과 사위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던 아버지를 회상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잃는 때에 저에 대해 어떤 기억과 감상을 가지고 있을 아버지를 회상하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