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서식지가 부산인 만큼 오늘 하루 임시휴일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APEC관련으로 인터넷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는데요,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 서 있는 것 중 하나가 반APEC운동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지요.

피부로 느끼는 이곳의 분위기와 지난 1주일 동안의 여러가지 APEC관련 이슈들 중 반APEC운동을 포함한 몇가지에 대해 생각을 풀어 볼까 합니다.


1. 1주일 동안의 부산 분위기

APEC 성공개최를 모토로 시를 비롯한 각급 단체들이 동분서주하면서 홍보와 캠페인을 벌였는데요, 그렇다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평소와 같달까요? 2부제 시행도 그다지 잘 지켜지지 않는 듯 밀릴 때는 평소처럼 대책없이 밀리고, 수요일에 열렸던 불꽃축제 때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해 퇴근 피크타임에 지하철이 올스톱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도 일어났지만 그 외에는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반APEC운동도 행사장 근처를 중심으로 벌어져서 APEC하우스가 있는 해운대쪽에 사시는 분들은 치안 쪽에서 조금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거리의 분위기와 시민들의 생활은 행사기간 내내 지극히 일상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지난달에 열렸던 국제영화제 때가 분위기가 Up돼 있었지요.


2. 당신은 APEC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다분히 시비조로 보이는 이 글은 그만큼 APEC에 대해 정확한 FACT를 짚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와 언론에서 외치는 ‘APEC = 경제파급효과’라는 겉모습에 취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윗 글에 어떤 분이 ‘APEC에 대한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주관....’ 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APEC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회의”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말이 맞는 것이, 지금까지 열렸던 APEC은 행사 주최국은 매년 달랐지만 그 키는 항상 미국이 쥐고 있었고 올해 APEC도 그 틀에서 한치의 벗어남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당장 행사기간 중에 나오는 신문과 언론기사를 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 미국, 중국, 일본 이외의 국가는 묶어서 “패키지”로 보도되고 있고 중국과 (천하의)일본도 미국의 그것에 비교하면 기사꼭지가 덜 할애되고 있습니다.

기사뿐만 아니라 정상회의에서도 각국의 정상들은 미국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 애쓰고 있고, CEO회의 등 실제 행사기간 중의 각종 회의와 포럼 또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올해 APEC은 우리나라가 개최국이 되어서인지 주력인 IT쪽을 우리나라와 싱가폴 등에서 주도했고, 후진타오 주석의 뛰어난 능력으로 대변할 수 있는 중국의 위치 상승 등 시사할 만한 포인트가 몇 가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PEC출범 전에 아시아권역의 경제포럼을 구축, 도모하자는 의견이 여러 번 개진된 점을 볼 때 P, 즉 Pacific(태평양)은 애초에는 포함 대상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설령 포함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타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한 남미 국가들은 몰라도 이미 NATO에 가입되어 있는 미국이 여기에 낄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미국 입장에서는 EU출범으로 경제의 한 축을 뺏긴 상황에서,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세력이 있는 아시아권의 경제협력 논의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에 미국이 낸 해법이 여기에 자기들도 끼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고, 그 중간자 역할을 일본이 했다고 봅니다. 미-일간의 관계야 우리의 그것보다 더욱 돈독하고, 거슬러 올라가면 2차대전 때의 대동아공영권의 일환으로 일제 식민지 시기를 보낸 동남아 다수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열강에 의해 독립된 만큼 자연히 미국에 대한 발언권이 없을 수밖에요. 덕분에 미국이 끼게 되었고 그 근거를 태평양을 끼고 있다는 의미로 P를 넣었다.... 전 이렇게 봅니다.


3. 반APEC운동 비판에 대한 비판 - 과연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나?

글쓰기에 앞서 ‘저 역시 폭력사태로 번지는 작금의 집회는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내용을 곰곰이 따져 보면 지극히 경영자 중심의 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보완재로 나온 수정 자본주의 다음의 이론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신 보수주의로 불리는 네오콘과의 커넥션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줄이겠습니다.) 철저한 고용주 중심의 이론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자와 피고용인에 대한 가혹한 희생을 요구합니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모든 경제의 근간은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로부터 시작한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슬픈 현실이지요. 강풀씨의 만화 가운데 ‘고용주와 노동자는 상하 관계가 아니다’라는 요지의 만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고용주들은 월급을 자기 돈 나간다는 생각으로 준다. 사실 고용주의 필요에 의해 고용한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실로 얻어진 이득 아닌가? 이만큼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노동자의 노고에 합당한 월급을 주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도 훨씬 개선되지 않을까?’ 하고 작가는 피력합니다.
(노동운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은 하종강씨의 저서를 찾아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언론에서는 집회에 참여한 2만여명의 사람들을 가해자로 비추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미화시키는 것도 사실이고 이번 폭력시위는 충분히 비난받을 일이며 법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APEC으로 가속화될 신자유주의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들입니다.(며칠 전 일어난 국회 앞 농민들의 시위도 같은 의미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을 거리로 나가게 하고 이들의 손에 쇠파이프를 쥐어준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닌, 언론의 객관성 없는 보도와 우리들의 무관심이 아닐까요? 조금만 상황을 짚어보는 혜안을 기대합니다.


4. 보여주기 행정에 대한 비판 - 지금이 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인가?

이것은 친구가 먼저 꺼낸 말이지만 제 뜻과도 같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4년 동안의 준비기간과 15억이라는 자금을 투자한 ‘APEC 성공기원’ 8만 발의 불꽃축제가 수요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부산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CEO들이 경제협력과 시장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루 벌어 사는 노점상들과 그것조차도 불가능한 노숙자들이 말 그대로  ‘추방당하는’ 씁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이들은 삶의 터전, 하다못해 자기 몸 쪼그리고 뉘일 공간마저 박탈당해 버린 것입니다.

시대는 2000년도도 절반을 꺾을 만큼 지나왔지만 시 윗분들의 사고방식은 70년대 군사정권과 80년대 전통 시절 행해졌던 보여주기식 행정에 다름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구장창 APEC 성공개최를 홍보하고 캠페인을 하며 불꽃을 터트리면 뭐합니까?

당장 우리의 이웃들이 내쫓기는 마당에......



길게 풀었던 생각들을 정리할 때가 되었네요.

글을 쓰는 저 또한 APEC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성에 대해서도 통감을 하고 있고(미국 주도라는 점은 여전히 불쾌하지만) 회의와 포럼이 계속되면서 생산성 있는 의견들을 도출하고 더 좋은 대안을 이끌어나가자는 취지에도 공감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반APEC운동의 접근 방법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시민들의 시선과 같이 이들의 행동을 냉정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단편적인 점에만 치우쳐 그 본질과 이면의 상황을 놓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싫으면 북한가라’는 말은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겠습니다. 다양성 문제를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독재정권 시대의 흑백논리가 아직도 먹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반세계화 운동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유럽과 남미쪽의 NGO들이 반세계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럼 그 사람들도 다 북한가야 하나요? 선진국 얘기를 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그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도 최근에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유혈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폭력시위가 벌어지는 걸로 선진국 후진국을 나눌 수는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조금씩만 생각을 다시 해 보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