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가혹하리만큼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울티마 시리즈는 종언을 고했으며, 수많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게임이란 미디어는, 오히려 지루한 일상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필자는 심즈를 위대한 상품으로서 평가절하하기 보다는, 위대한 게임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순수 어드벤쳐라는 장르는 사실상 끝나버렸고, 커다란 혁명처럼 다가왔던 온라인 게임은 가장 현명한 현자마저 비이성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작태를 보여줬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꿈꾸어 왔던 장밋빛 게임의 미래는 사실상 없었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싸여진 게임들은, 실제로는 매우 진부하고 낡은 게임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곪아버린 상처

과거의 게이머들에게 정당한 방법으로 해외의 명작들을 즐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단 정식발매가 여의치 않았고, 둠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발매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해외에서 직접 산다는건 너무나도 많은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그린 이유로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문화가 정착이 되면서, 훨씬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게임문화는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게임을 구입한다’는 의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급속도로 퍼져나간 인터넷 회선을 통해 여전히 고전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구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게임이란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된 어린 세대들조차 게임을 구입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표시하게 되었다. 게임문화를 즐기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게임시장은 성장하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것이다.

게임시장의 불균형

이렇듯 PC게임의 입지가 좁아질 무렵, 인터넷의 정착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게임 문화를 형성했다. 온라인 게임은 쉽고 캐쥬얼한 게임성에,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패키지 게임과는 다르게 완벽한 수익을 보장하는 이런 온라인 게임은 개발사들에게 있어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업체들은 수익이 보장되는 온라인 게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회사들은 자신들이 옳았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온라인 게임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고사직전까지 온 패키지 게임시장과는 달리, 온라인 게임은 보다 많은 선택의 폭을 가져오게 되었다. 유저들의 꾸준한 투자를 얻고, 온라인 게임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소된 희망

최근에 와서야 쉽고 편하게 게임을 즐겼던 부작용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스 6나 맥스 페인 2와 같은 해외 명작들은 국내에 발매하지 않았으며, 발매된 게임의 현지화 또한 매우 빈약한 수준이었다. 언리얼 토너먼트는 국내에 서버를 따로 마련해주지 않았고, 출시 전까지 최후의 보루로 각광 받았던 국산 게임들은 버그투성의 빈약한 게임성을 보여줬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다름아닌 게이머들의 안이한 태도가 있었다. 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가 모르는척 했던 것이다.

덕분에 게이머들은 상당수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보다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나, 한글로 편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앞으로 점점 사치가 되어갈 것이다. 네트워크의 발달이 가져온건 글로벌한 마인드가 아니라, 메신저와 와레즈를 이용한 무분별한 정보남용이었다는걸 이제와선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온전한 국산게임을 바란다는 것은 더욱 무리다. 우리는 스스로를 결박해버린 것이다.

꿈이 날아간 궤적

필자가 아주 어렸을 무렵, 게임이라는 문화는 부당한 취급을 당했었다. 기성세대로부터 가장 이질적인 취급을 받아왔던 게임이란 문화는 서적이나 영화와 같이 무수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어야만 했다. 이런 사회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당당한 하나의 문화로써 게임을 정착시키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그려봤을 것이다. 지금도 그 처우는 크게 달라진것 같지 않다. 게임이라는 문화를 부정하던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금 우리는 게임을 무시하고 있다.

21세기가 비록 개인을 위축시키고 많은 자유와 힘을 빼앗아갔다고 해도,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개개인에서 시작한다. 기성세대의 망령에 묶여 사회가 제시하는 길만을 곧이 곧대로 따라가던 인생은 이쯤에서 그만둬주길 바란다.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문화란 무엇인가? 진정 난 무엇을 좋아하고, 또 즐기고 싶은가? 그리고 그 문화가 올바르게 인정받기 위해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이미 모든 답은 게이머 자신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자신이 말이다.

필자는 한가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가정에서는 적어도 모두 게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자식들도 여러 게임을 통해서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기를 필자는 바라마지 않는다.


출처:게임존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