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전편에서 서술했듯이 블럭이 풀린 후... 히어로경과 저는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히어로경은 그 당시 서버에서 제법 유명한 길드에 들어가
이름난 전사가 되어 여러 전쟁에도 참가했었고,
또 바라던 대로 테이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난했지만 정말로 즐겁게 게임을 했습니다.

그의 평생소원인 내 집 장만도
가진 돈이 없어서 저한테 돈을 빌려 겨우 단칸방을 구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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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저는 길드 없이 혼자 떠돌며 ‘거지스킬’로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거지스킬이 힘들어지자 나중엔 부동산업자가 되어 인생한방! 일확천금을 노렸지요.

(저 당시 거지스킬을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100명중에 1명이나 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지 스킬을 94까지 올렸었습니다)


여기서 말한 ‘부동산업자’란 다른 유저들의 집 상태를 보고 다니며
곧 무너질 집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유저가 접속을 하지 않으면 그 유저의 집이 무너져버리는데
그 때 달려들어 무너진 유저의 집 ‘잔해물’과 내부에 있던 물건들을 약탈해 가는 것입니다.

그게 그 당시 제가 돈을 버는 방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돈의 노예였지요.

그러나 저는 나름대로 부유했습니다.
히어로경이 돈이 없어 쩔쩔매는 동안
저는 2층 집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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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곧 무너질 듯한 2층 빌라집을 발견해서 다른 부동산업자(약탈자들)들이랑
그 집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집이 무너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봤더니
어느 새 그 빌라집은 무너져 버린 후였고
집안의 물건들은 이미 다른 잠복했던 유저들에 의해 모조리 약탈당해 건질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예 무너진 빌라집 위에 새로운 집까지 세워져 있더군요,

그나마 남은 건  15gp 짜리 싸구려 ‘삽’ 하나...



이보다 더 최악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번엔 상당히 값나가는 큰 저택이 무너지려는 것 이었습니다.
거의 11시간 정도 기다렸나?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고, 드디어 집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왠 PK플레이어가 나타나 용을 풀어 저를 죽여버렸고,
제가 유령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저택이 무너져 버리더군요.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유령이 되면 물건들을 주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정말로 화가 나서 주먹으로 모니터를 쳐버리기도 했습니다. (주먹 디게 아팠습니다...)


더욱 열 받은 것은 그 살인범이 저만 죽이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저택의 템들은 모두 다른 부동산업자들의 몫이 되버렸지요.


제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쫓기듯이 살아가는 동안
반면 히어로경은 게임을 정말로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륙 어딘가에서 모험을 하고 있을 그의 이름과 명성이 제가 있는 마을에 까지 들려왔습니다.
히어로경은 매너 있고 실력 있는 전사로써 이름을 날렸고..
테이머 스킬도 90대로 접어들었고, 생산직 캐릭터도 100스킬까지 올렸더군요.
나중엔 저한테 빌려간 돈을 이자까지 쳐서 원금의 3배로 되돌려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씩 히어로경을 만나면 그는 저를 응원해주었습니다.

  “히어로경 : 쵸티경. 힘내! 언젠간 대박 터질거야.”
  “쵸티 : 구래, 과마워. 히어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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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오랜만에 만난 히어로경이 말했습니다.

  “히어로경 : 쵸티경은 집 전화가 어떻게 되징?”

그러나 저는 33살의 남자라고 뻥을 쳤기 때문에 그의 질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쵸티 : 응, 전화 고장나서 지금은 없어. 나중에 살 거야. 근데 왜?”
  “히어로경 : 음...아냐.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어쩌나 싶어서.”

그를 속였던 게 마음에 걸려 그와 함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전 정말로 돈 버는 일에 정신없이 매진하던 터라 1분 1초가 아까웠습니다.
전 오랜만에 만난 히어로경한테 장사하러 가야한다며 서둘러 헤어졌습니다.


그때 저의 주수입은 ‘시약’ 장사였습니다.

시약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npc들에게 싼 값에 사들여서 돈 많은 부르주아들에게 비싸게 되파는 것이었지요.


히어로경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서둘러 헤어지려는 저를 보며 아쉬워하는 눈치였었지만
전 오로지 돈 버는 일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저에게 히어로경이 말했다.

  “히어로경 : 쵸티경. 우리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자. 그 때도 잼있었자너..”

그러면 전 항상 이렇게 대답했었지요.

  “쵸티 : 조금만 더 모으고. 조금만 더 모으면 나두 게임을 즐길꺼양.”




정말로 돈을 많이 벌면...
그 때는 히어로경의 말처럼 게임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히어로 경과 함께 옛날처럼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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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울티마 세계의 4대 보물.......

[쓰러진 의자]와 [쓰레기 이벤트 염색약] 그리고 [펼쳐진 책]... 나머지 하나는 기억안남..


어쨌든 이 4개의 아이템만 손에 넣으면
그 당시 제가 그토록 원하던 레어 신발인 [리얼블랙샌달]을 한 트럭도 살 수 있었고...
성도 살 수 있고...
힘들게 장사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4개의 보물이... 지금 제 눈앞에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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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히어로경의 집 상자 안에 있었습니다.


컴컴한 방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상자안의 보물들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집주인 히어로경은 지금 없다.......’
  ‘저 물건들만 있으면 난 성의 주인도 될 수 있다.’

더 이상 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무너진 집을 약탈하러 다니거나
여타 부르주아 유저들처럼 시약을 npc가 아닌 일반 유저들에게 대량으로 사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히어로경의 집안 상자 안에 들어있는 저 4개의 아이템만 있으면...


그저 마우스로 드래그만 하면.....
그럼 내 캐릭터는 순식간에 7GM을 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리얼블랙샌달]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우스로 드래그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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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히어로경의 허름한 단칸방 안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히어로경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 였지만...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매크로조차도 모르던 초보 시절,
같이 힘들게 번 돈으로 구입한 배를 타고 낚시를 하러 다녔고...
서로 배 소유를 양보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옷을 코디 해주기도 했으며...

내가 나무를 하고, 다른 유저의 무너진 집터에서 템을 주울 때...
히어로경은 PK플레이어가 오는지 망을 봐주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게임일 뿐이지만 술을 마시며 우정을 다졌고...
둘이서 힘들게 사냥한 북극곰 고기로 파티를 한적도 있었습니다.

내가 빌려준 돈으로 히어로경은 소원했던 집을 지을 수 있었으며,
나중에 히어로경이 일부러 원금을 3배로 갚아..  
그 돈으로 저는 시약 장사의 밑천을 마련하기도 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2층 통나무집도 히어로경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같이 ‘데몬’이라는 상위몬스터에 도전했다가 죽은 적도 있었으며.
‘라마’라는 희귀한 탈것을 타고 둘이서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들을 배에 태워 ‘무인도’에 가둬놓고,
2시간 정도 뒤에 찾아가 그들이 우리 두 사람에게 ‘용사님’이라고 부르면  
그제서야 다시 마을로 돌려보내주는 등의 짓궂은 장난도 같이 했었습니다.


장사에 소질이 없는 히어로경을 꼬드겨 같이 다니면서
유저들이 파는 물건들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가,
나중에 몇 배로 뻥튀기해서 되팔다가...  그 길드원들한테 걸려서 죽도로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정말로...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놓인 히어로경의 상자 안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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