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일본어 단어중에 '비밀'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비밀이란 한자를 음독하여, 비 -> 히, 밀 -> 미츠.
나이쇼는 고유 일본어(?)에 가깝습니다.
미묘한 차이점은 있지만,
일반적인 용례를 보면,
히미츠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되는 사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고,
나이쇼는 둘사이 혹은 소규모 인원 내에서 외부의 사람에게 알려주지않을 약속이나 사실 등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더군요.
(일본어에 대한 조예가 깊지는 않아서 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말에서 '비밀'에 해당하는 개념은 좀 폭넓게 잡혀있습니다.
'비밀'이란 단어 대신 다른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세분화하여 별도로 사용하진 않습니다.
영어로 가봅시다.
'서명'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일반적으로, Signature입니다.
줄임말로 Sign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줄임말을 외래어로 차용해서, 흔히들 '사인/싸인'이라고 사용합니다. (싸인펜이란 제품명까지 있죠..)
그러면,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해주는 사인은 뭘까요?
똑같이 Signature일까요?
얼마전 MBC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노홍철/유재석/하하가 미국에 가기전에 코미디언 김영철에게 속성 영어과외수업을 받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사인 해주세요'라는 표현을 설명할 때, 김영철이 Signatur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해주는 사인은 'Autograph'입니다.
Signature는 신용카드에 쓰는겁니다.
물론, 유명 연예인에게 커다란 종이를 들이밀면서 '기브미 시그니처!'라고 하면, 대충 알아듣고 Autograph를 해주긴 할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들은,
다른 언어를 옮길 때 표현의 한계가 있다보니 발생하는 일입니다. (어떤 언어가 더 뛰어나냐의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해당 언어로는 그냥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되지만,
다른 언어로는 그 뉘앙스를 설명하려면 한참을 설명해야하는거죠..
또, 영어의 예를 들어봅시다.
ca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동사형으로 번역하면, '~을 할 수 있다' 혹은, '캔을 따다'가 되고,
명사형으로 번역하면, '캔, 깡통'이 됩니다.
어떤 미국인이, 'I can can this can'이라고 말하면서, 참치 통조림을 능숙하게 땄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걸 들은 한국인은 세번이나 나오는 can을 분석합니다.
아, 이 친구가 '나는 이 깡통을 딸 수 있다'라는 말을 하고 있구만이라고 이해를 하고,
영어-한국어 사전에 이렇게 기록하겠죠.
can: 할수있다, 깡통을 따다, 깡통.
하지만 반대로 사전을 보는 사람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언어적 특징을 이용한 말장난은 번역하기가 더 어렵죠)
영어 문장에서 나오는 can을 어떻게 번역해야할까??
그래서 '문맥에 맞춰'번역을 해야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나'를 지칭하는 영어단어는 'I'를 주로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제' 등을 나누어 쓰고,
일본어로는 더 많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표현의 갯수가 많다고 좋은 언어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뭐, 제가 어학에 소질이 없는 '내추럴 본 공대인'이다보니,
더 자세하게 분석은 못하겠습니다만..
어학공부를 하실 때, 이러한 단어의 번역 과정을 어느정도 감안하고 공부하신다면,
그냥 무작정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는 훨씬 풍부한 응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단어 외우는 비법은 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자신이 배운 언어와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 언어를 듣게 되면 더욱 그런 확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ex) Alexander(영) // Alexadre(프) // Alexander(독) // Alejandro(스페인)
단어의 뉘앙스는 그런 외래어의 정글 한가운데 던져놓으면 사람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다 깨우치게 되는것 같구요.
언젠가도 이런 것에 대한 의문점, 궁금점 등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참 이럴 때 보면 어학이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몇 번 반복하다보면 금새 적응하기 마련이지요.
가령 예를 들어서 제 경험을 토대로 말해보자면...
막 알바다운 알바를 시작했을 무렵인 17살 시절... 엄밀하게 구분하면 법에 걸리는 것이겠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므로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막 고등학교 입학한 제가 공사현장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리야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당시 제 기준에서는 그것 만큼 단시간 고수익 알바가 없었습니다.
물론 들어가게 된 계기는 친했던 소장님께서 소개를...
그런데 우리가 흔히 전동드릴이나 평탄 작업 등은 쉽게 알아듣지만 공사현장 속어로 표현하자면 전동드릴은 보로방, 평탄화 작업은 바라시 정도로 표현을 합니다.
옛날사람 님이 쓰셨던 것과 같이 오토 그래프를 시그니처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사람은 생전 처음 접하니 모르지만 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면 어느 순간 알아듣고 행동하게 됩니다.
(물론 니퍼를 니빠로 부르는 것과 같이 본 의미와 속어가 80% 이상 일치하는 것은 논외로 치겠습니다. 이제까지 저 단어는 처음 들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이것은 바로 연예인들에게 Give me signature! 라고 말해도 그 뜻을 이해하고 Auto graph를 해주는 것과 같은 개념이지요.
영어든 뭐든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려면 제일 먼저 욕을 배우라고 하듯이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친숙한 단어 위주로 외우는 편이 제가 이제까지 공부해본 방법 중에서는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래 하다보면 이미 그게 익숙해져서 정작 문법적으로는 깡통이 되버리는 머리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영어를 그렇게 배웠고, 그게 5년 이상 지속되면서 익숙해지니까 나중에는 한계가 오더군요. 문맥 전체가 정갈한게 아니라 들쭉날쭉한 양아치 스타일... -_-)
끝을 맺자면... 단어의 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대화하고, 익히는 것도 좋지만 사전적인 의미와 실생활적인 의미에서의 사용여부는 꽤나 큰 차이가 있으니 공부를 하더라도 그 부분을 감안해서 해야겠다는 것이겠네요.
결론은 죽자고 공부하라는 소리...
결국에 문법이란 것도,
사람들이 말을 하다보니, 어느정도 규칙성이 생기고,
그 규칙성을 정리하다보니 문법이 생겨난 것일테니까요.
그리고 그 문법에 따라 다시 언어가 보정이되는 'feedback'효과가 나오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언어에 문법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문법에는 '예외'라는게 있는걸 보면,
언어의 생성 과정을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겠죠..
그래서 원어민들에게 문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죠.
왜냐하면, 자기 주변에서 늘 듣고 사용하는 언어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문법'에 맞게 말하게 되니까요.
저같은 경우도, 한국어 문법 보다는 영어 문법이 더 익숙합니다.
가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는데, 소위 '번역체'같은 어색한 말을 하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원래 우리말에는 '수동태' 표현이 없었습니다만,
사람들이 영어 문법에 익숙해지다보니, 수동태에 익숙해졌고 이젠 수동태 문장을 봐도 어색하지 않죠. (지금 덧글을 쓰는 와중에도 의도치 않게 수동태 문장이 구사되고 있습니다!)
뭐, 어쨌든간에, 외국어든 은어든, 자꾸 듣고 사용하다보면, 그 언어에 익숙해지게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지 못해도 이상한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정규 코스를 밟은 사람이 유창한 회화를 하는게 더 이상한거죠.. (물론 굉장한 노력을 했겠지만)
아이캔캔디스캔 이 기억에 남네요;; 언어는 알면 알 수록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