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마모루 님께서 이 글을 보시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얘기를 하나 해보도록 하지요.

저는 올해 35살 입니다.
레임의 회원분들께서 흔히들 아시다시피 저는 군수쪽으로 종사 중인 무역업자 이지요.
돈이요? 글쎄요... 사람 욕심이 끝이 없으니 과연 제가 넉넉하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단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제가 가장으로 있는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돈은 벌고 다닙니다.

저는 이쪽 계열에서는 제법 튼튼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35라는 제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맡고 있는 업무와 직책을 감안하면 꽤 빠르게 승진한 케이스지요.
물론 고속승진이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종사하고 있는 곳이 아무래도 군수무역인 만큼,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따라오는 리스크는 엄청나니까요.
흔히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제게 있어 그리 큰 농담거리는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각설하고, 어찌됐든 저는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입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마모루 님은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제 가족들이 저에게 도움을 준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None. 안타깝게도 제가 이런 위치까지 올라오게 되기까지 가족들이 이쪽으로 도움을 준 것은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마모루 님의 춘추는 올해 20대 중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이라... 제가 그 나이였을 때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군대를 막 전역했을 때임에도 슬퍼할 시간도 없이 한창 빚쟁이들한테 쫓겨서 다녔고,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였네요.

물론 저는 처음부터 군수무역에 뜻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쯤이었나요? 그 때부터 제가 20대 초반일 때까지, 저는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지고 그쪽으로 꿈을 키우던 일개 학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프로그래머를 꿈꾸고 있을 때, 가족들은 제게 도움을 주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도 None. 역시나 받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제외하고도 6명이나 되는 남매들 덕에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자취하던 둘째 누나 집에서 지내며 통학을 했습니다.
생활비요? 재산 하나 없는 가난한 소작농이 무슨 돈이 있어서 생활비를 보탰겠습니까? 그나마도 있는 돈은 맏형에게 투자됐지요.

친척들 모두 제 입에 풀칠하며 살기 바빴고, 그나마 얻은 것이라고는 가방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둘째 누나에게 아주 가끔씩 얻던 소액의 용돈이 전부였습니다.
이전에도 썼듯이 제 생활비와 용돈은 없는 시간 쪼개가며 알바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고, 그나마도 번 돈을 쪼개어서는 소액이나마 누나에게 지불했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도 더욱 더 어렵게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그들보다는 덜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저도 마모루 님보다는 불행하게 살았다고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어찌됐든 이렇게 어린시절을 보낸 고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생... 아니, 그때 당시로 말하자면 국민학생이군요.
국민학생 이후로는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다 할 만한 추억도 없고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제 나이가 20대 중반 시기일 시절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누나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갔지요.
그러나 눈물이 나진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무엇인가 좋은 추억이 하나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눈물은 나지 않아도 미치도록 후회는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부모님을 굉장히 미워했습니다.
당연히 돈에 대한 것은 마모루 님처럼 일절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았고, 오직 제 독단에 의해서만 돈을 썼으며... 집에다가 생활비 한 푼 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과 차별 당하며 자랐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서인지 유난히 부모님에 대해서 만큼은 삐딱선을 탄 저였고,
때문에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고 명절에 내려가지도 않았습니다.

공개적인 게시판이라 모든 속을 다 털어놓기는 그렇습니다만... 이 정도로도 대충 제가 부모님께 얼마나 원한이 많이 있었는지 짐작은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는 집안과 일체 모든 연을 끊고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력이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도 경험이라고... 제법 고통을 겪어서인지 세상 돌아가는 모습 만큼은 잘 알겠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무엇인가 일이 잘 풀려서 돈이 생기면 그 돈을 가장 먼저 드려서 기쁨을 함께 나눌 분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참 미묘한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고 슬펐습니다.

살아계실 때에는 부모님은 저를 미워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집에 돈이 조금 들어오면 몽땅 형제들에게, 그것도 맏형에게 돌아가기 바빴고, 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으시는 부모님들이 정말 친 부모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의심도 했었지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교통사고가 나시기 전에 하셨던 일을 들으니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제가 죄인이었습니다.
아들놈이 지고 있는 빚을 조금이나마 탕감시켜주기 위해서 누나 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오시다가 사고가 나신 것이니까요.
소액의 탕감비용이었지만, 그것으로 일부의 빚은 갚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목숨과 맞바꾼 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지금도 부모님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 잘해드리기는 커녕 대화 조차 하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어린 시절 받았던 고통의 뒷편에는 모두 그분들이 있어서라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뜻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마모루 님...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마모루 님의 아버지께선 이렇게 공개적인 게시판에 올라와 본인을 포함한 세상 모든 이들에게 욕을 먹고 멸시를 받아도 좋을 정도로 못난 분이신가요?
그저 사소한 한 순간의 실수로 마모루 님 본인 스스로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대화라는 문을 닫고 지내시는 것이 아닌지요?

만약 당장 아버지께서 세상에 없으시다고 가정한다면 마모루 님께서는 한 번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마모루 님께서 성인이 되신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는 차후로 논의하더라도, 과연 마모루 님 본인이 이제까지 커온 바탕을 아버지께서 한 번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언젠가 책에서 본 글귀 중에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뜻을 해석하자면 물질에는 근본이 있고, 무언가에 대한 일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먼저 해야할 일과 나중에 해야할 일을 구분할 줄 안다면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라는 뜻입니다.
마모루 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왜 틀어졌을까요? 마모루 님께서 쓰신 글로만 단정짓자면 마모루 님 본인의 잘못은 전혀 없고, 오직 아버지께서만 잘못을 하신 것처럼 표현하셨는데 과연 그럴까요?

저는 제 3자 입니다. 때문에 마모루 님의 집안사정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심히 이 말을 꺼내봅니다.
물유본말... 지금 마모루 님께서 아버지와 겪고 계시는 갈등과는 정확히 맞지 않는 단어이기는 합니다만... 어찌됐든 마모루 님과 아버지 사이의 일이 지금까지 오기에는 분명 시작이 되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근본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게시판에서 아버지를 험담하며 마모루 님의 생각과 뜻에 동조해줄 사람을 찾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왜 아버지와 마모루 님의 관계가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 라는 것을 주제로 해서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재주가 없어 내용이 좀 두서가 없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모루 님께서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같이 후회하는 일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profile

잉여 군수무역자 루즈베라트 입니다.

해치지 않아요. 대신 아프게 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