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제작자의 닉네임과 해당 작품의 유일한 제작자임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에 적당히 필터를 거쳤음을 밝힙니다.
(그래도 읽어 보면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거같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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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 님의 자막을 즐겨찾는 방랑객입니다. 인터넷에서는 H-Blue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애니를 지금까지 보면서 ****** 님의 자막을 알게 되었습니다. ****** 님의 자막을 보고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습니다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칼같이 맞아들어가는 싱크 처리와 적절한 분량의 대사 커팅 실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숱하게 접했던 여러 자막 중에서도 ****** 님의 그것은 단연 독보적입니다. 자막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미국 드라마 전문 자막제작팀(CSI나 프리즌 브레이크, 히어로즈 등)도 싱크 타이밍과 대사 커팅이 삐걱거릴 때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막에 대한 ****** 님의 노력과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쉬운 소리를 하겠습니다. 사실 지금 말하고 싶은 이것 때문에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이 상당히 길어지겠지만 물리치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막을 찾는 많은 분들이 ****** 님의 자막 퀄리티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모 커뮤니티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번역이 돼서 일본어 대사와 싱크로율이 엄청나게 높다' 라는 칭찬의 말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본 '△△'와 '○○○' 자막에 대해서는 저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 님의 해당 자막 번역에는 허술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앞으로 들 예시들을 말씀드린 '△△'나 '○○○'에서 발췌하겠지만, 다른 작업물에도 지금부터 지적할 내용이 거의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봅니다.

1. 직역체를 과하게 남발합니다.
지금은 열 수 없지만 며칠 전에 ****** 님의 방명록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 님의 기본적인 번역원칙이 '직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본이 일본어고, 제작자의 의도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데 직역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법에 전혀 맞지 않거나 눈에 띄게 어색한 표현까지 직역으로 일관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드문 일이네' 같은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입니다. '웬일이래', '별일이네' 등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시간이야'라는 말도 어색합니다. '시간 (다)됐어'라는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수일 후' 같은 것도 '며칠 후'라고 하면 훨씬 좋지요
덧붙여서 현역 번역가들도 숱하게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最後(さいご)の最後(さいご)まで 같은 말은 '마지막 순간까지'로 고쳐 쓰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2. 고유명사에 대한 해석이 취약합니다.
그 유명한 한국판 몬스터의 '토르코'나 '이기리스'정도는 아니지만 취약한 고유명사 번역이 종종 보입니다. 카타가나 그대로의 발음을 고유명사로 옮겼으리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고유명사의 경우에는 일어식으로 완전히 굳어진 것 외에는 최대한 원어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제작자를 짐작할 수 있는 단락이지만 부득이하게 넣었습니다. 보실 분은 드래그)
'△△'의 <크리스탈 파레스>와 <죤즈>를 예로 들겠습니다. 앞의 것은 Crystal Palace, 동명의 축구클럽도 있는 확고한 고유명사입니다. '크리스탈 팰리스'라고 고치는 것이 올바르겠죠. <죤즈>도 영문 표기는 Jones. 일어 발음이 아무리 '죤즈'라고 해도 이 부분은 '존스'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 코믹스 정식 한국어판의 번역자 분들이 'ジョン―ズ' 대신 'Jones'를 우선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3. 문맥에 맞지 않거나 동떨어진 번역이 많습니다.
'틀리다', '부끄럽다', '멋지다', '농담이 아냐', '꽤', '그런...', '관계없다' 등등... 1번의 직역과도 상통하는 부분이지만 항목을 따로 뺐습니다. 말씀드린 표현들을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틀리다'는 상당수가 '다르다'로 번역해야 뜻이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번역가들이 'いいや、違(ちが)う'를 '아니, 틀려'로 번역하는데, 저 말이 나오는 상황의 상당수가 뭔가를 비교하면서 '다르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 나옵니다.
'wrong'과 'different'는 분명히 '다릅니다'

같은 방법으로

'부끄럽다' - '쑥쓰럽다', 살짝 은어를 섞어도 되면 '쪽팔린다'
'멋지다' - '멋있다', '예쁘다', '대단하다'
'꽤' - '제법', '엄청', '그럭저럭', '얼추'
'관계없다' - '상관없다'
'농담이 아냐' - '말도 안돼', '장난하냐', 직역을 살리고 싶다면 '농담하지 마'
'그런...' - '그럴 수가...', '그게...'

로 문맥에 맞게 가려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4. 상황이나 인물관계, 도구 등의 이해부족이 눈에 띕니다.
△△ 1기 4화에서 OO이 OOO에게 물담배를 권하는 대목을 '마시겠는가?'라고 번역하셨는데, 물담배는 연기를 물 속에서 한 번 걸러 그것을 피우는 것입니다. 꼴꼴거리는 물소리는 그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거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리입니다. 실제로 다음 장면에서 OO이 연기를 내뿜는 것만 체크했어도 담배를 '마신다'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 님 자막은 아니지만, 모처의 AIR 자막에서 미스즈가 '배가 아프다'고 한 번역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스즈가 칸나의 현신이고 앞 장면에서 등 쪽에 날개 실루엣 장면을 그린 것만 생각해도 '등이 아프다'라고 번역해야 올바른데, 이 자막을 만든 사람은 단순히 미스즈가 아프다고 구부정하게 몸을 웅크린 장면만 보고 섣부르게 '배가 아프다'라고 번역을 해버린 겁니다.
OO과 OOO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세', '~게' 같이 말을 끝맺는데, 두 사람 사이는 격식을 차린다기보다는 허물없는 친구 사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리 그런 시대라도 이럴 때는 평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존칭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높이지 않아도 될 물건같은 것도 높인다든지, 존대 표현이 지나쳐 글 전체가 어색해 보이는 것도 첨언하겠습니다.

5.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지 않는 구어체, 수동태 표현이 자주 보입니다.
'~는걸', '~서는', '~려나' 같은 표현은 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구어체 표현입니다. 일률적인 표현을 지양하기 위해 간간히 섞어 쓰는 정도가 딱 좋겠지만, ****** 님의 자막에는 이런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대사가 일상 생활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어체를 쓰고 있는 만큼, 번역도 이에 따라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동태 표현은 나중에 링크할 블로그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밖에도 띄어쓰기 등 여러 가지가 더 있지만 우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정말 글이 길어졌네요. 읽으시면서 기분이 과히 좋지 않으셨을 겁니다. 듣도보도 못한 웬 이상한 놈 하나가 이리도 태클을 거냐...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가 자신의 자막을 어떤 식으로 만들든 그 권리는 분명히 자막을 제작하는 제작자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 님의 그것은 많은 분들이 찾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 님의 자막에 나오는 어법이 올바른 어법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창구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좀더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린 학생들은 이런 어법에 물들고 있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포스팅과 덧글들의 상당수를 살펴보면 어이없는 문법 투성이입니다. 개인이 만드는 자막에 분명히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만, 무단도용과 수정 금지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매끄럽고 올바른 번역도 필요하다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번역에 도움이 될 만한 포스팅을 링크해 드리겠습니다. 현직 만화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완 님의 블로그에 자신에게 주는 번역 지침이란 이름으로 쓴 포스팅입니다.

http://panzerwind.egloos.com/category/%EB%B2%88%EC%97%AD%20%EC%A7%80%EC%B9%A8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만 최근에 정식 판권물 번역 일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판권물 소식이 사실이라면, 작업하다가 표현이 막히거나 클레임이 들어왔는데 해결을 하기 힘들 때 메일을 주시면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나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H-Blue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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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을 한 건지 괜한 짓을 한 건지 보내놓고 나서 고민중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