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능을 본 지 1년이 지났습니다.

1년 전 오늘이 떠오르네요.  (정확히 1년은 아니지만,)

텅빈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조용히 그냥 터벅터벅 시험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하늘은 어둑어둑 해 지고 검은 코트를 입은 학생들이 북적대는 거리를 그렇게 걸었습니다.

친구녀석을 만나 어땠어?라는 의미없는 얘깃거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여느때처럼 정치니 교육이니 머리 아픈 소리를 늘어 놓으셨습니다.

얼마쯤 흘렀을까요.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네요.

컴퓨터를 켜고 TV를 켰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뭔가 좀 시끄러웠으면 싶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우울해졌습니다.

우울할 일은 없었습니다.  

미련따윈 없었습니다.  그리 못친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분명 우울할 일 따윈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  

한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끝이다.

엿같은 수능도 끝이고, 꼴뵈기 싫은 담임 보는 것도 끝이다.  

다 끝인데 왜.. 왜.. 기분이 이런 걸까.  왜..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역시나.. 끝이라서 그런 걸까.

담임의 잔소리를 듣던 하루도, 공부에 시달리던 하루도 끝이 나지만...

오늘 급식은 무슨 반찬일지 기대하는 하루도, 친구녀석이랑 둘이서 오래된 CDP에

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하루도 끝인 겁니다.

대학생이 되면 분명 여학생도 만나고 MT도 가겠지, 새로운 수많은 즐거운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여태까지 즐거웠던 수많은 것들 역시 추억으로만 남게 되겠지.

너무도 당연한 거지만.. 제겐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단순한 녀석이라 대학교 입시 설명회도 돌아다니고, 하고 싶었던 게임도

마구마구 하면서 금방 또 잊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든 가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겹고 힘든 오늘 하루도 즐겁게 살았으면 하네요.


내일의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어제가 될 테니,



뜬금없이 크리스마스 생각에 가슴이 설레입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도 지겹고 짜증나는 날이 되겠지만, 내년의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