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2005년 대입 수능 성적표가 발표되었습니다. 시험부정 사건에다 성적처리 방식의 변화로 학생, 학교, 학부모 모두가 대혼란에 빠져 있는데요. 대학입학을 가늠하는 하나의 ‘시험’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최근 헌법소원까지 들먹여지는 부동산중개사 시험의 난이도 문제, 보통 몇백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공무원 시험, 고시폐인이 수없이 모여 있는 신림동 고시촌 등을 볼때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단순한 통과의례 이상의 지배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험공화국이자 학벌사회인 대한민국,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지, 해결 대안은 없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이번에 발표된 2005년 대입 수능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 무엇이 문제인 것입니까?



<김흥주>
이번 수능 발표와 관련해 국내 모든 언론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단어가 ‘대혼란’과 ‘로또수능’이라고 합니다. 이전과는 달리 수능 성적표가 학생을 일렬로 줄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서열화된 대학구조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인데요. 2005년 수능 발표장이 보여준, 우리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개인이 대학을 선택하는 데 소위 ‘진로지도’라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역량과 적성에 맞는 대학을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능’이라는 국가시험의 결과를 가지로 학교의 ‘진로지도’를 통해 개인이 갈 대학이 결정된다는 특이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점수별 대학배치표가 있고, 여기에 수능석정을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선착순으로 대학이 결정되어 져야 하는데 이번만큼은 이러한 ‘줄세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로또수능’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둘째, 부정행위자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등장한 ‘노란봉투’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수능 성적표를 노란봉투표에 담아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부정행위로 시험이 무효 처리된 학생들에게는 성적표 없는 빈봉투를 전달한 것이죠. 이를 통해 부정 연루자를 알 수 없도록 한 학교측의 배려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라나는 청소년에 대한 대단한 배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으로라도 성적을 올려야 하는 우리 사회의 시험공화국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내신 부풀리기나 부정행위 묵인 등으로 학벌사회 조장에 앞장섰던 학교가 ‘면피용’으로 ‘노란봉투’를 만든 것 아닌가 하여 씁쓸한 마음이 앞섭니다.



<사회자>
수능시험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대단하다고 보여 집니다. 수능시험의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기로 하죠.



<김흥주>
수능시험은 객관식 시험입니다. 몇 개의 보기 중 정답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것만 출제할 수밖에 없죠. 때문에 평가영역의 한계가 본질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력, 지도력 등 지식사회에 맞는 자질은 애초부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또한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 인문학 등은 절대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답’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상대 진리 개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사실 객관식 시험은 원래 “대학에서 수학할 수 없는 최소 인원을 가려내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현재의 수능시험은 ‘대학에 들어가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애초부터 문제가 있는 시스템으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해버리는 수능시험과 대학입시가 절대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사회, 그래서 대한민국은 시험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공화국으로 볼 수 있는 단상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유치원 교육부터 초등교육, 중ㆍ고등 교육이 모두 대학입시에 연결되고 있죠. 그래서 우리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회현상으로 ‘고3 가족’, ‘고액과외’, ‘유명학원’을 뽑기도 합니다. 수능시험은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 가면 취직시험을 준비합니다.

공무원 시험, 각종 자격증 시험 등 개인은 시험을 위해 태어났으며, 시험을 통해서만이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개인은 ‘평생 학생’이며, ‘평생 수험생’이라고도 합니다.



<사회자>
시험공화국이라는 재미있는 규정을 해주셨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왜 나타나게 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해보죠.



<김흥주>
시험공화국, 대한민국은 다음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사회, 단 한번의 수능시험과 대학입학으로 인생이 나머지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 연수ㆍ교육ㆍ자질향상보다 ‘시험’만으로 국가 공인 자격증이 인정되는 사회, 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개인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런 것들이 시험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문제는 심각합니다. 무엇보다 지나친 경쟁의식과 이기주의 만연현상을 들 수 있죠. 2등 이하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1등만 존재하는 사회도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상실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험은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해가는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대학입시 -> 국가고시 -> 승진시험’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개인의 성공여부를 결정하죠. 이 과정에서 사회이동이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폐쇄사회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돈’입니다. 계층 재생산이 시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강남 부유층의 서울대 독점, 고시 독점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균형 잡힌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근 발표된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자료에 따르면, 우리 학생들은 시험에 유리한 읽기, 수학, 과학 등에 대한 성취 수준은 높았지만 교과에 대한 흥미도와 주도적 학습능력, 자신감, 협동학습능력 등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이 만든 폐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교육이 지속되는 한 국가의 미래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사회적 격차는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지속적인 사회갈등의 요인이 되죠.



<사회자>
결국 학벌사회 때문에 시험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무엇인가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흥주>
경쟁사회에서 공동체 사회로의 이동이라는 ‘패러다임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경쟁과 시험이 인간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탈피해야 하며, 경쟁에서 이긴 소수에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시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재의 평가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학벌주의 사회의 해체를 위해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대(大)성찰이며, 시민사회의 성숙이라고 봅니다.

시급하게는 학벌보다 개인의 능력이 우선되는 노동시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요. 기득권의 저항을 강력히 해쳐나갈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불교방송, [아침저널-김흥주의 사회분석] 방송내용, 12월 16일 07:35-07:50)


http://www.ypik.or.kr/

한국 청년 정책 연구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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