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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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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Part 5


Part 6


Part 7


Part 8




글 출처: http://nasanha.egloos.com/10376666

"운명의 게임"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대활약을 펼친 북한 축구 대표팀의 당시와 오늘을 교차하며 그려낸 수작이었죠. 당시 영국 사람들에겐 어지간히 커다란 쇼크였던 것 같습니다.  경기 장면은 물론, 북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어 놓았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빗장수비의 명성(악명?)이 드높은 이탈리아 수비진을 뚫고,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높던 파게티를 허수아비로 만든 채, 박두익이 결승골을 터뜨린 순간 구장은 거의 뒤집어집니다.  전 관중이 기립하여 마치 잉글랜드팀이 이긴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지요. 흡사 능라도 경기장같았습니다.  



북한팀이 머물던 곳은 영국의 어느 소도시 미들스버러였습니다.  그 도시에 여장을 풀었던 북한 선수들은 완벽한 스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미들스버러 시민들은 30년이 넘은 세월 뒤에도 어느날 갑자기 동양에서 날아와 자기네 라이벌로 꼽히던 이탈리아의 코를 깨놓고 고향 앞으로를 시켜버린 이 황색의 작은 탄환들 (선수 전원 100미터 11초대에 평균신장 165cm)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보관들 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북한을 응원하기 위해 3000명의 미들스버러 시민들이 리버풀까지 달려갔다기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 선수들은 또한 매너넘치는 축구 선수들이었고, 주눅같은 것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당당했다고 합니다.  코리아라는 나라를 지도에서 찾는 사람은 아마 100명 중에 0.1명도 없었을 영국에서, 그리고 미들스버러에서 코리아는 그저 북한 축구팀의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8강전......   북한 축구팀은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가 도사린 우승후보 포르투갈과 맞섭니다.  리버풀 구장은 동양에서 온 신비스런 축구팀에 호기심을 빛내는 사람들로 미어터졌지요. 역시 미들스버러 시민들도 진을 치고 응원을 했구요.   아니나다를까 북한 축구팀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2002년의 히딩크 사단의 역량도 대단하긴 하지만, 1966년 포르투갈과의 8강전 전반전에서 북한이 보여준 경기력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북한은 그 놀라운 스피드와 조직력으로 포르투갈팀을 몰아부치기 시작, 경기 시작 23초만에 첫골을 얼마 후, 두번째 골을 성공시킵니다.   2:0


그때 코쟁이들 사이에서 한 동양인 신사가 인공기를 휘두릅니다.  그때 인공기..... 정말 멋집니다.  내 앞에서 인공기 휘두르는 사람 보면 113 아닌 정신병원으로 환자 데려가라고 신고하고 싶어지는 저지만, 그때 인공기의 펄럭임은 정말 가슴 벅찼습니다. 동시에 관중들은 외치기 시작합니다. We want three We want three..... 우리 말로 하면 삼대빵 삼대빵 정도 되겠죠.  북한 선수들은 영어도 잘했는지 그 기대에 멋지게 부응합니다.   삼 대 빵~~~~~~~~~~~~~ 한골을 더 넣어버린 겁니다.


관중석은 내려앉을 지경이 됐고 포르투갈 선수들은 망연자실, 이제 신비의 동양팀 북한이 준결승에 올라 잉글랜드와 맞붙게 되는 꿈같은 상황이 한 치 앞으로 다가온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검은표범 에우제비오가 그 꿈을 와장창 깨 버립니다.  에우제비오는 질풍같이 그라운드를 내달리며 북한 수비진을 유린했고 북한 수비진은 골을 계속 허용했습니다.  페널티킥 두번을 포함해 5:3으로 역전패했습니다만, 북한 선수들은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3:0으로 리드하고 있었을지언정, 그들은 수비에 급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에우제비오가 뛰어난다 해도 북한 선수들이 이탈리아가 잘하는 짓거리대로 '한 골 넣고 전원 수비'를 감행했다면 아마 그들은 잘하면 4강, 더 잘하면 꿈의 윔블던 구장에서 잉글랜드의 최고 스타 보비 찰튼, 보비 무어와 맞설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소진되어 그라운드에 고꾸라지면서도, 그래서 상대방을 따라잡지 못해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면서도 그들은 한사코 포르투갈의 골문을 향해 뛰었습니다.  그를 지켜보았던 영국 관중의 회고 하나를 들어 볼까요

"“마치 모든 선수들이 말을 타는 기수들처럼 작았지만 혼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고 신비로웠다"


아쉽게도 졌지만 북한 선수들은 끝까지 당당했습니다.  주민들은 그들에게 사인을 다투어 청했고 성대한 송별회까지 열었다지요.... 그리고 영국인들은 북한 선수들이 불렀던 노래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BBC 카메라는 생존해 있는 선수들이 평양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부르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았구요.


그 당당한 북한 선수들 앞에 쪼그라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장 한국 정부가 그랬죠.  북한 축구팀이 월드컵 예선에서 가공할 실력을 발휘하자 한국 축구 협회는 참가 신청을 포기합니다. 그 뿐이 아니라, 북한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본 뒤에 중앙정보부에선 아예 중앙정보부 축구팀을 창설합니다.  그 팀 이름이 '양지'죠 (김종필이 지은 유명한 중앙정보부 부훈..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딴 겁니다)  거기에 더하여 속좁은 남한 사람들은 북한 선수들이 포르투갈 전에서 체력이 떨어진 이유는 이탈리아 전 승리 후 술판을 벌이고 유곽으로 달려가 "백마를 탔기" 때문이며 그것 때문에 8강의 공도 헛되이 많은 수의 선수들이 아오지로 끌려갔다고 쑥덕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영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국교도 없고 국가승인도 없는 나라의 축구팀을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 참가 거부를 해 버리자니 FIFA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인공기를 올리고 북한 국가를 대놓고 연주하자니 한국과 그 후견인 미국 눈치가 보이고......  그래서 영국 정부는 묘안을 냅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가 연주를 결승에 한한다(결승 토너멘트에 한한다였던가...)는 기발한 발상이었죠.  설마 북한이 결승에 오를리는 없고, 인공기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에..."가 울려 퍼질 까닭이 없었으니까요.    


"자유로운 서방세계"의 졸렬한 틈에서 인공기는 빛났습니다.  국가 연주 없이도, 비록 인공기를 앞세우고 그들이 입장하지 못하였어도, 그들은 당당했고 승리를 거두었고 그들의 조국의 이름을 만방에 떨쳤습니다.  세계 축구사에 남는 광휘와 더불어 말입니다.  


그로부터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을 생각하면 많이도 아쉬워집니다.  그 월드컵 이후 북한은 한 번도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지요.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때에는 오일 달러 먹은 것이 분명한 심판의 농간으로 4강진출이 좌절되자 선수들이 심판을 밟아 버림으로써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출장 정지를 먹기도 했고, 역 후 차이를 벌려 가던 남북한의 국력 차이처럼, 축구 역시 좀체 그날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 채 시들어만 갔습니다.   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의 아시아대표 자리는 원래 북한의 것이었지요.  FIFA의 출장 정지 때문에 박종환 사단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고........


이제 2010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다시 포르투갈과 맞붙는다고 합니다.    북한 축구가 40년 전의 당당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석기시대로 돌아가버린" 나라를 기적적으로 재건하고 한때 남한을 훨씬 앞질렀던 국력의 조선인민공화국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지금, 그들의 희망의 문이 축구를 통해 다시 열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박두익의 시원한 슛이 떠오릅니다.  무서운 스피드로 이탈리아 문전을 헤집던 한봉진의 질주... 그리고 바바리 코트를 차려 입고 열광하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의연하게 인공기를 흔들던 조선인민공화국 외교일꾼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당당함이 좀스러움으로 변해 버린 40년 세월을 뒤로 하고, 그들이 다시 빛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새벽의 경기를 보고 문득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러닝타임 80분. 한글 자막은 없지만 영어 자막과 한국어 대사도 있고 해서 그럭 저럭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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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으로 태어나 게임 폐인으로 지는 중. 나의 게임 인생도 이제는 황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