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리니지2라는 게임을 오래했다면 오래해왔다.
서버의 이름이 숫자로 불리던 그 시절 2섭과 7섭을 넘나들며 각 종족의 2차전직을 모두 마치는 것을 목표로 역시 밤을 지샌 경험과 현재의 `풍요의시대` 속에서 혈전과 공성에 찌들어 지내기 까지... 그리고 최근 22섭으로 옮겨 새로운 서버에 적응해 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리니지2와 함께 했다.

처음 리니지2가 나왔을 때 그 화려한 그래픽의 이펙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임성을 떠나 우리도 그와 같은 블록버스터게임을 만들 정도로 게임산업이 거대한 성장을 거듭했다는 사실과 온라인인프라의 강국이라는 자부심에 해외의 반응을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리니지2가 지금의 위기를 맞이한 것은 게임기획에서부터 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것에 있다. 광활한 맵의 새로운 지역을 디자인 하는 것으로 그래픽을 중시한 눈요기감으로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즉, 유저들의 트렌드에 유연할 수 없는 정형화된 게임시스템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그러한 결과의 가장 대표적인 악영향이 `현질`이라는 현상을 낳은 극악의 노가다와 아이템 가격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형 게임성의 폐단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이제 지존 지향은 더 이상 커뮤니티가 강조되는 온라인 게임의 트렌드가 될 수 없다. 지존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는 것으로부터 점점 도망쳤고 어느새 게임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역효과를 양산했다.

현재 과거 주목 받지 못하던 게임의 방식들이 사람들의 눈에 하나 둘 확산되어 가고 있다. 지존지향이 아닌 게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파티지향형 게임이 그것이다. 외국산 게임들의 특징이며 이들은 오래전부터 게임을 게임으로 만들려는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정서적으로 이질적인 스토리와 그래픽으로 그 동안 국내에서 눈에 두드리지지 못했던 이러한 게임시스템이 리니지에서 비롯된 한국형 온라인 게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게임의 완성도와 게임성을 떠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게이머들의 트렌드와 의식수준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나의 프로젝트에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스스로의 아바타에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것에서 보람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문화가 온 것이다.

속칭 와우라는 게임이 과거 울티마나 에버퀘스트라는 외산 게임의 시스템을 하나씩 떠 오르게 하지만 와우라는 게임의 국내 흥행성적을 떠나 이미 유저들에게 상당한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리니지류의 한국형 온라인 게임에 젖어 있던 나에게 과거 눈에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이팩트도 좋지만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양함 속에 존재하는 나만의 케릭으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임무와 역할을 해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게임기획의 중요한 결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재미를 주어야 하는 것이 원론적이지만 커뮤니티란 나만의 즐거움을 찾도록 이기적인 면을 배려할 수 없다.



리니지2보다는 좀 더 진화한 시스템을 찾고 싶다. 게임 기획에 대해 엔씨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 엔씨가 리니지를 통해 게임요소의 다른 점을 발견하게 끔 만들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뭔가 충격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길드워의 국내흥행에 메달려 있는 그들을 보며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그에 앞서 기업의 사회적인 영향에 대한 그들의 철학의 부재에 대해 묻고 싶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김 대표의 인터뷰가 실린 무가지를 보고 기업철학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뜬금 없이 이상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질과 게임내에서의 도의적이지 못한 행위요소들은 커뮤니티가 빚어낸 책임이 아닌 그렇게 시스템을 설계한 게임자체의 문제는 아닐까 지적하고 싶다. 법체계 속에서 사회가 돌고 있듯이 자유도라는 이름하에 한국의 온라인 게임문화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CCR의 사태를 지켜보며 이제는 한국의 게임산업이 제대로 한 방 먹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리니지2의 미래는 암울하지만 한국의 게임 기획자들은 게임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선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