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게시판에 오게된 후 언제나 가장 많이 글을 쓰게 되는 부분이 바로 현금거래 부분인데, 아직까지도 다른분들에게 이렇다할만한 의견을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MMORPG가 현실 세계를 시뮬레이션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마찬가지로 게임 내에서도 '가치'를 축적할 수 있고, 또 그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수단 - 교환창, 개인상점 - 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과 가상의 가치를 착각한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기는 어렵습니다) 게임 내의 가치를 현실의 가치로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과, 그것이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이 글은 현금거래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따지는 글은 아니므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리플에서도 될 수 있는 한 현금 거래가 좋은것이냐 나쁜 것이냐, 혹은 현금 거래를 허락해야 하느냐 막아야 하느냐에 대한 도덕 논쟁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논리에 근거해 업체가 이윤을 위해 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들이 왜 "아이템 현금 거래가 온라인 게임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사실 지금이 온라인 게임이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이라고 생각하면, 그 당시는 온라인 게임이 워낙 마이너한 미디어였고 회사들도 약소했고 사람들의 인지도도 낮았고 하니 아이템 현금 거래 관련으로 문제 뉴스 같은게 나오면 네거티브 마케팅 효과가 있기는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 메이저 산업화하고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메이저 개발사가 과연 아이템 현금거래를 좋게 생각할까요?

많은 분들이 메이저 개발사들이 아이템 현금거래를 내심 옹호한다고 생각하시는 근거로 1) 사람들이 돈벌이로 게임을 하려고 몰려드니까. 혹은 2) 게임 내의 아이템들이 현금으로 생각되어 그만두지 못하니까" 라는 점을 듭니다.  

1번 의견은 밑에 "현금 거래가 잘 되도록 한 게임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 라는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이 명제가 사실이라면 아이템의 현금 거래와 계정 거래를 회사에서 보장하고 권장하기까지 한 '진 공작왕'이나 게임 내 플레이어의 저작물을 플레이어의 것으로 인정한 미국의 SecondLife같은 게임이 가장 흥행에 성공했어야죠. 하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1번 의견을 내시는 분들의 또 한가지 내적인 전재는 "현금 거래가 활발한 게임은 게임성이 낮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게임성을 인정받고 있는 DAOC나 에버퀘스트의 미국에서의 아이템 현금거래 실태는 우리나라와 견줄만 합니다. 미국의 한 교수가 "에버퀘스트 내의 아이템을 모두 현금거래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환산하면 그 경제 규모가 불가리아보다 크다" 라고 이야기했던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저는 여기서 리니지로 대변되는 한국의 메이저 온라인 게임과 DAOC등으로 대표되는 해외 온라인 게임의 게임성을 비교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게임성, 혹은 게임의 재미 요소와 현금 거래 여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현금 거래가 되는 게임이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기가 있는 게임에 현금 거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 내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게임 내에서 경쟁의 요소가 적으면 적을 수록 현금 거래의 욕구는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은...이러한 종류의 "원인을 제거해서 문제를 없애는" 식의 생각을 볼 때마다 한 법관의 "스타크래프트에는 아이템 거래 시스템이 없어도 잘만 팔리두만, 왜 온라인 게임에는 아이템 거래 시스템이 있습니까?" 라는 무지한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번 의견에 대해서는, 저 역시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그러한 심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아이템 현금거래에 익숙해지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게임에 흥미가 없어지자마자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현금으로 바꾸고 그 게임을 그만 두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인 추측과는 반대의 행동이지요. 이것은 회원이 매달 지속적으로 돈을 내야 사업이 유지되는 월단위 과금 방식 MMORPG에는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 "그럼 그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사서 계속 그 게임을 하게되니 똑같은 일이 아니겠느냐" 라고요?

여기서 게임 시스템에 대해 간단한 고찰을 해 봅시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MMORPG에서의 아이템이라는 물건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 실력 등에 대한 보상 - 특히 시간 요소가 크죠 - 으로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간 요소가 큰 이유는 두말 할 나위 없이 현재의 MMORPG들이 한달에 얼마라는 식, 혹은 게임방에서라면 한 시간에 얼마라는 식으로 '시간 단위'로 과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들이 어림잡아서 XX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계산하는 것 처럼, MMORPG의 제작자들도 가상 세계 내의 가치를 시간으로 환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 A가 6개월을 들여 키운 캐릭터를 다른 사람 B에게 팔았다고 칩시다. B라는 사람은 캐릭터를 사서 할 정도로 이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아이템 현금 거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B라는 사람은 게임 회사에 돈을 내고 캐릭터를 키웠겠지요. 하지만 현금 거래 시장이 있음으로써 본래 B로부터 개발사로 가야 했던 돈이 A라는 사람(그리고 중개 사이트)에게로 가게 됩니다. 바로 음악 CD나 패키지 게임의 중고 매매로 인해 음반사나 패키지 제작/유통 회사가 입는 피해와 동일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피해는 제작사 쪽에서 볼 때 매우 명확한 것으로써,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게임을 하는(그리고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이 게임을 하지 않았을) 유저의 수 같은 피상적인 수치 따위 보다 훨씬 피부에 와 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해는 게임이 인기가 있을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저는 메이저 개발사들이 아이템 현금 거래에 반대하는 것은 단순한 제스쳐가 아니라 정말로 매출에 미치는 피해를 걱정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