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면서 세계취향 변화에 둔감해져

Newsweek-N'GAI CROAL 기자

Legend of the Fall


로스앤젤레스의 E3 게임쇼에 참가한 닌텐도사의 기자회견은 언제나 다른 경쟁업체들보다 소

란스럽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 일례로 올해 초 새로 부임한 레지널드 필

스-에임 북미 담당 수석 부사장은 기자들 앞에 나서 “내 이름은 레지이며 이제부터 끝내주는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비디오 자료를 보여줬다. 화면에는 ‘메트로이드 프라임,

에코스’의 황금갑옷을 입은 여주인공과 ‘스타 폭스 2’의 용감무쌍한 털북숭이 폭스 매클라우드

등 고전적인 닌텐도 게임 주인공들의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박수갈채를 받은 것은 닌텐도가 새로 내놓은 ‘젤다의 전설’ 게임 예고편이었

다. 과거의 영웅 링크가 현실감 있는 3D를 통해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관람석의 성

인 남성들까지 일부 눈물을 훔쳤다. 닌텐도는 1998년 미국 시장의 4분의 1, 그리고 비디오 게임

기용 타이틀 부문의 베스트셀러 톱 10에서 다섯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옛날의 영화를

되찾고 싶은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의 황금기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닌텐도뿐만 아니라 모든 일본 게임

메이커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북미 비디오게임 시장이 최근 몇년 사이 살아나고

있지만 일본 게임 메이커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카디아 인베스트먼트사의 존

테일러에 따르면 일본 업체들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998년 49%에서 2004년 29%로 뚝 떨어졌

다. 닌텐도와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절반으로 줄었고 서구의 게임 메이커들이 그 빈자리

를 차지했다. 현재 베스트셀러 게임 톱20 리스트에는 미국의 일렉트로닉 아츠(EA)사의 타이틀

이 9개, 액티비전과 테이크-투 같은 다른 구미기업들 제품이 6개 올라 있다.

게임 메이커들이 특수를 맞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일본 기업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

편 예전에는 게임 개발에 투자한 돈을 일본 국내시장에서 단기간에 회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은 그럴 형편도 못된다. 일본 시장에서는 서구 게임 메이커들이 아직 이렇다할 위협이 되지 않

지만 게임기 소프트웨어 매출은 1998년 34억달러에서 지난해 22억달러로 감소했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미국시장이 필요하다”고 남코사의 하라구치 요이치 부사장은 말했다.

1990년대 비디오게임 산업을 쥐락펴락하던 일본 게임 메이커들이 어쩌다 그렇게 빨리 쇠락했

을까. 일본 기업들이 수세에 몰린 데는 몇가지 추세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일례로 비

주얼 리얼리즘의 향상으로 문화적 특수성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닌텐도의 인기 게임 중

다수에 등장했던 난쟁이 배관공 마리오는 예전에 비해 보편적인 호소력이 떨어진다.

일본 기업들은 또 독자적인 디자인 능력이나 타사와의 제휴를 통해 서구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취향을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현재의 시장에서는 히트작을 만드는 세가지 요인이 있다”며 미

국잡지 X박스 네이션의 사이먼 콕스 편집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현지 문화에 어울리거나 초

현실적이거나 기존 인기 게임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의 게임은 현재 이 세가지

측면에서 모두 빵점이다.” 게임 산업은 변했는데 일본 기업들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게이머들의 취향이 서로 달라진 것은 부분적으로 인구구성의 변화 탓이다. 비디오

게임은 원래 완구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처음에는 게임 메이커들이 주로 8~12세

아동을 겨냥했다. 1995년 출시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그들에게 게임이 ‘쿨’하다는 인식

을 심어줬으며 그 세대는 3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게이머들의 연령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아카디아의 테일러는 말한다. 1990년대에는 마

리오와 젤다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만화 캐릭터들이 주도했지만 2000년대의 새로운 우상은 ‘그

랜드 세프트 오토 바이스 시티’의 토미 버세티처럼 총을 찬 터프 가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

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탄생했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일본 기업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졌지만 많은 기업들은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

다. 예를 들어 세가와 남코는 아직도 오락실용 게임 회사라는 자신들의 뿌리에 집착한다. 하지

만 지금은 오락실 기계보다 게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사는 가장 인기있

는 몇몇 게임을 오락실용으로 먼저 내놓고 나중에야 게임기로 출시하는 관행을 고집스럽게 계

속하고 있다. 오락실이 아직도 인기를 누리는 일본에서는 이 방법이 먹혀든다. 반면 미국에서

는 오락실에서 먼저 성공을 거둔다 해도 새로운 게임기용 소프트웨어의 홍보에 전혀 도움이 되

지 않는다.

일본의 게임 메이커들은 또 어떤 게임 플랫폼을 표준으로 지지하느냐는 결정에서 잇따른 실착

을 했다. 2001년 2월 세가가 자신들의 비디오게임기 생산을 중단하고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면서 즉각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게임기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러나 그 결정은 결국

미국에서는 ‘중간’, 유럽에서는 ‘중하’, 일본에서는 ‘낙제’의 성적을 거뒀다.

캡콤은 2002년 11월 느닷없이 닌텐도 게임기인 게임큐브 전용의 타이틀을 출시하겠다고 발표

했다. 고위 경영진 중 한명이 동키 콩과 마리오 형제들을 개발한 닌텐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섯개 중 하나는 실패했고 하나는 소

수 매니어층의 호응을 얻었으며 또 하나는 취소됐고 나머지 둘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캡콤

은 200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1백50달러짜리 특수 전용 컨트롤러가 필요한, X박스 전용의 게

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일본 기업들의 또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일본의 게임 개발자들은 독불장군처럼 행동하

는 경향을 보인다. 게임이 연간 1백80억달러의 글로벌 산업으로 떠올랐지만 일본 기업들의 사

업방식은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임 메이커들은 시장 조사와 소비

자 피드백을 폭넓게 활용하지 않는다. “거의 완성 단계에서 제작 파트너가 게임을 보는 것이

일본의 관행”이라고 한 미국 주요 게임 제작사의 전 사장은 말한다. “그러나 피드백이 없으면

타깃을 벗어났는지 알 수 없다.”

일본 기업들이 스스로 무덤을 팔 동안 서구의 게임 제작사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미국 시장의

취향 변화에 맞춰 정조준했다. 그들 중에는 해리 포터, 게임 ‘스파이더 맨 더 무비’, 영화 니모

를 찾아서’, 그리고 톰 클랜시 소설 몇종에 대한 권리 등 할리우드의 굵직한 라이선스들을 취득

한 회사들이 많다. 스포츠 비디오게임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미국의 EA가 그 시장의 가장 큰 몫

을 차지한 반면 소니와 세가의 게임들은 각각 낮은 품질과 마케팅 부진으로 허덕였다.

“서구의 게임 시장은 게임 매니어들로부터 일반대중으로 기반이 확대됐다”며 노무라 증권의

애널리스트 사쿠라이 유타는 말을 잇는다. “스포츠와 할리우드 영화에 기초한 게임들(EA의 두

가지 강점)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회사들도 지난 10년 사이 미국 게임 업체

를 잇따라 인수한 덕택에 대다수 일본 제작사들이 아직 터득하지 못한, 현대적인 사업 및 개발

관행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일부 일본 제작사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러 회사가 미국 라이선스에 대한

반감을 떨쳐냈다. 남코·캡콤·세가·스퀘어는 ‘뉴욕탈출’·‘매트릭스’·미키 마우스와 같은 할리우드

자산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고나미는 최근 게임 사업 본부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스퀘어와 남코는 파이널 팬터지 XI 등 다수가 참여하는 대규모의 온라인 게임, 그리고 미국 제

작사 플래그십 스튜디오스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PC 게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과제는 하루바삐 사업구조를 재조정해 게임기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

는 전환기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임 하나를 출시하는 비용이 5백

만~1천만달러에서 약 1천5백만~2천만달러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순순히 두손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남코의 하라구치는 ”미국과 유럽시장을 먼저 겨냥한 아이디어들을 생각

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