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커블한 카멜레온이 되어야 한다


Remarkable : 주목할만한, 놀랄만한

한 2-3개월 전쯤이었던 듯 하다. 아는 지인의 책장에 꽂혀 있는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문득 빼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고만 기억이 있다.

사실 마케팅과 관련하여 하루에도 수많은 서적들이 출간되고는 있지만 주로 개념적인 이야기들, 즉 좋은 이야기들만 남발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세스 고딘의 명쾌한 법칙으로 쓰여진 ‘보랏빛 소가 온다’는 필자에게 무척이나 인상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코엑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게임컨퍼런스(KGC 2004)에서  김학규 대표(IMC Games)의 강의 내용 중에서도 세스 고딘이 이야기 한 ‘리마커블’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강의록을 볼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보랏빛 소가 온다' 의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히 개념적인 내용만 간추려 보면

- 광고는 죽었다. 유저들에게 강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
- 우리는 들판을 운전하며 지나가다가 보랏빛 소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며 다시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 보랏빛 소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사각형의 차들이 가득 찬 가운데 동그란 ‘뉴비틀’이 지나가는 것과 같다.
- 그렇지만 온통 보랏빛 소로만 가득 찬다면 그것은 이미 리마커블 하지 않다.
- 과거 안전하고 평범한 제품을 만들고 위대한 마케팅과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새로운 법칙은 리마커블한 제품을 창조하고, 그런 제품을 열망하는 소수를 공략해야 한다.

라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필자의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그렇다면 과연 게임에서의 리마커블은 무엇일까?’에 대한 것들이었다.

평범한 것은 팔리지 않는다?
물론 이전의 게임들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의 게임이라면 당연히 유저들이 게임을 즐길 이유는 없다. 또한 과거 주류를 이루었던 팩키지 게임이라면 평범함은 그 자체로 무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기’, ‘괴혼’ 등의 리마커블한 게임들에 대한 유저들의 주목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반면 MMORPG처럼 유저들간의 자연발생적인 컨텐츠를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평범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그 안에 어떤 컨텐츠를 담는가, 어떤 안정적인 시스템과 유저 지원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가에 따라서 평범한 것도 충분히 팔릴 수 있다.

안전한 것은 위험하다?
사실 게임에 있어서의 안전한 길이란 100%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리니지 2 게임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상품과 서비스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즉 이제 게임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것이기 때문에 서비스는 단순히 ‘리마커블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반면 컨텐츠를 제작함에 있어서의 ‘리마커블’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로 존재한다. 규모가 영세한 중소규모 회사들에게는 안전한 길이란 위험한 길이 맞다. 우리가 똑같이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면 훨씬 더 빠르고,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대규모의 회사들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중소규모의 개발사들이 “우리도 블록버스터 MMORPG로 경쟁하여 대박을 내겠소!” 라며 개발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지금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비슷비슷한 MMORPG를 지켜보며, ‘그들이 들이는 노력에 비해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의 것은 달라. 타격감이 있어. 그리고 전략 전술이 있어. 독창적인 무언가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어. 어째서 유저들은 이것을 모르는 거지?”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 게임에 돈을 내고, 현재 MMORPG를 즐기는 유저들도 그렇게 느낄까? 과연 지금 즐기는 게임으로 옮겨올 만큼 그 가치를 크게 느끼고 있을까? 그렇기에 지금 게임을 만드는 우리에게는 ‘리마커블’이 필요하다. 그리고 첨언을 하자면 ‘리마커블’은 단순히 호기심의 자극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리마커블은 소비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유저들이 단순히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리마커블한 제품을 사게끔 만들어야 한다. 즉 유저들에게 단순히 독특한 게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그 게임을 즐기고, 열광하고, 그리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얼리 어답터들은 리마커블한 제품에 대한 ‘빠른 경험’과 ‘남들과는 다르다’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돈을 낼 수많은 유저들은 필요가 생기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즉 그들에게는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저의 ‘needs’와 ‘wants’를 파악해야 한다. 결론은 ‘게임 업계에서 무조건 남들과 다른 보랏빛 소를 만든다고 해서 팔리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핵심은 바로 유저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에 있다.

리마커블한 카멜레온이 되자. 마지막으로 필자는 지금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빠르게 변화할 온라인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전지전능한 예지능력을 가진 현인을 모시는 방법이며, 두 번째는 리서치 등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자료 조사를 하고 시뮬레이션하여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이 있으며, 마지막 방법으로는 유저들의 환경 혹은 감성의 욕구 변화에 따라 자기 자신이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빠른 변화의 능력을 환경에 따라 제 모습을 빠르게 바꾸는 카멜레온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회사는 유저들의 요구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지금의 유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색깔을 찾고 그 색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빠르게 대응하는 리마커블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프로세스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 게임을 만들고 있는 나의 조직은, 그리고 우리의 조직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정무식

한국 게임 개발자 협회 회장. 90년대 초부터 본격 시작된 한국의 게임 개발 역사와 함께 해 온 인물로 지금까지 개발과 제작에 참여한 게임수만도 10여개가 넘는다. 한국의 게임 경쟁력 강화에 힘을 써오며 게임 개발자 협회를 이끌어 왔다. 외유내강해 보기보다 파워풀하다. 호소력도 높아 그가 입을 열면 청중은 숙연해진다. 현재 엔씨소프트에서 게임 개발 3실 과장으로 근무중이다.


출처 : 게임스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