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패를 자초하는 개발프로세싱

전석환 모웰소프트 개발팀장


사전적인 의미에서 신화(Myths)는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 영웅 또는 사건과 연관된 전통적이거나 전설적인 이야기'를 의미한다. 특히 신격화된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것과 관습, 종교의례, 혹은 자연 현상들을 설명하는 말이다. 또 하나 선택할 수 있는 '신화'의 정의는 '어떤 특정 그룹에 의하여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는 잘못 설정된 믿음'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게임 개발 프로세스상의 통념(Myths)이다. 필자는 대다수의 개발자들이 어떠한 개발에 관련된 사례와 관례, 또는 의사 결정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통념들, 즉 검증되지 않았거나 잘못 선택된 믿음들에 대해 여기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통념들은 흐트러진 현실을 이해하고 그것에 질서를 부여해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로부터 발생하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에게 통념이란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보는 실체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도출해 낼 때 시작된다.


게임 개발 외에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과거 의학의 경우, 확정적이지 않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통념들이 존재했던 혼란스러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의학에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수 천 가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수 백 가지의 통념들이 의사와 환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하나의 예로 신경외과를 보자. 1935년에 포르투갈에서 발표된 '대뇌의 백질 절제술'이라는 이름의 뇌수술로 1948년에서 1952년 사이에 전 세계에 걸쳐 수 만 번의 뇌 절개 수술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행해졌다.


당시 그 수술은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뇌엽 절개술의 시술 창안자인 신경외과 의사 에가스 모니츠는 194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과정에 대한 모니츠의 이론적 논거는 다른 신경외과 의사인 발렌스타인에 의해 51년 런던의 어느 학술회장에서 결정적인 저지를 당하게 되었으며, 이듬해 의학적 검증이 없었던 모니츠의 이론은 유명한 신문들과 전문지들에게 문제 제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 수술에 대한 열광적인 선호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뇌의 백질 절제술에 관한 잘못된 통념들이 환자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처럼 게임 제작에 관련된 잘못된 통념들은 타이틀과 개발사 그리고 유통사, 심지어 사용자와 업계 시장 전체를 죽이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적어도 12년의 교육과 정과 수련의 기간이 필요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의 자격증이 따로 요구된다.


이와 같이 오랜 기간의 체계적인 훈련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오진으로 인해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해를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게임 개발자들은 수많은 타이틀의 자산적 가치는 물론, 나아가 개발사 브랜드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대부분의 게임 개발 프로젝트는 수 십 억대를 쉽게 넘길 정도의 막중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막중한 비용 처리에 대한 책임은 서너 명의 핵심 개발자의 손끝에서 모든 의사 결정이 선택된다. 제품군에 따라 다소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신제품 성공 확률이 10%이하라는 통계치는 개발자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게 된다.


게임 개발자들이 잘 교육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진다면 그들의 환자들, 즉 게임 타이틀이 자주 죽는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타이틀의 사망률이 너무나 높기 때문에 CEO나 CTO처럼 보다 높은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종종 업계 전체를 죽이는 다음과 같은 모습들을 선보이게 된다.


실패를 자초하는 개발 프로세싱 6가지


▶ 개발 담당자가 '이것은 우리가 작년 타이틀에도 사용했던 방법이다. 우리는 항상 이 방법으로 한다'와 같은 간접적인 이유에 근거하거나 또는 자신의 판단에만 의존하여 주요 개발 의사 결정을 한다.


▶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단기의 개발 결과를 원한다. 초점을 올바른 프로세스에 두지 않고 효과적이며 빠른 결과물 위주의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다.


▶ 타이틀의 마케팅 계획을 세상에서 가장 변덕스럽고 무계획적인 리서치 도구들을 포함하는, 한마디로 함량 미달의 자멸적인 리서치 자료 1-2건에 의해 기준을 삼는다.


▶ 타이틀 초반 작업시 사용자들의 요구에 대한 계량이 가능한 실측적 분석을 하지 않아 개발 프로세싱 과정 중에도 각 실무 담당자는 이 타이틀이 누구를 위한 타겟(target) 타이틀인가에 대한 의식이 없다.


▶ 개발 전반에 걸친 수행 정도의 평가 혹은 수정을 위한 프로세스 측정 시스템이 전무하다.


▶ 개발을 포함한 재무 집행에 관련된 최고 관리자가 그의 영역밖에 있는 개발 비용과 다른 비용들을 알지 못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는 프로젝트 전체의 투자회수와 ROE(투자회수율)에 대한 지식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에, 개발하는 타이틀이 자산적 부가 가치를 가지기가 희박하다.


게임 개발사들 중에 이런 증상들을 하나 혹은 둘 정도 드러낼 때까지는 아마 그 회사는 생존 할 수 있겠지만, 이 증상들 중에 4개 혹은 그 이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그 개발사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정상적인 이익창출은 물론 프로젝트의 종료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 편단된다. 이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개발이다.


위와 같은 잘못된 계획들은 계획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상사 혹은 최고 경영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무지와 통념(Myths)에 근거하여 게임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은 적절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탄 배의 나침반이 고장 났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배의 위치를 계산하거나 별이나 태양의 위치를 고려함으로써 항로를 조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신은 결국 육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나침반이 고장 났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의 배는 바위에 부딪히거나 바다 중간에 표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처럼 게임 제작의 잘못된 통념들을 믿고 따른다면 그러한 게임 타이틀 계획은 나침반이 고장 난 사실조차 모른 채 항해를 계속하는 배처럼 결국 파산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전석환 모웰소프트 개발팀장 프로필>
■ 92-95 대본소 만화 스토리 작가 활동
■ 95 (주)아마게돈 제작위원회.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마게돈 제작 관리직
■ 96 LG 게임스쿨 이수
■ 97-98 (주)소프트맥스, 판타랏사,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제작
■ 98-01 (주)KRG소프트, 드로이얀 넥스트, 드로이얀 2, 열혈강호, 열혈강호 온라인 제작
■ 02-04 (주)모웰소프트, 블리츠 1941 제작중

출처-게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