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제 꿈은 과학자였답니다.

그땐 과학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었습니다.

그냥 그저 과학자라는게 멋져보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과학의 날이 다가오면 제 가슴은 두근거렸죠.

초등학생땐 매년 과학의 날이 되면 고무동력기, 글라이더 날리기와 과학상자 만들기를 개최했죠.

전 고무동력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초등 5학년이 되기전까지 전 친구들의 고무동력기만 만들어 봤지.. 정작 제 고무동력기는

만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친구들의 것이었죠..)

(왠지 모르겠지만 제 고무동력기를 가진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상합니다.  아직도 그런

이상한 두려움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전 늘 프라모델, 게임 CD를 사면 친구집에 가져다주죠..

언제 한번 정신과에 가서 물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5학년의 과학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상한 두려움과 엄마한테 혼날것을 생각하면서도 굳게(?) 마음먹고 3000원 정도의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은 고무동력기를 샀습니다.

그때는 정말 떨렸습니다.  그 고무동력기를 가지고 바로 젤 친한 친구집으로 달려가 그 친구와

함께 고무동력기를 만들고는 친구집에 맡겨놓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곤 며칠이 지나 과학의 날이 되었습니다.

북적이는 아이들, 그리고 그 속에 고무동력기를 쥐고 선 제 모습..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늘 높이 고무동력기를 던졌습니다.

부러질까 무서워서 한번도 날려보지 않은 고무동력기를 힘껏 던지듯이 날렸습니다.

정말... 정말 잘 날았습니다.  제 평생 그렇게 잘 날던 고무동력기는 없었던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던게지요.  고무가 다 풀리고도 바람이 불어 떨어지지 않더군요.

정말 기뻣습니다.   그 누구의 고무동력기도 아닌 제 고무동력기가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결국 전 당당히 고무동력기부문에서 1등을 차지해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제 짧은 생애에서 흔하지 않은 1등이었고, 최우수상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나 1등이오'라고 자랑하고픈 그런 1등이었습니다.)

더욱 기뻣던 것은 교내 고무동력기 대회에서 최우수상, 우수상을 받은 학생들은 김해공항에서 개최하는

고무동력기 대회에 출전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지금 당장 집에 전화해 출전을 허락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전 곧바로 공중전화로 뛰어가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내 고무동력기 1등했다.  내 공항에 가는 대회 나가도 되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런식으로 말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엄마는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제가 고무동력기 대회에 나가는 지도 모르셨던 터라 그러셨던것 같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안된다라는 말을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전 그냥 학교로 뛰어갔습니다.  엄마의 대답은 신경쓰지도 않고.. 그저 허락해 주셨다고만 했습니다..

결국은 전 대회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구르고 뒹굴로 졸라서 엄마의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엄마는 5000원짜리 좋은 고무동력기를 사주시더군요.

(그때의 고마움은 표현할수 없을정도였습니다..)

그날부터 전 맹연습에 들어갔습니다.

5000원짜리 고무동력기는 아까워서 만들어 놓고는 방에다 모셔놓고 교내 경기때 썻던 고무동력기로

어떻게 하면 잘날까?라는 궁리만 하며 학교를 마치면 학교운동장에서 하루종일 연습하곤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제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드디어 경기일이 되었습니다!        자!!

전 일어나자 마자 누가 만질세라 장농위에 올려놓았던 고무동력기를 만져 보았습니다.

여전히 최고였습니다.

옷을 갈아입고선 마루로 나가봤습니다.   이상하게 너무 조용했습니다.   누나만 울고 있었습니다.

...

어젯밤 엄마가 과로한 나머지 지병때문에 쓰러지셔서 만취한 아버지께서 엄마를 들쳐 업고는

병원으로 뛰어갔다고 했습니다. 누나는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왔던것 같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오래전부터 당뇨를 앓고 계셔서 보통땐 아무 이상이 없으시나 과로하시게 되면

당이 너무 떨어져서 손이 발이 떨리시거나 가끔 쓰러지시기도 하셨습니다.)

아...

저를 김해공항으로 데려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그 먼곳을 갈수있는 용기도 없던 저였습니다.

분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습니다.  (지금도 분합니다.)

...

전 한참을 울다 고무동력기를 가지고 집앞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곤 고무동력기를 날렸습니다.

죽도록 날렸습니다.

부셔져라 날렸습니다.

부셔져도 부셔져도 날렸습니다.

프로펠라가 부서지고 날개가 다찢어져도,  그래도 날렸습니다.

울면서 소리지르면서 날렸습니다.

제가 제풀에 꺾여 집으로 들어올때쯤 더이상 제 고무동력기는 날지 않았습니다.

방에 들어와서는 벽에 걸려있던 교내 대회때 받은 상장을 떼서 갈갈이 찢어놨습니다.

(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찢은 상장이었습니다.)

그러곤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날은 하루종일 엄마가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동안은 병원에 입원해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고무동력기를 만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과학의 날이 되면 아이들은 고무동력기를 만들기도 하고 과학상자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고무동력기를 만들어 본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저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옆에서 자기가 만든 고무동력기를 가지고 으시대는 녀석이 있으면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지만

그렇게 해봐야 뭘 하겠냐.. 라는 생각으로 그저 옆에서 신기한듯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제 고무동력기가 더이상 날수없게 되었을때 제 어릴적 꿈도 사라져간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꿈이란 것을 포기한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가 바보같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저의 아픔은 너무나 컸습니다.

결코, 몇천원의 돈도 없는 심각한 가난을 겪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당뇨를 앓고 계신 어머니도 가끔은 쓰러지시기도 하셨지만 심각한 증세를 보이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취한 아버지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우리 아버지셨습니다.


그래도 그때의 아픔은 너무 컸습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금 주무시는 어머니는 그때의 제 아픔을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고무동력기를 날리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예전부터 그런건지.. 아니면 그 일 때문에 그런건지..

무언가 특별한 제 것을 가질때 이상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쉽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하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말했듯이.. 프라모델이나 게임CD같은 걸 사면 대부분 친구에게 주듯이 맡겨버립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찾아갈꺼라고...  왠지 제가 가지고 있으면 불안합니다.

(;; 이야기가 옆으로 새네요;;;)



어쨋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갑자기 침울한 마음이 들어섭니다;

술이 먹고 싶네요;

학생 신분으로 술 먹는건.. 좋지 못하지만..






여러분의 어릴적 꿈은 이루어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