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개막식이 끝나고 리셉션 자리에서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만났다. 현재 제주도 4·3항쟁을 그린 애니메이션 <오돌또기>를 준비중이며 SICAF 운영위원인 그는 제7회 SICAF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박 화백은 서울시로부터 받게되는 지원금이 SICAF의 안정과 문화컨텐츠로서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애니메이션 오돌또기의 제작이 지연되는 이유와 작금의 한국 만화계와 애니메이션계의 상황 그리고 시사만화가로서의 현재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털어놓았다.

- 서울시에서 매년 10억원씩 10년간 지원을 약정 받았는데 관에서 주는 지원금이라 부담되지 않는가?
“그동안 자금이 항상 부족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상업적인 유혹을 받기 쉬웠다. 서울시 지원금은 그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서울시는 지원을 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민간자율에 맡긴다. 그런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전에는 수익을 내는데 골몰하거나, 협찬을 받는데 신경을 쓰느라 정작 관객의 입장에서 행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주로 자치단체에서 행사를 지원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앙굴렘이라든가 앙시 페스티벌 역시 자치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 오히려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 서울시가 부산영화제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SICAF 지원금 약정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부산영화제의 성공은 부산시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이명박 시장이 SICAF에 매우 관심이 많다. 이것을 가지고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적 이벤트로 만들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만약 시장이 바뀐다 하더라도 시에서 결정한 일이기에 10년간의 지원금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 10년 동안 우리측에서 너무 못해서 이 행사를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그 비난은 민간단체인 우리가 다 감수해야 할 것이다."





ⓒ2003 김용운
- 시사만화가에서 애니메이션 제작가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일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하고 싶었다. 스토리와 음악, 인물들의 동작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종합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 오돌또기의 제작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지 않는데 이유가 있다면?
“다른 바쁜 일이 많았다. 중간에 번복되는 경우도 있었다. 제작비와 시나리오 두 가지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다.”

- 한국의 애니메이션 관객들 중에는 마니아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수준에 비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열심히 하긴 하는데 스토리가 좀 약하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잘 안나온다는 평이 있는 것 같다. <원더풀 데이즈> 같은 것도 비주얼에 있어서는 어디에도 뒤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가들이 분발을 해야할 것이다. 치밀한 스토리가 아쉬울 때가 많다. 하지만 각 대학 애니메이션 학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을 볼 때 앞으로 이를 보완해줄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

- 한국 애니메이션에 있어 비교우위의 장점을 꼽아달라
“오랜 하청경험에서 나오는 기술력이 있다. 시나리오만 좋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제작비가 좀 넉넉하게 투입된다면 세계 최정상급에 속하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 젊었을 때 본 인상적인 만화가 있다면?
“이현세 화백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이희재 화백의 악동이 그리고 오세영 화백의 만화들을 인상적으로 봤다.”

-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만화계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한다
“만화를 사서 보는 문화에서 대여하는 문화로 바뀐 것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대여점이 많아지면서 전국의 대여점 수만큼 만화가 팔린다. 따라서 일본만화를 베낀다든지 혹은 질이 떨어지는 만화들이 많이 양산되었다. 게다가 청소년보호법의 영향으로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는 성인만화코너가 아예 사라졌다.

에로만화가 아닌 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들이 설 곳이 없어진 것이다. 아직도 한국의 만화는 청소년 만화에서 성인 만화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법과 유사한 법이 있더라고 만화를 문화적 컨텐츠로 접근하는 프랑스 만화계의 성장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 한국 만화계가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출판사와 작가들이 만화는 청소년물이나 학원물로만 스스로 치부하는 것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일본처럼 돈을 들여 기획하고 취재하는 만화들, 예컨대 초밥왕이라던가 시마과장 같은 만화들이 나와야한다. 그래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 쪽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서점에 진출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양질의 만화들이 나와야 한다. 기존의 출판계도 대본소 관행에서 벗어나 단행본 쪽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 시사만화가로서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경우가 있었나?
“ 가끔 그리고 싶었다. 사실 몇 번 그리기도 했다. 예전에 오마이뉴스에도 발표를 했던 거 같은데…. 가령 이라크전이라던가 여중생 압살, 새만금 문제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특히 새만금에는 힘을 보태야 한다. 최근에는 위도 핵 폐기장 문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지금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말이 아니다.
“더 기다려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의 대통령들은 초반에 높은 인기를 누리다 갈수록 떨어졌던 것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초반에 인기가 없다가 뒤에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더 좋다고 자위한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은 허술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지만 그렇기에 갈수록 탄탄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좀더 기다리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박 화백은 이번 SICAF를 준비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의 힘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여섯 개의 민간단체가 그동안 투쟁해서 얻어낸 지원금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민간의 자율성이 침해당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시민의 세금이 시민을 위해 제대로 쓰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편 자신이 몸 담았던 한겨레신문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일간지에서는 파격적으로 시사만평 외에도 만화를 실었던 한겨레신문을 보고 조선일보의 '광수생각'이나 동아일보의 만화들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정작 지금은 다른 신문의 문화면에 비해 앞서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한겨레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오마이뉴스도 개성 있는 문화면을 만들어 지면을 장악했으면 좋겠다는 충고와 더불어.

-박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