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 가운데에서"(부제: 에식스호의 비극)이란 책은.. 출판된 지 2년쯤 되가죠. 아래에서
적었듯이 백경 Moby Dick의 소재가 된 에식스호의 난파사건을 다룬 책입니다.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백경은 배가 난파되자 선장이 백경에게 복수하겠다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다가 그 집착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갖지만 에식스호의 진짜 비극은 배가 태평양에서 난파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였던 타히티 섬으로 가지 않고 수천킬로 되는 남미까지 항해하는 무모한 결단으로
인해 선원들이 몇 남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좁은 배 안에서 입은 많고 식량은 없으니
선장이 자기 이종사촌동생을 잡아먹고 부선장도 자기 선원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집니다. 최후의
생존자들은 결국 자기들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이 과정을 작가가 아주 냉정하게 써내려가는데
어떤 식이냐면 며칠 굶은 사람의 영양가는 지극히 떨어져서 기아에 굶주린 다른 사람에게 별로 큰
도움이 안된다라는 식으로 불행에 빠진 사람들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충격적인 실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비위가 무척 좋은 저도 이 책을 읽은 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Ravenous는 "굶주리다, 탐욕스럽다"라는 의미인데 이 제목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블러드 솔져'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몇년전에 비디오 출시가 되었고 몇달전에 dvd로도 출시되었습니다. 배경은 19세기 미국이고
외진 곳에 진주해있는 군기 빠진 작은 규모의 군대가 배경입니다. 메멘토의 가이 피어스와 풀몬티
(제철소가 망하자 남자 노동자들이 스트립쇼로 돈을 벌려고 함)의 헐랭이와 프리스트에서 젊은 신부의
게이 남자친구 역을 맡았던 로버트 칼라일 주연인데 이 사람들 연기가 정말 아찔합니다. 특히 로버트
칼라일은 저 영화에서 또 춤을 추는데요. 풀 몬티에서처럼 즐거운 스트립쇼가 아니라 사람의 혼을
빼놓는 음침한 춤을 춥니다.

  이 영화는 에식스호의 비극처럼 무척 제한된 공간인 선상위에서의 어쩔 수 없는 식인과정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와 살이 식인하는 자(windigo)에게 그 힘을 준다고 믿는 광기에 빠진 콜흔대령
(로버트 칼라일)과 끝까지 양심을 지키려는 보이드 소령(가이 피어스)의 대결구도로 치닫으면서
식인을 소재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켜야할 양심에 대해 보이드를 통해 내비칩니다.
제 생각이니까 그 영화의 다른 의미를 찾아주실 분은 여기에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식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중에 유명하기로는 '홀로코스트'가 제일일겁니다. 방송사에서 실종된
취재팀의 행방을 어떤 인류학자에게 의뢰하고 그가 찾아온 필름의 방송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필름의 장면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얼핏 보기에 문명세계에서 온
취재팀이 잔인하고 미개한 부족에게 살해당한 것같지만 필름에서는 살해당하기까지 그들의 죄의
현장들을 통해 인간이 잔인한 본성이 식인부족들만의 것이 아니였으며 문명이 결코 저 본성을
억제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필름이 스크린에 옮겨지면 온갖 역겨운 장면들의 퍼레이드가 시작됩니다. 에식스 호의 비극을 쓴
작가는 "보통 식인을 하는 자들은 같은 인간을 먹는다는 죄책감을 덜하기 위해 머리, 손과 발을 버린다."
라고 하는데 홀로코스트에선 그런 인정(?)까지 바라면 안됩니다. 왠만한 비위로 참을 수 없는 살인, 강간,
식인 장면들이 나옵니다. 동물보호협회에서 그렇게 문제 삼았다는 동물학대장면 - 그 유명한 거북이
날로 잡아먹기 장면 역시 역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간 빼먹는 장면도 참으실 수 있는 분들만
보십시오.

  '바다 한 가운데에서"의 작가 나다니엘 필브릭은 중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식인이 벌어질 경우
약자부터 먹힌다." 홀로코스트에서 보여지듯이 부족간에 전쟁이 나면 승리한 부족은 전쟁포로를 잡아먹었고
에식스호의 비극에서도 직접 죽임을 당한건 아니지만 흑인이 제일 먼저 먹힙니다. 보통 흑인이라 하면
할렘가의 우람한 흑인을 연상하지만 사회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가장 적은 식량 분배로 제일 먼저 기아로
숨졌기 떄문입니다. 또한 Ravenous에서 콜흔 대령은 제일 먼저 인디언 수하를 잡아먹습니다. 약자가
제일 잡아먹기 쉽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인데도 제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살벌합니다. 저는.. 저런 상황에 닥치면 잡아먹히느니 아무도 제 시체를 건져 먹을 수
없는 곳에 몸을 던져 자살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식인에 관한 좋은 작품 추천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