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이는 노동의 초상화

'이제 게임은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 소프트 하나하나는 기호품일지라도 게임자체는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필수품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째서 게임이 없으면 살아갈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그 배경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굳이 이름붙이면 게임문명론이 되겠지요.

게임이란 놀이입니다. 그리고 경제학이나 사회학의 식견에 의하면 놀이는 사회의 구조, 특히 노동의 본래모습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놀이와 노동은 동전의 양면 같다고나 할까요?

"놀이란 여가활동이잖아요. 휴일에 일과 똑같은 것을 하면 뭐가 즐겁겠어요?"라고 반론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파칭코를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파칭코 기계는 철, 유리, 베어링 등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동으로 구슬을 튕겼지만 지금은 자동으로 핸들에 손을 걸기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기계를 상대로 똑같은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구슬이라는 보수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가족에게 그 보수를 가지고 돌아가기도 하죠.

그렇습니다. 파칭코숍은 공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 일에 열심히 '근무'하여 기계와 사귀는 방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단조롭지만 잠시 마음이 느슨해지면 손해를 보는 '노동'입니다.

파칭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물건과 재물에 의존한 '공업사회(물질형 문명)'의 논리 그 자체입니다. 파칭코는 급격히 진행되는 공업사회에 자신을 동화시키기 위해 일본인이 고안해낸 '학습장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과 같은 환경, 같은 도구를 가지고 놈으로써 '노동'에 필요한 감성을 연마했던 것입니다.

게임에도 똑같은 이치가 통용합니다. 컴퓨터를 파트너로 일을 해야만 하는 고도의 정보사회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비디오 게임'이라는 놀이입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기도 하고, 버그 때문에 울기도 하고, 컴퓨터를 매개로 친구와 연결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이성을 연마시키고 감성에 호소합니다. 컴퓨터로 처리된 '정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고도 정보사회, 또는 정보형 문명. 게임은 그런 새로운 사회와 문명이 요구하는 '노동'의 스타일을 배우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단순한 기분전환이나 심심풀이의 수단이 아닙니다.

2. 경제적 인간과 유희적 인간

놀이가 '노동의 초상화'라는 사고방식은 놀이의 심리학으로서는 고전적이고 원시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양을 넘어 남은 에너지가 놀이를 낳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억압된 욕구가 추구하는 대가행위의 하나가 놀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도 유명합니다.

그 결과 '여가 = 놀이 = 노동력의 재생산' 이라는 산업사회론적인 도식이 생겨났습니다.

마르크스로 대표되듯이 근대의 사상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모든 인간의 활동을 노동의 관점에서 보아 노동을 놀이보다 상위개념으로 위치를 부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놀이는 놀이 이외의 무엇인가(노동)를 위해서 행해진다고 하는 '수단'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있어서 놀이를 생각할 때 수단적인 활동으로 간주해버리면 전체 상이 흐려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수단적인 활동에는 반드시 '외적인 동기부여'나 '보수'가 동반됩니다. 명령을 받지 않아도, 보수가 주어지지 않아도 특히 놀이에 관해서 사람들은 기쁘게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놀이는 '내적인 동기'에 의거하는, '자기목적' 활동으로서의 측면도 강한 것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놀이 그 자체가 완전한 목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희'라는 말 자체가 원래는 불교용어로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자재의 경지에 있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본질을 가진 놀이를 방치해두면 산업사회가 난처해진다는 인식이 놀이를 '수단'적인 부분으로 얕보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이러한 근대적인 놀이관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고전학자 요한 호이징거입니다. 호이징거는 1938년에 발표한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에서 놀이의 '자기목적성"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예술, 철학, 재판, 전쟁이라는 인간의 문화활동이 본래는 놀이로서 성립, 발전해 온 것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역사의 원동력은 놀이라는 주장입니다.

호모 파벨(경작적 인간), 호모 에코미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근대적인 인간관에 대한 통렬한 대립명제입니다. '놀이의 4분류' 학설을 제창한 로제가이요와는 호이징거 사상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호이징거와 가이요와의 '놀이일원론'은 게임산업이 이론무장하기에 적절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놀이를 이론적으로 고찰한 것이 아니라 시대 비판, 산업문명 비판을 의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놀이의 산업화 상품화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포스트 모던(탈근대), 탈공업사회(정보형 문명)의 사상에는 그들이 제시한 '유희적 인간관'이 짙게 투영되어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 예를 들어 남코의 나카무라 마사야 회장은 호이징거와 가이요의 학설을 회사의 기본방침에  교묘히 채용하고 있다.

출처 : 게임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