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설문조사 때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설문지면이 짧았던 관계로 여기에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은 무협게임에서의 액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국산 MMORPG개발사들이 무협물에 관심을 기울인지는 꽤 됐습니다. 새로운 소재와 수요, 그리고 거대한 중국시장에 접근하기 쉬운 컨텐츠로 엄청난 매력이 있었지요.

국내에서 제작된 무협 MMORPG는 서양식 MMORPG를 제작하는 것과 차별점을 두어야 했는데 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무협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액션들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사실 이런 화려한 액션들은 무협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죠. 한참 시류를 타던 '스타일리쉬'라는 단어에 부합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개발된 대부분의 무협MMORPG는 무협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액션을 보여 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여전히 무협게임은 서양식 환타지 MMORPG의 짝퉁으로 비춰졌고 차별점을 둘 수 없었습니다.

과연 왜? 스타일리쉬를 표방하며 집중하여 개발했던 게임 속의 무술들이 무협영화의 그것처럼 눈길을 끌 수 없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던 것을 몇 가지 짚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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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기술의 시전자와 접수자(몹)의 연계가 미흡했다는 부분을 들겠습니다.

기존의 무협게임의 경우 기술을 시전하면 캐릭터는 퀭하니 먼곳을 바라보며 열심히 디자인 된 애니메이션을 취합니다.  그럼 피격 애니메이션을 취하는 대상은 역시 퀭하니 먼곳을 바라보며 몇번 윽윽하고 고개를 까딱하다 뒤로 쓰러져 죽습니다.  

기존 무협게임에서 무술액션은 기존의 서양식 액션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더 정교한데 피격 모션은 정교하지 않았다는 거죠. 가령 브루스 리가 잘하는 '적의 다리를 후려 무릎을 꿇린 후 아쵸! 하는 괴성과 함께 머리에 이권을 지른다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린 후 밟는다거나  그런 액션을 취할 수 없었죠.

물론 MMORPG에서 그런 다채로운 액션을 전부 소화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몇 가지를 조합해 쓴다면 그럴싸하게 리액션을 취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상단 중단 우측을  연속공격하는 스킬이 있을 경우 '상단 중단 우측의 피격모션을 취해라'라는 시그널을 넣을 수 있을 겁니다.  피격 애니메이션이 좀 복잡해지겠지만 무협게임에서 몹은 대부분 인간형이니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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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첫째와 연결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무협영화의 무술들은 실시간으로 싸우긴 하지만 알고보면 턴제 배틀이라는 거죠.

무림인A와 B가 서로 싸우고 있을 때 A가 공격하면 B가 방어하고 B가 공격하면 A가 방어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A가 몇 번 공격을 하고 B는 방어를 한 후 반격기로 주도권을 잡아 B가 공격을 하고 A가 방어를 하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막고 막히는 소강상태 가운데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그 때 나온 회심의 일격 한 방이 카타르시스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무협 게임에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게임캐릭터 A와 B는 그저 '너는 때려라 나도 때린다.'를 반복할 뿐이죠.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쓰더라도 사실상 싸우는 A와 B는 소강상태와 같기 때문에 훨씬 박진감이 떨어질 겁니다. 이것은 각본을 미리 짜기 힘든 MMORPG의 특성상 어떻게 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어떻게 변수를 넣는다면 훨씬 더 박진감이 넘칠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령 서로 치고 받는 도중 돌발적인 가위바위보와 같은 것를 넣어 승자에게 카운터의 기회를 준다거나 스트리트 파이터의 슈퍼콤보아츠처럼 싸우는 도중 분노게이지를 채워서 맥시멈이 되면 초필살기로 날려버릴 수 있게 된다거나 이렇게요. 북두의 권의 켄시로가 한참 고전하다가 기합으로 옷을 찢고 '너는 나를 화나게 했다' 하면서 와다다다~ 북두백렬권을 날리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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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상상력의 부재입니다.

상당수의 무협게임 제작사들이 실제 무술가들을 초빙해 모션 캡쳐를 활용합니다. 물론 무술가들의 액션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 모션 캡춰를 거의 그대로 따다 게임에서 쓰면 어떻게 될까요? 굉장히 밋밋해집니다.

예를 들면 실제 태권도 선수의 모션을 캡춰해서 그대로 킹 오브 파이터즈의 김갑환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그럴듯 하다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재미있지는 않을 겁니다. 킹 오브 파이터즈 유저들은 수미터를 점프하고 봉황각을 쓰는 김갑환을 플레이하고 싶은 것이지 서전트 점프1미터의 인간 무술가 김갑환을 플레이하고 싶은 것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무협게임 유저들은 무술가를 플레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술을 베이스로 한 초인을 플레이하고 싶은거지요. 실제 무술가의 무술과 장풍과 내공의 존재하는 무림인의 무공은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 갭은 기획자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태의 무협 MMORPG에서는 무술가의 무술만 내놓았지 무림인의 무공을 내놓은 게임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와이어액션 스턴트맨을 캡춰하는 편이 무협게임을 만드는 데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글재주가 없어 꽤 장황하게 늘어 놓게 되었는데 부족한 부분을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