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올린 글로 하Q님이 심란해 하시는 것 같아서 ‘망상’ 몇 가지를 늘어놓습니다.

1) 패키지 게임이 아닌 온라인 게임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사회성’을 반드시 내포하게 됩니다. 즉,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사회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 제작에는 인간사회를 연구한 학문,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게임업계가 이 분야에서 수용한 것은 ‘역사학(스토리)’, ‘경제학(게임 내 화폐 및 경제 운영)’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수용의 폭을 좀 넓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온라인 게임이 ‘인간 대 인간’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의 본격 학습-도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을 이해해고 그 상호작용을 이해하여, 더욱 발전가능성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IMC 회사 차원에서 인문-사회학 강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것은 어떨까요? 공간-수유 쪽으로 알아보시면 매우 수준 높은 강의를 들으실 텐데... 차 한 대 새로 안뽑으시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면 해외 유명 대학 교수 강의 동영상을 구해서 전 직원이 다 같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영어 청취능력이 문제겠습니다만...

2) GE가 애초 목표로 삼았던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 것은 1)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온라인 게임에서 정치는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운영진이 나설 필요는 없었단 얘기죠. 하지만 그래도 더욱 정치적 요소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면, 2)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도록 만드는 ‘이유’와 ‘도구’를 고안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GE의 경우, ‘미국 독립혁명기’에서 따온 공화파와 왕당파의 구도라는 좋은 정치적 배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분은 ‘스토리’상에만 영향을 주었지 ‘게임진행’상에는 실질적으론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파벌의 선택이 게임 플레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좀 얘기는 달라졌으리라 봅니다. 예를 들어 1) 오슈(공화파)와 리볼도외(왕당파)의 물품구입시 파벌에 따른 중과세 부과 가능성 및 상대지역 내 이용서비스 제한(코임브라는 중립?), 2) 파벌 선택과 기여도에 따른 구입 가능물품의 차이, 3) 파벌에 따른 활동 필드의 제한-구분, 4) 파벌간의 세력차(가입유저-당의 세력 차)에 따른 게임 운영구도의 변화, 5) 파벌 배신의 페널티와 인센티브, 5) 공화파 대 왕당파 전면전, 6) 상대 파벌에 대한 사보타쥬 미션 - 특정 유저 PK지령, 특정 당원 PK지령 등(면죄부 시스템 발동 가능), 7) 상대파벌에 대한 대우 변화를 자기 파벌 내의 투표로 결정하는 시스템(과세, 출입금지, 척살령, 전면전 등)

하지만, 현재 ‘정치’얘기는 쏙 들어간 것 같고, 스토리 쪽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 같으니... 차기 프로젝트에서 더욱 ‘정치’적인 측면이 부각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GE만큼 타국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다면 ‘외교’요소의 도입은 어렵겠지만...

3) 초창기 해리포터 게임에서 나왔던 것인데, 마법 주문을 마우스를 이용한 ‘선따라 그리기’로 구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온라인 게임에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Wii의 등장으로 나타난 ‘직접 몸 움직이기’를 합해볼 수 있습니다. 당장 위 콘트롤러 같은 걸 도입하기는 어렵다면, 캠코더를 이용해보죠. 마법사의 경우,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커맨드를 인식하게 하고, 그 속도와 리듬, 그리고 동시에 입력하는 키보드의 특정 키로 마법 구현의 완성도를 판정케 하는 겁니다. (한 손은 캠코더에, 다른 손은 키보드에 - D&D룰 상 캐스팅을 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점이 구현됩니다.) 마법 숙련도가 높아지면 커맨드의 복잡도를 줄일 수 있고, 상급 마법을 구사하려면 반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입력 버튼을 추가한다던가, 리듬을 어렵게 만든다던가. 전사나 궁수의 경우에도, 캠코더를 이용한 ‘손가락 움직이기’로 공격을 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업소용 ‘북두신권’ 게임기(글러브 끼고 직접 때리던 기계)의 방식을 차용해 올 수 있겠습니다. / 다만 이 경우, 반복되는 패턴에 유저들이 지루해할 수 있으므로, 상당한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합니다. 크리티컬 히트의 발동, 무작위의 럭키 히트, 커맨드의 미묘한 변화 구현 같은 것 말이죠.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쉬이 지치므로, 행위의 효과 수준을 다양하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4) 현존 온라인 게임들 대부분이 D&D룰을 따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 중에 ‘바드(음유시인)’라는 클래스가 있습니다. ‘노래’로 같은 편의 사기를 높여주거나, 공격력-방어력-운을 높여주거나, 혼란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죠. [로도스섬 전기]에 그 활약이 잘 나온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 상 큰 매력이 없어서 그런지, 대개 온라인 게임에서 그 역할은 ‘클레릭(성직자)’가 맡고 있죠. 그런데, 그 ‘노래’의 요소를 게임에 도입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리듬비트 온라인 게임을 바드 클래스에 접목시키는 겁니다. 배경음악을 비트 매니아처럼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낼 수 있어요. 퍼펙트가 나면 추가 효과를 내고, miss가 나면 역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말이죠. 아니면 ‘루미네스’스타일을 차용하는 방법도 있죠.

5) ‘문학’을 게임에 접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특히 시(詩)의 암송과, 낭송의 리듬을 게임에 적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 시가 낯간지러워 싫다면, 영시나 불어, 독어로 된 시, 혹은 일본의 하이쿠를 동원할 수도 있다고 봐요. 되도록 암송을 권장하는 방식으로 모색해볼 수 있겠습니다. NPC와의 호감도를 높인다거나, NPC의 혜택을 이끌어낸다거나, 명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거나, 상위직종 진급시험에서 문제로 출제된다거나... 타이핑을 요구할 수도 있고, 선택지를 뽑게 만들 수도 있고...

6) 일본에서는 온라인 게임에 휴대폰을 연동시킵니다. 이 분야를 개척해볼 생각은 없는지요?

* 이미 선인(先人)들이 모든 걸 발견하고 발명하고 창안하여, 이제 내가 해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일단 ‘막혔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있는 것들은 제대로 알고 있나? 아니면 제대로 하고 있나?’하고 자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뒤로 돌아가서 부족한 것들을 다시 채워 넣으며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는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미친 소리’를 일부러 찾아 듣는 것도 필요합니다. 뭔가에 익숙해지고, 잃기 싫은 게 생기면 사람은 반드시 약해지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하Q님이 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방문객들에 자문을 구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봅니다.

* 다른 게임이 GE 운영방식에 배워야 할 점은 MCC, 리모콘이 아니라, ‘스토리’와 ‘유저참여’입니다. 미국 독립혁명기를 따 온 점에서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가 괜찮습니다. 그리고 유저참여를 통한 신 코스튬 투입은 GE의 최고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간과됐던 점이지만, 유저 참여가 게임의 성패와 롱런 가능성을 결정짓습니다. 하Q님께서는 자사의 인력이 갖고 있는 한계를 열정 있는 유저들의 아이디어와 혜안으로 극복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