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트위터상을 떠돌던 한겨레신문 정치성향 온라인조사가 있길래 참여해봤다. 살짝 좌파 + 살짝
자유주의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주위 사람들 봐도 대체로 비슷한편이었다.

그 조사의 재밌는 점은 두개의 축이 존재하는데 '개인자유'에 대한 축과 '시장자유'에 대한 두가지
축으로 나뉘어있다는 점이다. 이제껏 이 세상의 정치적 대립을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일원적 대립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으로 주로 해석해오던 나에게 자유를 두가지 - 개인과 시장 - 으로 나눈 점과
개인적 자유주의의 반대 개념을 권위주의로 놓는 것이 흥미로왔다.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인터넷 게시판을 두고 생각해보자. 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흔히 방치된
홈페이지 (예를 들면 망한 회사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에서 볼 수 있는 사례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스팸쓰레기, 그나마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스팸은 나은 편이고 읽을 수도 없는
외국 스팸 덧글로 뒤덮여서 게시물 자체가 안 열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글을 쓸 자격의 제한, 한번에
글을 쓰는 횟수나 간격의 제한,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관리자의 완전한 부재가 이뤄진 게시판에서는
악화의 양화 구축과 공유지의 비극의 극단적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반대쪽의 경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공익이나 인터넷 예절, 혹은 주인장의 취향이나 게시판의 목적에
따라 게시자의 자격, 익명성을 제한하거나 게시물의 내용을 검열하는 경우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게시판의 유명한 정도, 관리자의 합리성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살펴보자면 고객이
조금이라도 항의를 하는 글을 지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더 악랄한 경우는 가짜 상품평을 등록하는
식으로 게시판의 분위기 자체를 관리자의 의도대로 조종하는 경우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역시 게시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들을 통해 본 사례긴 하지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허용은 특히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터넷
환경에서는 적절한 중간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상적인 중간값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시인사이드 같이 자유주의쪽에 치우쳐져 있으면서도 끝없는 내부 필터링과 모니터링을
통해 균형을 잡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레임같이 관리자가 게시판별로 금기시되는 주제를 제한하고
오래된 멤버들의 의견이 암묵적인 발언권을 더 가지며 회원제로 운영되는, 상대적으로 권위주의 요소를
더 가진 커뮤니티의 예도 존재하고, 위키피디아나 stackoverflow 같은 식으로 특정한 관리자가 아닌
자발적 대중에 의해 운영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게시판의 경우가 이렇다면, 게임의 경우는 어떨까?

초창기 온라인 게임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요소가 강하거나 극단적 자유주의를 허용하는 게임들이
많았다. 온라인 게임의 초창기 원형을 보여준 울티마온라인의 경우 많은 자유도를 게이머에게 부여
하였고 이는 게임 안에서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자유주의적 체제는 지속되지 못하였고 결국 지금은 거의 사장된 상태다.

자유주의적 게임에서는 PK 가 허용되며, 남의 사냥감을 뺏거나 돈을 뺏는 행위도 허용된다. 사실 이런
요소야말로 MMO를 가장 MMO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창발적 요소들이다. 단순한 규칙
몇가지의 조합에 의해서 사람들의 드라마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들은 너무나
쉽게 악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무덤가에서 리젠되는 뉴비를 계속 죽이는 플레이같은 경우는 스팸
댓글로 꽉 찬 게시판이나 다름이 없다.

자유주의적 체제의 특징은 초반에 유저의 수준이 높을 때에는 매우 이상적이라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환경은 인간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기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또한 참여자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불순분자의 비율이 적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클베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공통된 패턴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순분자의 유입, 자유를 남용하는자들의 유입이 시작된다. 인터넷 게시판으로
치자면 광고글, 도배, 악성 스팸덧글, 게시판 자체를 무력화 시키는 행위등이 늘어나게 되고 게임의 경우
작업장 오토 치트 봇 등이 판치게 된다. 초반의 클베시절 화기애애하게 사람들끼리 놀때는 컨텐츠가
부족하고 시스템이 단순해도 사람냄새나게 재밌게 놀 수 있었던 게임이 물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옛날의
장점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 개발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 없다. 일단 시간을 뒤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게임의 시스템 자체 내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를 권위주의적 요소로 대체하던가, 아니면 GM 의
운영으로 막던가 하는 방법들이 있다. 이러한 대응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초창기의 온라인 게임들중 성공한 게임은 컨텐츠로 성공한 게임이 아니라 시스템의 보완과 운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다.

자유주의적인 시스템을 가진 게임은 나름대로 끊임없는 세부적인 룰의 추가와 사람의 손에 의한 관리를
통해서만 그 자유주의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리니지1의 성공 이후 많은 게임들이 자유주의적인
시스템을 추구하였지만, 엔씨의 운영능력과 세밀하게 오랜시간동안 다듬어진 룰의 질적수준에 근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권위주의적 게임에서는 유저의 욕구보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더 우선시 된다. 기획자의 의도를 벗어난
어떤 플레이 여지는 밸런스를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제한을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와우를
처음 플레이하면서 느낀 것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느낌, 옷으로 치자면 바이크 슈츠를 입은 듯한 느낌
이었다. 대신 와우의 세계에서는 기획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컨텐츠의 스케일과 퀄리티로 그 자유의
결핍을 보상한다.

초반의 라그 시절 유저들의 가장 큰 불평거리는 먹자와 스틸이었다. 그후에 나온 게임들중
에는 아예 먹자나 스틸이 안되게 만든 게임도 있었는데 (아스가르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후에는 현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오토와 작업장문제가 커졌는데, 그 문제의 근원은 아이템의
거래를 무제한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와우 같은 게임은 주요 아이템을 모두 착용시나
획득시에 귀속시키는 것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해법을 제시했고, 그것은 성공하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MMO 게임으로서의 성공이라기보다는 게임으로서의 성공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와우처럼 내용을 만든다면 MO 로 만들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온라인 게임을 만들려는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게임인가? 아니면 권위주의를 추구하는 게임인가?

확실한 것은 완전한 자유주의는 성립할 수가 없으며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듯 보이는 게임도 그 이면에는
수많은 권위주의적 요소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과, 권위주의적 게임을 만들려면 정말 높은 수준의
질적 양적 플레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하면싱글플레이 패키지 게임은 만드는
것만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어느쪽이든 쉬운 선택은 없는 셈이다.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