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인류를 위한 담론, 도덕경' 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도덕경을 통해 노자의 철학을 해설하고 있다.


도덕경이란 책이 워낙 '도'의 근본을 다룬 책인데, 짧고 함축적인 글자들로 시처럼 씌여진 글이다보니 해석이 쉽지 않다. 제일 첫장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 부터만 봐도 사람들마다 정확한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글자 하나하나 놓고 무슨판본이 어쩌니 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보면 동양철학이란 것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과 거리가 먼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얘기로만 느껴지게 된다. 


TV에 나와 호통을 쳐가며 인문학을 강의한 도올 김용옥같은 사람도 그 시도는 좋았으나 그 과정과 해석에서 너무 겉멋을 부려놓다보니 안 그래도 어렵게 느껴진 노자를 더 어렵고 먼 존재로만 느껴지게 했다. 도올 외의 다른 도덕경해설서들도 불친절하고 쉽게 풀어주는 책은 드물었다. 서점에 가서 도덕경 관련된 책들을 한번 여러가지 읽어보기 바란다.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 같은 책은 이런 의미에서 훨씬 이해하기 쉬운 노자를 선보여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었는데, 근래에 비판받은 바를 보면 기존의 문법과 해석을 무리하게 부정해서 너무 자기식의 전혀다른 해석을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세한 사항들은 각자 검색해보시길)


저자의 책은 도덕경중 일부인 앞부분 20편까지를 해석하고 불교나 인도철학, 장자, 현대의 언어철학과의 비교 등을 통해서 그 의미를 비유하고 풀이해놓은 해설서이다. 도올 식으로 너무 글자의 해석 + 자기 멋에 빠진 해설 (가물코 또 가물토다...!) 도 아니고 이경숙 식의 기본을 벗어난 한문독해창작도 아닌, 고전적인 해석 + 현대적인 해설을 보여준다. 


도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이 도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도를 깨우치면 우화등선하고 내공이 심후해져 장풍을 쏠 수 있게 되고 신통력을 얻게 되는 것일까?


노자는 도를 무엇이라고 부르더라도 그 이름 자체가 도가 될 수 없음을 경계하고, 모든 만물은 도로부터 나왔지만 인간의 논리와 언어로 도를 온전히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이다. 도를 익혀서 돈을 벌고 힘이 생기고 멋져지겠다는 생각 자체가 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것은 도덕경을 공부하면 깨우치게 된다. 오히려 그런 꾀를 부리는 마음, 반짝이고 날카로와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물의 성질을 본받으라고 도덕경은 말한다.


천지불인. 자연의 속성에는 인자함같은 것이 따로 있지 않다. 사람을 위해준다던가, 나의 기도를 들어준다던가 하는 배려심따위는 없다. 불인하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너의 신, 나의 신 같은 것보다 더 우선한 개념이 도이다. 동양인들은 도의 개념을 잊지 않았기에 원리주의적인 종교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도는 현명함을 숭상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나누어 서로 자기가 진리를 주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편인가 남의편인가를 묻는 질문에 분위기에 맞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적으로 간주되는 살풍경이 인터넷 세상에선 비일비재하다. 트위터를 보아도 악에받힌 외침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길을 찾기 쉽지 않다.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우리의 좌표를 찾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다. 10년도 못가는 논리가 아니라 2500 년, 아니 그 이상 참으로 유지될 수 있는 유통기한이 없는 진리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다. 노자는 그것이 도라고 이미 말했다. 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다만 그 '도'라는 것은 그렇게 멋있는 것도 아니고 파워풀한 것도 아니다. 저 멀리 별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당연시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정말 도를 깨우쳐 도를 따라 살고 싶은가?


imcgames 의 김학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