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그새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03년 10월 손노리게임사업부를 2개의 회사로 분할, 플래네스로부터 자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이다. 국내 게임개발사의 족적을 함께 밟아온 손노리의 이원술 대표로서는 가슴 저린 기억일 수밖에 없겠지만 10년의 연륜은 다시금 시련을 밟고 올라설 많은 기회를 안겨준 듯 1년여만에 회사는 40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견실한 둥지로 발돋움했다.

경황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팡야’로 소위 대박을 터뜨린 회사의 또 다른 전신 엔트리브와는 달리 손노리는 지난 1년간 침묵으로 과거의 영광만을 곱씹어왔다. 이제 손노리게임을 즐겨온 이들은 여론의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세대가 된지 오래고 지금의 게이머들은 ‘손노리’ 그 자체를 인식하고 있지 못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원술 대표는 여유롭다. 삶이 여유로워서라기보다는 히든카드를 쥔 승부사에게 느낄 수 있는 준비된 자의 여유랄까. 약속 때마다 항상 엉뚱한 이야기로 혼을 빼놓곤 하던 이 대표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에 임하며 현재의 손노리와 앞으로의 손노리가 밟아 나가야할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 손노리 10주년 패키지. ‘패키지의 로망’ 연기사태에 대한 입장

5일 회사 방문 당시 이원술 대표의 방에는 손노리가 야심차게 준비한 10주년 특별패키지 ‘패키지의 로망’ 샘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봐도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던 패키지. 그러나 지난해 12월말부터 계속된 예약판매분 배송연기로 손노리는 적잖은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이상할 정도로 저희는 패키지게임과 연이 없는게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이렇게 얘기하면 장사꾼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남는게 없는 패키지를 기념의 의미에서 소량 발매한 것인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다시 발목을 붙잡더군요”

매일처럼 들렸던 패키지생산업체에서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색다른 개념의 패키지인 탓에 패키징작업 자체가 모두 수작업이 필요한 탓도 있었지만 정작 배송 전날 ‘약속한 기일을 맞추기 힘들겠다’는 업체의 반응에 망연자실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 대표는 토로한다.


“좀 더 일찍 발표문을 냈어야 하는 것이 저희의 책임이지만 쇼핑몰에서 공장에 먼저 전화를 걸어 공지를 냈던 것이 게이머들의 분을 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보상책으로 어떤 것을 드려야할지 대책회의를 거치고 있을 때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하더군요”

예약판매발송연기에 대한 보상책으로 손노리는 자사게임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을 준비했다. 패키지산업의 불씨가 그나마 남아있던 시절의 ‘악튜러스’ 예약판매분보다 더 많은 주문이 들어왔지만 침울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던 손노리 직원들.


그래도 지금은 손노리 팬을 자처하면 회사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게이머들이 많아 한결 안심된다는 표정이다.

“먼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저희가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어버이날에 맞춰 선물을 사주려는 자식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돈이 모자라 생각하고 있었던 선물은 못해드리지만 어버이날에 맞춰 효도를 하느냐, 조금만 더 돈을 모아 부모가 받고 싶었던 선물을 해드리느냐의 차이. 그나마 저희가 드리고 싶었던 퀼리티에 근접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싶습니다”

▶ 에이스필드가 3D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공개가 임박했던 횡스크롤 2D 비행슈팅게임이 돌연 연기됐다. 이후 몇 개월동안 구체적인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에이스필드가 3D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소식과 함께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 레이스톰. 에이스필드는 이런 종류의 게임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손노리 특유의 색채를 살려 2D로 개발을 계속 추진할까 싶었지만 게임의 구성자체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세를 따른다기보다는 생각한 컨텐츠를 구현하는데 3D가 적합했다는 판단이 들기도 했고 말이죠”

이대표는 현재 시점에서 게임을 보여줄 시기는 아니지만 ‘에이스필드 3D’가 오락실과 플레이스테이션, PC로도 차례로 등장한 바 있는 3D슈팅게임 ‘레이스톰’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개발 초기의 기획이 그랬듯이 진정 오락실에서 코인을 넣고 즐기던 그 재미를 되살려내기 위해 개발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 소프트맥스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던 온라인게임 프로젝트. 노리맥스가 취소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순간 이원술 대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난해 소프트맥스 측이 갑작스럽게 기자들을 불러모아 발표한 소프트맥스-손노리의 합작 온라인게임 프로젝트인 ‘노리맥스’는 창세기전 등으로 유명한 소프트맥스의 캐릭터와 손노리의 대표 캐릭터가 모인 말 그대로의 기대작 탄생예감을 불러일으켰다.



▶ 지난해 3월 발표된 노리맥스. 온라인화는 결국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노리맥스는 소프트맥스 10주년 발표행사에서도 배제되며 점차 취소의혹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노리가 100% 개발을 담당하기로 했던 이 프로젝트는 두 회사의 의견충돌로 결국 온라인게임화는 백지화되고 모바일로 방향을 전환했다.

“(소프트맥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를 모바일게임으로나마 선보일 수 있어 유저들에게 보여드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네요”

▶ 2005년 게임시장은 어떻게 흐를 것으로 판단하는가?

“지난해에 이어 MMORPG의 시장성이 점차 떨어지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에도 정말 많은 MMORPG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되지만 같은 시장에서 같은 유저들을 뺏고 빼앗는 시장 상황 아래 소위 ‘대박’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이 대표는 온라인게임으로 2005년의 시장상황이 판가름되는 것보다는 닌텐도DS와 소니의 PSP로 인해 벌어질 이슈가 더 크지 않겠느냐는 말을 남겼다.




▶ 그리고 손노리의 신규프로젝트와 차후 계획은

손노리의 10년 전통이 그러했듯 ‘When it done(만들어지면…)’ 발표하겠단다. 하지만 MMORPG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는 이원술 대표는 기존 유저의 통념을 완전 ‘깨는’ 신개념의 온라인게임으로 손노리의 재기발랄함을 게이머 머리 속 깊이 새겨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마치 움추린 개구리가 뛰어오르듯 2005년은 손노리 도약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 대표는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유저들에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엔 칭찬하는 문화가 정말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가 바라고 있는건 절대 아닙니다. 어느 개발사에든 그렇죠. 유저의 호응에 부응하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현재 국내 개발자들은 크리에이터가 아닌, 사람들에게 죽도록 욕만 먹고 사는 하청업체직원으로 몰락해버린 느낌입니다.

불과 몇 년전만해도 개발자와 팬의 개념이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며 창작욕구를 불태웠지만 지금의 개발자들은 정말 힘들 세월을 보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네요.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도 게임 쪽에서나마 칭찬하는 문화를 형성하면 더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출처:게임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