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트렌드 이전에는 일본 것을 베낀다 하여 어느 정도 봐주는 인식도 있었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지극히 국수주의적인 사상도 깔려 있었지만 온라인 게임 트렌드로 접어

들면서부터는 같은 한국업체끼리조차 서로 베끼는 풍조가 만연해 진 것이 오늘날 업계의 현실

이다.

벤치마킹이란 그럴싸한 명분 아래 경쟁기업의 게임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요소요소를 그대로

카피했으며 패키지 판매량에서 밀리언셀러, 또는 온라인게임 동시접속자 5만 이상의 실적을

기록한 게임들은 모두 카피의 대상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회에서는 1980년대의 카피 사례를 들어 한국의 게임소프트 표절 실상이 이떻게 변화 되었

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기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여러 군소업체들이 앞 다투어 일본

의 소프트를 불법복제 해서 이윤을 챙겼는데 가장 규모가 컸던 기업 두 곳이 바로 “재미나”와

“아프로만”이라는 회사다.

두 회사 모두 세운상가를 거점으로 하여 출발하였으며 처음에는 MSX의 주변기기를 만드는 것

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일본 게임의 카피를 시작한 것이 1986년 경의 일이었

다. 카피 대상은 주로 일본의 MSX용 소프트웨어 들이었고 코나미의 그라디우스 시리즈나 몽

대륙, 마성전설, 많은 일본 개발사의 256KB 게임들이 카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코나미의 그라디우스는 MSX 최초의 메가롬 팩으로서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

를 끌었는데 재미나에서는 게임 소스를 카피할 때 코나미의 로고를 빼 버리고 자사의 로고를

집어넣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라디우스 1탄이 메가롬 팩으로서 많은 호응을 얻자 코나미는 이에 힘 입어 몽대륙, 엘기자

의 봉인 같은 명작 게임들을 메가 롬으로 내놓기 시작 한다. 당연히 시장의 쉐어가 커지니까 세

운상가의 여타 군소업체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가라는

것이 당시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었다.

한번은 MSX 전문 잡지에 이런 광고가 실리기도 하였다. 재미나의 이름으로 된 광고 내용 전문

에는 “그라디우스, 몽대륙 등의 정품 게임은 재미나만 취급합니다” 라는 카피가 당당히 실려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 나이는 13살로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MSX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메가 롬팩

을 꽂았을 때 나오는 로고가 재미나였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나에서 일본과 계약을 해서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들이 파는 롬팩은 마치 정품처럼 인증 마크도 들어 있었고 케이스

도 그럴싸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내가 자주 가는 세운상가의 재미나 본점이 단골이었기 때문에 직원이나 간부들과도 친해져서

주말마다 놀러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곳의 대리점 과장이 대리에게 하는 말

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이번에 일본에서 신종 게임이 나오는데 차질 없이 물건을 제 날짜에

사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려서 잘 몰랐지만 계약을 하게 되면 원래 개발사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의 과장이란 사람이 이야기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도 직접 계약하고 하는 게 아니며 모든 게임을 일본의 아키하바라에서 돈 주

고 사와서는 그대로 롬 카피를 해서 공급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래 만든 사람들에게 잘못하는 거잖아요” 라고 내가 질문 했다. 그 나이에, 나 보다 최

소한 20년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질문한 것은 확실히 당돌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과장에게서 날아온 답변은 더욱 당돌한 것이었다.

“어차피 쪽발이들 건데 뭐 어때? 애국하는 거잖아?”

당시는 왜색에 대한 경시 풍조가 무척 심한 때였다. 일본어를 입에만 올려도 마치 매국노처럼

경멸 당하기 일수였고 시내에서 걸어갈 때 어떤 사람이 일본어를 입에 담기만 해도 주위의 모

두가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보는 세상이었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나쁘고 공격해야 하고 무엇이

든 대결해서 이겨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

그랬기 때문에 그 상황에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침만 삼키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멋진 게임을 만든 사람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면……’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내가 일본의 게임회사에서 몸 담고 일 할 때 일본의 개발자들과 술 마시

며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주로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개발자 한 명과 주거니 받

거니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상,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이제 표절을 하지 않나요?”

솔직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던 생각이 난다. 당연히 한국 사람이니까 펄쩍 뛰어야 할

까? 아니면 그런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침 뚝 뗄까......?

그런데, 그 사람이 이어서 한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옛날에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 할 때 서울에 다녀온 선배가 재미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하며 나

에게 보여주더군요. 그건 MSX용의 그라디우스 롬팩이었죠. 그걸 보고 코나미가 한국에 라이

센스 판매를 하나 잠시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코나미는 아직 해외에 진출하기 전이었거든

요”

솔직히, 얼굴이 벌개져서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취한 느낌도 온데간데 없이 다 날아

가 버리고 고개가 팍 숙여지는 느낌이 났다.

물론 그 이야기를 오래 했던 건 아니다. 내가 당황해 하니까 바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서 계

속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2004년 지금, 게임 웹진이나 신문을 보면 심심치 않게 기사가 난다. 중국의 게임 업체들이 아무

런 양해나 계약 없이 한국의 게임 소스를 훔쳐다가 서비스하고 있다고…… 매우 큰일이라

고…… 한국의 최신 온라인 게임 기술이 빠져나가니 막아야겠다고…… 그런 기사를 보는 개발

자나 유저들은 항상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역시 중국이니까…… 중국은 안돼……



바로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그렇게 세월이 오래 지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도 가세한 상황이라는 점은 매우 심각하다.

물론, 1980년대처럼 게임 소스를 완전히 들어다가 로고를 갈아 치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디

서부터 어디까지 표절로 봐야 할까. 표절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우리 자신들의

인식을 변화 시키는 것, 남이 만든 게임 소프트의 기획에 대한 존중과 대우가 필요한 시점이 아

닐까.



지데일리. 이우진 라이온로직스 이사 / june@g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