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토요일 오후. 도쿄의 번화가 긴자 초입에 있는 일본 최대 완구점 ‘긴자하쿠힌칸(Toy Park)’은 최근 세가에서 출시한 아케이드·카드 연동게임인 ‘갑충왕자’를 즐기는 어린이들로 빼곡했다. 주말을 맞아 부모의 손을 잡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분명히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게임을 가족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 즐기고 있는 것이다. ‘갑충왕자’는 게임기에다 구입한 카드를 읽혀 실행시키는 아케이드형 게임으로 장수하늘소, 장군벌레 등 곤충들이 등장해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펼쳐 어린이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상가 밀집지역인 아키하바라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어린이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본 어디에 가더라도 눈에 쉽게 띄는 뽑기기구인 ‘가차퐁’에 몰두하고 있었다. 보통 250엔에서 300엔 정도하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가차퐁에 몰두하는 어린이를 나무라는 부모는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들이 더 열광하는 분위기였다. 가차퐁이 갖는 매력은 게임 주인공이나,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수집하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에 딱 맞아떨어진 점이다.

 지난달 게임포털을 정식 오픈해 서비스에 들어간 넥슨은 현재 일본에 서비스중인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에 가차퐁과 같은 아이템 구매시스템을 도입해, 예상 외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넥슨재팬 강영태 실장은 “온라인 밖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문화를 게임내에서도 친숙하게 즐기고 있다”며 “부모들도 어릴적 즐겨오던 게임문화를 어른이 돼서도 잊지않고, 그 습관과 인식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구조가 잘 짜여져있는 것이 일본 게임산업이 커나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밑바탕”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게임의 부정적 측면으로 자주 거론되는 선정성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은 상당히 성숙돼 있다. 물론 한국보다 훨씬 성적 문화가 개방돼 있는 이유도 있지만,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데 있어 성적묘사를 한국처럼 무조건 터부시하는 폐쇄적 구조는 아니다.

 단적인 사례 한가지.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만화 ‘드래곤볼’에 여주인공인 ‘브루마’가 어쩌다 가슴이 노출돼 그것을 본 거북도사가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일본에선 소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누구나 이 장면을 자연스럽게 즐기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 장면이 한국에 출판 될때는 ‘브루마’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것으로 ‘손질’됐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일본사무소 이영훈씨는 “한국에서처럼 무조건 못하고, 못보게 하는 구조는 일본에 없다”며 “사회적으로 공감하는 일정선이 있고, 그 선까지는 전적으로 자율에 맡기는 성숙된 구조가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는 문화도 일본의 강점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게임을 선택하고 즐기는 데서도 이 ‘지킴의 문화’가 철저히 적용된다. 올초 도쿄에서 회전문에 치여 어린이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뒤 현재 도쿄시내의 회전문은 ‘올스톱’ 돼 있다. 점검에 점검을 또 하고, 완전한 시스템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아예 사용을 안하겠다는 정책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자세는 게임의 연령제한이나 악영향에 대해 이용자가 제한선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로 이어지면서 국민성처럼 굳어졌다.

 2년째 일본에서 삼양사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정배 씨는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게임에 대한 기초교육이 어린이들의 일상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게임이 어린이들의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것을 어떻게 즐기고 절제하느냐의 문제를 어릴때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있다”며 “이런 교육이 어린이들 스스로 게임의 악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게 만드는 기초지식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소스 멀티유스’에서 발휘되는 세계최고의 경쟁력도 게임을 생활과 가깝게 만드는 핵심요소다. 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를 모두 잇는 문화가 성인-청소년-어린이가 모두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 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씻어내는 장치임과 동시에 세대를 뛰어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NHN재팬에서 근무하는 히카루 나카지마 씨는 “일본에서 게임은 온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즐기는 ‘열린 문화’”라며 “폐쇄적 공간에서 혼자 빠져드는 현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접근해 즐길 수 있는 구조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최근 초고속인터넷이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일본도 거센 온라인 열풍에 휩쌓여 있다. 게임이라면 콘솔과 아케이드류밖에 몰랐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온라인게임과 게임포털에 대한 색다른 유형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게임성보다 유난히 커뮤니티를 즐기는 일본인 속성도 온라인과 꼭 맞아떨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본인들은 ‘예절’을 중시한다. 한국에서처럼 욕설, 폭언, 과장, 떼거리 문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온라인이라는 신문화에도 일본은 성숙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도쿄(일본)=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etnews.co.kr


◆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청소년 유저들과의 대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가 일본에서 한국산 온라인게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라그나로크를 즐기고 있는 2명의 일본 청소년들과 온라인대화를 나눴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지만 스스로 절제하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스쿠터’(고3) 군은 학교 성적이 뛰어나 명문대 입학을 자신하고 있다. 요즘 들어 라그나로크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게임의 유익한 측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우등생이다.

“레벨을 올린다든지, 게임 내의 아이템을 정해 놓은 기한 안에 반드시 사겠다라든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투지를 불태울 수 있는 점이 현실 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제가 정한 목표에 도달한 뒤 느끼는 성취감은 학업에서의 기쁨과 똑같은 형태로 다가옵니다.”

역시 고3생인 켄시로베타 군은 매사에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성격이 라그나로크를 즐기면서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최근엔 게임 내 길드원들 모임을 주도하는 등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적극성을 갖게 됐다.

“실생활에서라면 학교나 주위에서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만 주로 만나게 되는 것에 반해, 게임을 통해서라면 보다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신선한 교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들을 충분히 듣고, 내 생활과 인식을 반추해볼 수 있는 시간이 돼 좋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게임의 가장 큰 재미를 ‘커뮤니케이션’에 두고 있다. 순수한 게임성보다 게임 내 길드모임이나 커뮤니티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일본 유저들의 특성이 잘 반영된 대답이다. ‘☆스쿠터’ 군은 콘솔·아케이드 등 혼자서만 즐기던 게임 취향에서 온라인게임을 통해 함께 즐기는 문화를 배웠다.

“일본 전체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매력을 느낍니다. 게임으로 인한 생활의 불규칙성, 몰입 등의 악영향도 게임 내 사람들과 상의하고 의논해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즐기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 자제하면서 긍정적 효과를 얻는 것도 자신의 책임입니다.”

켄시로베타 군은 나름의 게임규칙을 만들어 꼭 실천하고 있다. “게임시간은 절대로 자정을 넘기지 않습니다. 스스로 게임조차 이기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을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게임에 끌려다니지 않고, 게임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힘이 벌써 이들에게는 교육돼 있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개재 일자 8월 16일차.
출처 :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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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기사지만 인식도의 차이에서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보는 데는 좋을 듯 싶어 올립니다.
하편도 곧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