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조선일보

1991년 월드와이드웹(www)이 처음 나왔을 때 세상이 지금처럼 바뀔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월드와이드웹을 고안해낸 팀 버너스 리(49)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W3C’(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 소장조차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지난 15일 핀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제1회 밀레니엄기술상을 받은 버너스 리 소장은 헬싱키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웹은 국경을 초월한 아이디어의 융합을 도모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20년 뒤 세상은 지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또다시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엄기술상은 핀란드 정부가 노벨상에 기술 부문이 없는 점에 착안, 올해 처음으로 수여했다. 상금은 100만유로(약 14억원).

다음은 일문일답.


―웹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처음에는 ‘웹’이 아니라 메시(mesh)라고 불렀다. 당시 월드와이드웹이나 인터넷 주소를 의미하는 고유 주소(URL)도 없었기 때문에 웹의 기본인 인터넷 언어(HTML)를 고안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HTML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웹이라는 게 표준으로 자리잡아야 성공하는 것이다. 웹상에서 어떠한 소프트웨어도 구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모두 공개했다.”

―웹의 목적은 무엇인가?

“누구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만약 특허를 내고 사용료를 받으려 했다면 회사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개발했을 것이다.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는 18개월 동안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 사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만약 지적재산권을 고집했더라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각 나라마다 기업마다 다른 표준의 웹을 만들었을 것이고, 시스템 간에 호환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 곳곳에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고, 인류 역사의 발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웹이 생각대로 발전되고 있나?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다. 예컨대 웹은 국경을 넘나드는 도구이지만 통역 기능이 없다. 또 전 세계에 있는 데이터를 누구든 열어볼 수 있는 기능이 부족하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웹이 이렇게 뜰 줄 알았나?

“웹은 과거의 패라다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10명이 접속하더니 다음날 또 다른 10명이 접속하고, 다음날 20명, 40명씩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사용자가 매주 갑절로 늘어났다.”

―웹 만들당시 비화를 소개해달라.

“웹을 처음 만들 때 동료 물리학자들은 상업용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은 우리는 웹의 토대를 만들고, 여기서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MIT에서 노키아 등 450여개 기업 및 정부기관들과 함께 미래의 웹을 연구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음성파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또 인터넷을 일반 통신 도구나 종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언제 웹의 힘을 느꼈는가?

“몇 년 전 컴퓨터를 켜고 서핑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웹사이트에 교황청의 역사적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걸 보는 순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교황청의 사료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교황청이 르네상스 시절 각 지역 사제들로부터 받은 황금 편지 등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이걸 네덜란드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하나로 묶어 웹사이트로 만든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아이디어와 자료 간의 통합이었다. 교황청과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런 일이 있었는 줄조차 모르는 사이에 국경을 초월한 협력관계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바이러스나 스팸이 광범위하게 퍼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웹은 음악 파일이나 동영상 자료, 또는 사진을 서로 주고받기 편리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이젠 웹에서 뭔가 주고받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돼 버렸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담긴 이메일 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바이러스나 스팸 메일을 보내는 사람을 처벌해도 되나?

“메시지를 보내면서 남의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불법이다.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한다. ”

―2020년 웹의 모습은?

“20년 뒤 웹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단지 국경을 초월한 협력관계가 더욱 더 공고하게 이뤄진다는 것 이외에는 나 스스로도 상상하기 싫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웹 때문에 더더욱 민주화될 것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발언을 인터넷에서 즉각 검증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웹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는 표준화작업을 선도해야 한다. 정부는 보유 중인 문서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선거를 인터넷으로 치르는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연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사용할지를 놓고 국가간의 통상 분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표준에 다가가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장을 갖게 되면 해외에서는 외면당한다.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를 위해 별도의 플랫폼을 만들고, 별도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도 지적재산권과 음반 제작자 간에 분쟁이 일고 있다.

“기술을 개발한 데 대해 어떤 보상을 해줄지는 사회가 결정해야 한다. 돈을 한 푼도 안내고 컴퓨터에서 MP3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수천수백만 개의 음악을 내다 파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용자의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에 대해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음반업계도 과욕을 부리는 것이다. 어디선가 합의점을 찾아야 하고, 어떻게 보상할지를 정해야 한다.”

―인터넷 중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은 컴퓨터를 책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인터넷을 어떻게 제대로 사용하는지 가르쳐주는 게 어른의 몫이다.”


(헬싱키=최우석기자 wschoi@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