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감자입니다.

참고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를 하자면 이와오 준코는 일본의 성우& 가수입니다.
(현재는 성우활동을 중단하고 가수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우로서 대표작은..

토모요(카드캡터 사쿠라), 민트(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세레스(아야시노 세레스), 세리카& 아야카(투하트), 히카리(신세기 에반게리온)등..

이하의 글은 제가 아는 분의 블러그에서 퍼왔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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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쓰고 싶었으나 글쓰는 재주가 없어서 모잡지의 기사를 인용한다.


이와오 준코가 인기를 얻을수 있는 계기가 된것은 누가 뭐라 해도 메탈아이돌 키 때문이였다.

메탈 아이돌 키에서 그 안 들리는 목소리가 처음 빛을 발했고 데뷔초기부터 라이브 공연에 상당한 중심을 두고 있어 새로운 타이틀 발매와 함께
끝임 없이 이어지는 콘서트로 팬들이 그녀를 잊을 시간이 없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베타맨 에서 사쿠라 역으로 그 금방 숨넘어갈 것 같은 안들리는 목소리가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랑그릿사 4,5의 셀파닐 역도 그녀의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To Heart에서 쿠르스가와 자매를 연기한 것은 다양한 역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뛰어난 연기력이 갖췄다는 것을 말해주는 한 예일 것이다.
그 박력의 아야카와 안들리는 세리카의 역을 동시에 소화해 낸 것은 역시 역량.

하지만 그녀 본인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역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반장인 호라키 히카리의 연기.

에반게리온은 어딘가 세 바퀴 반쯤 꼬여 있는 듯한 세계관을 가진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 세계관 때문에 캐릭터 들의 개성도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개성이 강한 캐릭들로만 가득하던 와중에 호라키 히카리는 유일한 보통소녀였다.
평범하지 않은 세계의 보통소녀 연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같은 반의 토우지에게 비밀 스러운연정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화만 내고 어떤 때는 손수 만든 도시락을 전해주기도 하는등 변덕스럽지만 상냥한 소녀다.

상처 입은 아스카를 감싸 주는 장면에서도 상냥함을 느낄수 있다.

히카리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에반게리온에서 잠깐동안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는 순간이다.
한참동안 긴장되고 보는 사람마저 지쳐있을때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캐릭터와 천사의 목소리.

그래서 이와오 준코 본인과 히카리를 합일해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오 준코 연기보다는 노래를 더 좋아한다.
아직도 리플레인 러브의 오프닝 곡이였던 Anything Gone 을 처음 들었을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약간은 들떠있는 듯 하면서도 깊은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력 있는 그녀의 보컬은 Anything Gone 같은 애절한 가사를 담고 있는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린다.    



- 그녀의 뒷 사정(?) -

눈물 겨운 과거가 있었다

이와오 준코에게는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98년 정도 였던가?
일본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눈물겨운 과거를 모두 밝혔다.

물론 이전에도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 인터뷰에서 보여진 이와오 준코의 모습은 지금까지 목소리와 노래들로만 들어오던 이와오 준코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것이였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반에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였다.

그런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 동경에서 개최하는 영화배우 오디션 소식을 듣게 된다.
영화 '더 오디션' 에 출연할 주연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만류하는 부모님을 뿌리치고 오디션에 응모해 당당히 합격한 이와오 준코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동경으로 상경한 이후에야 자신이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그런 식으로 아이돌 예정자들을 일단 끌어 모아 값싸게 키워서 데뷔시키는 기획사가 비일비재했다.
이와오 준코도 그런 기획사의 그물에 걸렸던 것이고 이미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발뺌할 수도 없이 아이돌 양성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이와오 준코 나이 13살때의 일이다.

1985년 15살 때 소속 기획사의 간판 아이돌 그룹이였던 '세인트 포' 의 멤버 한명이 탈퇴 하게 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와오 준코는 이와오 준 이라는 예명으로 새로운멤버로 가담한다.

이와오 준코는 이때를 자신의 인생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상한다.

옷 한가지 음식 한가지도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없고 언제나 죄수처럼 감시 받아야만 했으며 하루종일 하는 레슨으로 온몸은 만신창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오 준코가 멤버로 있었던, 85~87년의 세인트 포는 일부의 매니아 층에게는 큰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는 인기 만화가'시마모토 카즈히코' 의 출세작 불꽃의 전교생 에는 센트 포 라는 4인조 여성 악역이 등장한다.

얼른 봐도 알겠지만 당연히 세인트 포를 패러디한 4인조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와오 준코 라는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녀 자신은 하루 하루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눈물의 시절을 넘어 세인트 포가 해체되고 소속사와의 계약이 완전이 끝난 이와오 준코는 당장 갈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20세가 다되는 나이였지만 그녀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중퇴 였다.
더군다나 저축할 돈도 없었고 지금에 와서 부모님에게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새벽에는 아르바이트 오전에는 회사 오후에는 레슨 저녁에는 학교를 다니며 어떻해든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거의 대부분 닥치는 대로 했고 버는 돈의 대부분을 레슨비와 학비로 사용해 생활은 빈곤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도 계속 다니지 못해 자주 휴학을 했지만 학교만은 어떻해든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1990년에 와서야 그녀는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할수 있었다.

1993년 말, 그녀는 결단을 내리기로 한다.

상경한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제대로 가수가 되지도 못했고 빚은 쌓여만 가고 방세는 밀려 당장에 쫓겨날 판이였다.
그럴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NHK위성에서 방영할 예정이었던 만화영화 '몬타나 존스'의 여주인공 성우 오디션에 응모한다.

하지만 오디션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해를 넘겨 94년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 이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짐을 정리하기 전에 13년 간이나 담을 쌓아왔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대기만성이라 하던가? 고향에서 돌아온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오디션에 합격했음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의 실력이 타인에게 제대로 평가 받는 순간이였던 것이다.

결국은 이런 복잡한 사연을 거쳐서 성우로 데뷔하게 되었고, NHK 위성의 교육프로에서도 사회를 맡게 되면서 실력을 인정 받는다.
이미 10년이나 매일 레슨을 하면서 갈고 닦았던 노래 실력과 피아노실력,연기력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메탈 아이돌 Key의 여주인공 '미마 토키토' 역을 맡아 무표정하면서도 귀여운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연기를 보여줘 폭팔적인 인기를 얻는다.

키 더 메탈아이돌 Key 계기가 되어 작곡가 야마모토 하루키치와 결혼 하게 된다.
(야마모토 하루키치가 1960년 생인 것을 생각하면 10년이나 차이나는 커플..^^;)

카드캡터 사쿠라의 토모요역으로 지금은 초대형 급의 성우가 되었지만 상당히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극장용 만화영화 'Perpect Blue' 의 주인공 키리고시 미마 는 마치 성우인 이와오 준코의 과거를 투영한 듯한 캐릭터이다.

만약 성우가 되지 못했다면 그녀도 영화 속의 편집증 환자 루미처럼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도 지금은 처음의 꿈이었던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은 것?^^;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을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안정된 수입을 얻기 위해 18살부터 2년간 OL이 되었다.
서류를 타이핑하는 오퍼레이터의 일이였다.

나는 원래 기계를 좋아했다.
키보드를 마주 대하면 즐겁다 라고나 할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OL.토요일은 백화점 옥상에서 어린이 이벤트의 노래하는 누나 아르바이트를 했다.

조금이라도 마이크를 잡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결국 마음가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그일들을 아르바이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0살이 되었을 때 뮤지컬 오디션에 합격했다.
같은 때 NHK 교육방송의 초등학교 6학년 과학방송을 담당 했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정기적인 일은 없었다...

도쿄로 올라온지 10년때 이번에도 안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자.
모든걸 잊고 '제 2의 인생을 걸어가자' 꿈은 언젠가 이루어져.

그래 반드시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큐슈에서 혼자 도쿄로 왔을 때는 13살이었다.

보장된 미래는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자" 라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다시 한번 그리고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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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와오 준코'씨의 노래를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이와오 준코라는 일본 성우& 가수가 있다.'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위의 글을 읽으면서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꿈이었던 가수가 되었으니까요.

다만, 약 10년 이라는 길고도 험한 세월이 흐르기는 했습니다만..
저였다면 10년은 커녕.. 약 3년만에 포기 했을겁니다.


누구든지.. 개인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글..


예전에 이와오 준코씨의 단독 콘서트가 한국에서 열릴기회가  있었는데, 예매가 저조해서 무산되었죠.
다시 한번 이와오 준코씨의 콘서트가 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빚을 내서라도 가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의 노래는..

분명히.. 좋은 노래일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