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러니까. . .

제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였습니다....(94년 12월. .  .)

당시 94년...겨울. . . . 국내 최초 그래픽 머드 게임이라는 바람의 나라를 천리안에서 서비스한다는 걸 PC통신 소식지 같은데서 보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중학교에 들어가 그 해 겨울..95년도에 게임을 접하고 . . . . 당시에 28.8kbps 모뎀으로 접속해서 한달에 전화요금도 7만원 정도로 내가며 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료서비스 이용료까지 거의 그 수준으로 나왔으니.... -_-;;;;
개폐인이었지요.

당시에 바람의 나라에는 전사 주술사 도적 도사의 클래스가 있었고 . . . .동시 접속자 수는 채널 달랑 하나에. . . 중1 때는 100~200명 정도였고 . .  .중2 되니까 300명 정도 될 때도 있었던 것 같넹. 그게 96~97년 이야기군요 벌써 -0-

*그 때 하고 놀았던 것들 중에 '즐 초딩' 에 해당하는 것들을 회상해 보면. . .


1. 초보 살해하고 아이템 뺏고 리젠 될 때마다 '출두' 라는 기술을 사용해 뒤에서 나타나 계속 죽이기.
1-1. 레벨이 낮을 때 레벨 99의 도사 살해 -_-경험도 . . . 고수를 죽이고 즐초딩농담을 건냈던 것으로 기억. . . . .

2. 레벨 낮은 학교 친구들을 '소환' 해서 죽이기 -_-;

3. PK가 가능하고 죽어도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는 곳(당시 무한대전 -_-장;) 에서 나가기 직전에 뒤에서 일격을 가해 죽여 아이템 떨어뜨리게 하고 훔쳐서 달아나기..-_-;;

4. 인터넷 접속시 레벨 1~10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 . . . '운영자' 라는 이름의 아이디를 만들어 운영자 사칭하기 . . . . 리얼 운영자가 감옥에 보내면 . . . . 아이디를 지우고 다시 나타나 '감옥에서 탈출했다' 고 헛소리 하고 다니기 -_-;;

5. 아무나 잡고 즐초딩 농담과 욕설을 건내기... -_-;;;;


*더불어 현실사회에서 크롸임;; -_-;;;에 해당하는 것들을 돌이켜 보면

1. 통신망 아이디 도용해 바람의 나라 서비스 이용하기 -_-;;;; . . . . . . -_-;;;;;
    사례 1) 바람의 나라를 이용하는 유저의 통신망 아이디를 도용해 이용하여 타 유저에게 통신비 부담을 3만원 정도 가중시킴;
    사례 2) 친구 아버지 회사 아이디를 도용해 친구들끼리 돌려 쓰며 한달에 100시간 이용 . . . . . . 정보통신이용료의 압박(분당..얼마였더라 . 25원15원?). . .  .(이것이 혹 1년 후 외환위기 때 친구 아버님이 실직하신데 기여를 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 -_-;; 이. . . . . . )

2. 바람의 나라 아이디 도용하기 . . . .  -_-;;;;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고 현-_-피의 사선을 넘나드는 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반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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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정말 작은 악마가 따로 없었지요. 그 땐 그랬지 하고 넘어가지만 지금도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중학교 하면 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곤 합니다.
당시 같이 바람의나라를 하던 친구들. . . . . . 후우 저는 학교에서 바람의나라를 뭇 친구들에게 널리 퍼뜨려 선생님으로부터 ' 똥물(MUD) 튀기는 녀석' 이라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고. . . .
당시 바람의 나라 때문인지 아닌지 . . .부동의 전교 석차 1위를 달리던 친구가 주춤하기도 했고 . . . 지금도 늘 푸근한 동네 친구들은 당시 상당 수 바람의 나라 -_-;;;;;를 해본 기억이 있는 친구들이네요.
중2~3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즐초딩이었기 때문에 게임으로 사람을 사귀지는 못했답니다.

후회되는 점으로는 게임+학업을 병행하다 피로로 다음 해 봄 1주일 동안 뻗어버린 경험이 있었따는 점과 . . .-_-; 동네 친한 스타일리쉬한 친구 하나가 바람의 나라 등등 유흥성 문화에 깊게 빠져 아직까지 고등학교...그것도 미국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와서 군대가려고 준비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며 좀 안타깝다는 겁니다. . .

이후에 비교적 일찍 머드 - 당시엔 mmorpg라는 말은 잘 안 썼었죠 - 를 접고 잘 살아서 . . . 대학도 원하는 곳으로 잘 갔고, 어려워도 해볼만한 공부를 하며 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흠.  . . .  .바람의 나라를 주욱 하고 . . .  . . . 언젠부터인가는 . . . .라그나로크로로 친구들이 많이 몰리더군요. .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 . . . . 고등학교 때는 다들 공부하거나. . . 게임 외의 다른 놀거리를 찾거나, 예능계 친구들은 낮에 학교, 밤에 미술학원을 다니며 게임과는 조금 거리를 쌓았던 것 같습니다 . . 주변에 매니악한 게임 유저는 잘 없어서 주로 유행하는 스타크래프트나 좀 하곤 했죠.

라그나로크를 안 한 게 일생에서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지금까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라그...때문에 좋은 친구 셋 정도가 몇 년 방황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_-'라그' 에 빠져서 한 명은 2년 정도 실업자 상태로 휴학하고 반 정신질환 상태로 갔다가 . . . 6개월 전부터 알바도 하고 인간다워지며 이제 복학합니다. . .

  또 하나는 라그 때문에 재수도 실패하고(실패해서 서울대 기계항공갔습니다만 -_-;원래는 건축과 희망했습니다...) . 그 이후에 학교 생활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지금 대학교 2학년인 녀석이 수강신청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니 딱하기도 하더군요 . . . 정말 인문학 뿐만 아니라 두루 교양을 섭렵한 친구...수학 과학도 잘 하고 . . . . 라그를 하지 않을 때만 해도 시중에 나온 신간은 죄다 읽어볼 정도로 멋진 독서광이었는데 . . . 라그를 하고 부터는... 밤새고 게임이나 하는 별 볼일 없는 삶을 살면서 과거에 괜찮은 청년이었던 자신을 잊고,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같이 02 년도 ....전 년도에 비해 유달리 어려웠던 수능 칠 때도 고등학교는 달라도 모의고사를 서로 힘내라면서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들 중 하나였고...수학을 썩 잘 못하는 인문사회계열 학생이었던 저에게 좋은 학원도 소개시켜주며 열심히 하고 . . .수능 끝나고 버스 대절해 가며 새벽 정동진 바닷가에서 소주 한잔도 걸치던. . . 그런 친구였는데.......... 그 후 라그를 하면서 본인의 빛을 점점 잃어가는 것만 같아 이 세상이 아까운 인재를 버리는 것 같다는 원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그 때려치워라 이 쉑휘야 -_- 라그는 즐이다. 학교나 잘 다녀보지 그래."

"학교도 즐이다. 라그가 더 좋다"

이렇게 감정 상해서 이런 대화밖에 나누지 못하고. . . .만나긴 해도 라그 얘기를 하는 세 명과 그밖의 친구들은 상당히 소원해지곤 했습니다.


당시...또 다른 어느 해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의 저는 술에 너끈히 취해 집에 드러와 엠에센에서 '라그 폭파해버려야겠네 개지랄' 등등의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증오를 표출했고, 그 증오의 대상은 무고한(?) 운영자와 개발자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라그나로크라고는 구경만 해본 녀석이 라그 개발자를 찾아서 없애버려야겠다는 농담도 하며, 호기심 반 이성 잃은 객기 반으로 처음 찾은 곳이
Lameproof.net 이었습니다.

이 곳에 오면서 학규님이 읽으신 좋은 책들 가운데, 저의 인생 신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감명깊게 읽었던. . .built to last나 .. .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이고 낙담한 가운데..읽으면서 내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의 우중충한 구름도 깨어버리지 못하는(cloud breaking...) 나는 무슨 공부를 했으며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가 반성하게도 하고 용기를 심어 주었던..또 성과지표..를 활용하는 쉬운  예를 보여주고 관리회계에 관심을 갖게 해준 the goal.....이런 책들을 발견하면서 평범한 인간으로서 학규님과의 동질성을 발견하게 되고, 훌륭한 분으로서 좋은 글과 일상의 단면을 남겨주시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바쁜 업무 중에서도 서로 생각을 교환하시는 개발자 분들이나, 화목하게 게임을 즐기는 다른 유저들을 보면서 당연한 거지만, 내가 싫어하는 mmorpg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고요. 조금 더 자신을 돌이켜 보아, 어릴적에 나름대로 컴퓨터를 좋아하면서, 어설프게나마 비베나 c언어를 공부하면서 '나 또한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 는 회상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생각은, mmorpg나 여타 비디오게임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등산을 가거나 친구들과 축구한판을 하겠다는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 mmorpg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준 이 세계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마약이며,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마약상과 게임과 마약류의 중독성과 해악이 유사한만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세이클럽에서 웃으며 고스톱을 치거나, 팡야같이 시원하고 가벼이 즐길 수 있는 게임 정도를 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 진실은 언제나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기에, mmorpg가 가져다 준 축복 또한 외면할 수 없네요.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욕구나 태도를 보여주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장애가 되는 현실의 외피를 벗겨주는 것들이지요. 역시나 삶을 즐겁고 역동적이게 하는 측면과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준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겠네요.

여전히, 과연 게임이라는 것이 Impress, Motivate, Connect 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세계 안에 온라인 게임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보며, 우리 세계밖의 절대자 혹은 우리를 초월하는 존재를 확신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퀘스트가 있는 것처럼, 삶에서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게임에서의 자유도처럼,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 있다 할지라도 선택은 내 자신에게 상당 부분 일임되어 있겠지요. 아바타가 있는 것처럼 나의 육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체와 영혼은 불가분합니다.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나의 아바타와 육신 중 종종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처럼요.

현실과 온라인 게임이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프렉탈 구조로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0 아니면 1이라는 식의 선택도 요구하지 않지만, 원리보다는 덜 결정적인 현실은 분명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mmorpg를 현실과 거의 동등한 세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해당하겠지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역변수와 전역변수 쯤의 관계일까요?

플레이어로서 살아간다면 보다 큰 물인 현실에서 멋진 플레이어가 되고 싶고, 그렇다면 게임이라는 좁은 세상의 플레이어는 도무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현실에서의 멋진 플레이어들은 즐길만한 게임들을 만들어내는데, 그 멋진 플레이어들은 게임 세상의 플레이어들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져버리네요. 게임 제작자들이 남들에게 즐거움을 준만큼 경제적, 심적으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게임 제작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게임 제작자들이 남들에게 피로와 나태와, 비만을 안겨주었을 때, 게임으로 현실에 시간적으로 소홀하여 소외될 때, 충족되지 못하는 외로움을 갑절로 안고 살아가게 될 때, 그래서 결국 게임 속의 플레이어로 종사하는 것이 효과적이게 만들어 버린다면, 이 세계의 플레이어를 게임 속의 플레이어로 퇴화시킨 책임은 개발자들에게도 분명 존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실의 시장이 대단히 효율적이여서 이미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들은 그러한 수준의 '결과적으로 열악한' 보상을 받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토양이 오염되어 싹을 틔우지 앝는 밭뙈기처럼 별로 좋지 못한 게임들이 그 스스로 설자리를 점차 줄여갈지도 모릅니다.

현실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지침이 되면서, 또 조금 나은 세상이 게임 속에서 구체화되길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바람일까요? 학규님과 동료 분들이 이전에 만드신 게임보다 이번 작품이 조금 더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게임은 플레이 하고 나서 피곤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