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용 문화지수의 오름새  

아름다운 가게
이강백 사무처장  


지나치게 새 것을 선호하는 한국 사회
피가 잘 순환되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돈의 흐름이 막히면 경제는 무너집니다. 생태계가 순환되지 않으면 지구에 종말이 옵니다. 순환은 생명을 살리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풍조가 강합니다. 남이 쓰던 물건을 다시 쓰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합니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가보면 아직도 쓸만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쓰레기로 나갑니다. 집안에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쌓아놓은 물건들이 가정마다 가득합니다. '언젠가는 입겠지' 생각하면서 쟁겨놓은 옷들은 해가 갈수록 그냥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건이란 필요에 의해 구매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싫증이 나기도 하고 체형이 변해서 맞지 않을 수도 있지요.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의 경우 사용하는 일체의 물건이 시간이 지나면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대부분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자신에게는 애물단지이지만 필요한 사람한테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지요.

물건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버려지는 유리잔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자연의 자원들이 녹아들어 있습니까? 또 그 잔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시간과 노동력, 땀과 정성이 들어가 있을까요? 헌 물건에는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손때와 역사가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물건도 하나의 생명입니다. 물건의 생명주기를 가능한 한 많이 늘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일이고 동시에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도 재사용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재활용센터나 교환을 중심으로 재사용운동을 전개하는 녹색가게가 재사용가게의 오랜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가 생기고 나서 재사용가게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등장했습니다. 아름다운가게와 유사한 참좋은가게, 나눔, 은빛가게, 희망시장, 심지어 일본계 재사용가게인 하드오프까지 진출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한국사회의 새로운 문화현상입니다. 남의 물건을 사서 쓰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던 풍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득이 높은 선진국이 오히려 우리보다 검소하게 생활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가전제품의 교체주기를 보면 놀랍습니다. 세탁기의 경우 미국이 14년을 쓰면 우리는 6.5년 만에 교체합니다. TV도 미국은 12년이고 우리는 7년에 불과합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재사용가게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마을마다 재사용 자선 가게가 5개 이상 있습니다. 제3세계의 빈곤층을 돕는 옥스팜은 영국 내에만 800여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지원하는 미국의 굿윌은 3000여개의 매장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들고 가서 기부하고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집 앞에 늘어놓고 판매하는 차고 세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


재사용문화 확대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업그레이드

아름다운가게의 판매수익은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는 전부 공익과 자선에 사용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암 말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인 할아버지의 치료비, 장애인 부모 하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키워가는 고등학생 쌍둥이 딸의 생활비,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가출로 소녀가장이 된 여고생의 방값, 아들과 단 둘이 월셋방도 없이 친척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소아마비 장애 여성의 생활비, 심장질환으로 고통 받는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수술비, 소식도 없지만 자식이 호적에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조대상자도 되지 못하는 장애할아버지의 생활비 등으로 그 돈은 소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나눔이 가능한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액세서리 공장에서 구입한 액세서리 500 여 점을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한 강완주(61세) 선생님. 부인이 일산에서 운영하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얼마 전까지 인기리에 판매되던 제품들을 모아 가게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이분들은 수입한 액세서리로 본전을 뽑았으니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자며 천만원어치도 넘게 기증을 해주셨습니다. 욕심을 내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꼭 여유가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거나 기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파트 경비원 고천석씨는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신발들을 골라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해주고 계십니다. 사실 고천석 선생님 자신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입니다. 두 딸과 아내가 모두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어 병원신세를 늘 져야 하기 때문에 병원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고천석 선생님이 경비 일을 하고 있어 전액 지원을 받지는 못하고 정부로부터 받는 약간의 보조금과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중증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큰 딸과 다른 가족들의 약비를 대기도 버거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려운 처지로 남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뭔가 늘 하고 싶었어. 비록 돈을 기부할 순 없지만, 내가 주어온 신발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게, 내가 남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기쁜거지."

재사용문화의 확대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참여한다는 것, 물품을 기증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지요. 기쁨을 주는 일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정리하며 삽니다. 목욕을 하듯 마음도 항상 씻어주고 정리해야 합니다. 마음도 그렇듯이 집안도 정리하고 청소해야 합니다. 내가 입지 않는 옷이나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보내는 일은 집안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일의 파급효과는 큽니다. 먼저 필요한 사람이 싸게 구입할 수 있고요. 버려질 물건의 생명이 연장되어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과정에 당신이 참여한다면 당신은 우리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주역이 됩니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