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릴러 영화를 제작할 때, 여러가지 사건을 나누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것을 하나로 합치는 스타일을 종종 써먹죠? 이 영화도 그런 스타일을 씁니다.
그런데 보통 갱스터에서 써먹는 이 스타일을 정치색 짙은 영화에서 쓰는건... 일단 저는 처음봅니다.

(실컷 인물정리를 하다가 내 마음에 안들어서 싹 지우고 1분 뒤...)

이런 영화는 스토리 라인에 대해서 단 한줄이라도 잘못 언급했다가는 결말이 보이게 되니
조심스럽군요. 결말에 무슨 극적인 반전이 있는것은 아닙니다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결말이라서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여하간, 퇴물직전의 CIA 요원과 미국
수뇌부 및 석유재벌, 중동 왕실의 암투, 기타 등등 여러가지 요소가 너무 복합적으로 들어가서
모든 내용을 파악하려면 꽤 머리 써야할것입니다.

참 재미있는것이,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제작하는 상업영화라면 으레 대통령이 성조기 휘날리며(?)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을 때려잡는다거나(인디펜던스 데이), 아니면 대통령이 직접 테러범 잡으면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가 대신 미사일을 맞는다거나(에어포스 원) 등등 미국적인
정의를 높게 내거는 영화들이 전부인 미국에서,

이게 다 미국때문이다. 중동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미국은 뭘했나?

라고 미친듯이 미국을 까는 헐리우드 영화는 처음 봤습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도 국가적인 음모가 진행되지만 이는 수뇌부의 결정이라기 보다는
일부 강경파들에 의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그 자체가 오직 이득만을 위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사건 요소요소에 미국 수뇌부와 석유재벌이 개입되어있으며, "미국의 이익을 위해 편법을 쓰는것이
죄입니까?"라고 외치는 석유회사 관계자와, 석유재벌의 부정을 알고 있으면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범법자와 '거래'를 하는 연방검사의 모습은 관객을 조용히 분노하게 만듭니다.

영화에 나오는 '아라시'왕자는, 후진적인 자신의 나라에 국회를 만들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것을 다짐한 스케일이 큰 사람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이 남의 나라를 평가할 때 가장 잘 써먹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치를 가장 실천하기 적합한
인물인데, 막상 이 인물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결정만을 내리니 가차없이 "테러범 지원자"
라는 위험한 딱지를 붙이는 모습에서, 영화는 과연 그들이 정말로 경찰행세를 할 자격이 있는지
관객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영화 초반의 지리한 상황설명은 가장 큰 흠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만,
그 이후의 숨막히는 파워게임은 시종일관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중동 정세에 관심많은 사람은 필히 보시길.

영화가 끝나고, "지난 100년과 같이 앞으로의 100년도 이렇게 한심하게 돌아갈것이다"라고 지적한
브라이언 우드맨(맷 데이먼)의 대사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이외에 멋진 대사들도 많기는 합니다만.

-Zenon-

p.s.맷 데이먼은 특유의 연기스타일을 고수하는데, 그것은 "머리좋고 남을 빈정대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인물을 연기하는것입니다 =_=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대상에 대해서는 언성을 높여
신랄하게 비꼬는 그만의 특이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언제까지 이런 캐릭터를
계속 할런지... 그래도 워낙 이런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배우라서, 당분간 계속 이런 역활만
맡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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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heavens shall trem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