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보는동안


머리의 통증은 잊혀졌다. 거울속의 깔끔한 피부와, 부기와 군살이 쏙 빠진 나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멋져보였다.




내가 오늘이 졸업식이란 사실을 인지하게 된것은, 알람시계가 없는 나를 위한 아빠의 성의없는


알람배달을 봤을때 였다. 아빠는 내 방 침대에 누가 누워있는지 확인도 하지않은채 알람시계를


놓고 빠져나왔다. 화장실에서 다씻고 나오는 나와 마주친 아빠의 얼빠진 모습은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 항상 그런식이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아빠가 한심스럽기만 했다. 아빠는


나에게 괜찮냐고 했다.


"괜찮아요. 오늘 졸업식하는 날인데 일찍 일어나야죠."


라고 대답한 나를 무시하고 대꾸도 없이 아빠는 방으로 돌아가셨다.





고장난 컴퓨터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잘


켜지는 컴퓨터를 보며 스스로 대견한듯 기뻐했다. 컴퓨터가 고장났을 당시는 하고싶은게 싸이고


널렸는데 막상 돌아가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는 멀뚱멀뚱 바탕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대학에 합격한 곳이 없는 나는 동서울대학의 3차 추가발표현황을 확인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발표일이 오늘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3차 발표는 전화개별통보로 진행되었다. 인터넷을 하기엔


더이상 시간이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CD-RW의 배송현황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배송은 커녕 입금확인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컴퓨터로 보낸시간이 30분에 한대씩 있는 마을버스를 4대나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러쟎아도


가고싶지 않은 학교, 난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빨리 가라고 재촉하시는 부모님은 다르신 모양


이었다. 학교에 가면 왠지 무시 받는 분위기 속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문에


들어선 나를 보고 9반의 한 싫은 녀석이 나에게로 다가 오고 있었다. 녀석과 말을 하면 잘난척 섞인


말투에 당한느낌이 역력하지만 말수가 적고 말다툼에 약한 나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녀석이


말을 꺼내기전 자리를 피하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외로운 나는 말상대가


되어 주기로 했다. 녀석은 어떻게 알게된건지 교촌치킨집에서 배달을 하게 됬냐고 물었다. 녀석은


대답을 하려던 나를 무시하고 자전거로 배달하냐고 쏘아붙여 되묻는다. 무시하고 깔보는 말투에


나는 언제나 처럼 당황했지만 순간적으로 반격할 대사가 생각났다.


"그러는 넌 텍트에 시동이나 걸 줄 아냐?"


키를 꽂고 돌리면 시동이 걸리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녀석의 말에 통쾌하게 비웃어주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오래있으면 또 녀석의 비아냥거리는 식의 변명을 듣게 될테니.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온 나는 졸업앨범을 받고 상장수여식을 간단하게 했다. 물론 난 아무


상도 받을 수 없었지만 상 따위와는 다른 소중한 것 하나를 받게되었다.




그녀와 같은 반인 나는 그녀를 혼자 좋아하고있다. 방학하기 전에는 그녀와 친밀하게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칠 수 있었지만 방학동안 만나지 않은 공백기간이 있어서인지 서먹서먹해지고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조그만 CD한장과 함께.




졸업식에는 부모님과 누나가 찾아왔지만 졸업식이 끝난 후에는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집에서 나와 점심을 먹었지만 이내 곧 일하러 나가셨다. 집에 혼자 남게된


나는, 애초의 가족들과의 점심약속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은 져버린 상태였다. 그녀에게 받은


CD는 지금 어찌해볼 도리없이 그냥 바라만 봐야 했다. 할일 없이 또 컴퓨터를 켜서 다시한번


CD-RW의 배송현황을 확인했으나 역시 아직까지도 입금확인 조차 되지 않은상태였다. 화가난 나는


더 이상 참을수 없게 되자 키보드를 두드려 컴뱅크의 게시판에 오늘안에 보내지 않으면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협박성의 말을 써넣었다.




치킨집 알바 월급날인 내일은 컴퓨터를 사러 용산 전자상가에 갈 예정이다. 컴퓨터는 기계이기


때문에 어느 적정선이라는것이 없다. 이거면 이것, 저거면 저것. 이렇게 부품도 호환성이 서로 맞는


부품을 사용해야 고장도 적고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게 도와주며 용산에 다시 발품을 팔 일도 없게


된다. 때문에 지식iN을 돌아다니며 컴퓨터 부품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항상 시끄러운 노랬소리와


독한 담배연기에, 집중해서 공부할 수 없었던 피씨방과는 다른 환경이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집중도


잘되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컴퓨터는 고쳐졌지만 CD-ROM이 고장난 상태이고 전체적으로 오래된 구형 컴퓨터이기 때문에


새로 살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윈도우 시디또한 망가져서 컴퓨터를 새로 장만하게 되어도


윈도우를 설치할 방도가 없었다. 때문에 윈도우 시디를 굽기위한 CD-RW를 미리 주문하게 된


것이다. 고장난 컴퓨터에서는 CD-RW를 작동시킬 방도가 없었기에 친하게지내는 이웃집 동생녀석


에게 윈도우 파일을 받아 놓으라고 부탁했었으나 컴퓨터가 고쳐진 지금은 집에서 받아서 집에서


CD를 굽기로 했다.




두차례의 전화벨이 울린 후 전화를 받았다. 컴뱅크에서 온 전화다. 미안스러운듯한 말투로, 내가


주문한 CD-RW의 재고가 다 떨어져서 같은 버젼에 블랙 커버를 단 물건을 지금 바로보내


주겠다고 했다. 3천원이 더 비싼 물건이지만 차액은 본인이 부담한다는 컴뱅크 아저씨의 말을 듣고


얼른 승낙했다. 컴퓨터 케이스 컨셉을 화이트로 잡았었던 나의 생각은 금새 블랙 컨셉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예쁜 블랙케이스의 본체를 생각하며 흐뭇해 했다. 컴뱅크의 전화를 끊은지 몇분


지나지 않아 온 아빠의 전화를 통해 동서울대 3차 추가합격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땐 너무


기뻐 눈물이 날뻔 했으나 왠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전 다시한번 그녀에게서 받은 CD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랍


속에 쳐박아둔 CDP를 꺼내 시디를 플레이 시켜보았지만 아니나다를까 응답없는 이어폰에


CD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CDP를 때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결과는 더 악화되어


CD 조차 돌아가지 않게되었다. 결국 포기하고 잠자리에 든 나는 왠지모를 기쁨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잠이들었다.








창과 시계조차 없는 방은 적막과 어둠이 흐른다.



방에선 소년의 숨소리만을 들을수 있게 되었고 이내 소년의 숨소리 마저 적막한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자정이 지나고 멈추어진 CDP의 전원에 희미한 불빛과 함께 CD가 돌아가게 된다.



응답없던 이어폰에서는 소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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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입니다.

왠지 어젯밤 생각나는바가 있어 일어나자마자 조금 적어봤는데

어젯밤 생각하던것과는 영 거리가 멀게 됬네요..

운수좋은날의 느낌을 조금 줘봤는데..

솔직하게 재미가 없네요. 내용이해도 어렵고.. 저의 시점과 생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으니 말이죠..

그냥 그렇게 읽으세요..

참고로 제 이야기를 기초로 써넣었으나 거의 대부분은 픽션입니다.

저와 일치시켜 보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