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동쪽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김춘수란 시인의 글입니다.

이번 부다페스트의 참사를 애도하며 러시아(소련)의 만행을 고하고자 이 글을 오스트리아에 바침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30보 상공으로 뛰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 앞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쉬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 세 살은 잡히는 것 한낱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접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주일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