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만화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한편이 아니라 장편(22편짜리)이라고 해야 하나?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보다
만화영화라고 하는 게 더 입에 착착...




암튼 미치코와 핫친이라는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내용은
냉전시대쯤으로 보이는 쿠바나 브라질이 배경으로

살인죄로 무기징역 중, 12년 만에 감옥에서 탈옥한 여자(미치코, 20대로 추정)가 자신의 옛 애인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 와중에 그 옛 애인의 어린 딸(핫친=하나, 9살)과 만나 동행.


미치코가 찾는 옛 애인의 이름은 히로시.
미치코의 과거 회상에서 히로시는 낙천적이고 따뜻하며 남자답고 다정한 인상입니다.

암튼 완전 막가파에 과격한 여장부 미치코와

9살의 나이지만 양부모 아래서 학대받고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정신적으로 조숙해진 핫친이 서로 티격태격해가며 아버지이자 애인을 찾아가는 게 이 이야기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핫친의 양부모는 핫친을 노예처럼 대합니다. 사실 핫친을 맡아 데리고 있는 이유가 고아를 데려다 기를때 정부에서 주는 양육비를 받아챙기기 위해 데리고 있는 거.)



이렇게만 말하면 마치 작중에서 나오는 큰 부리새라는 이야기처럼 동화스럽지만
전혀 동화스럽지 않습니다.

경찰에게 쫒기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각종 범죄자에게 위협받고
매 에피소드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결말로 막을 내립니다.

이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는 미치코가 죽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22화 완결 중 20화 쯤부터 미치코에겐 더이상 희망도 뭣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히로시가 자신을 버린 것을 확신해가는 시점이었고, 부상당한데다가, 핫친과도 헤어지고, 부패한 경찰에게 몇번이나 포위당하면서 쫓기는 상황)





(스포)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남기며 끝납니다.



주인공 미치코의 기억속에서 옛 애인(히로시)의 모습은 남자답고 멋진 사람이지만,
사실 자신의 딸과 애인을 내팽겨버리고 떠난 인간이 제대로 되먹은 인간일리가 없죠.


히로시는 내내 미치코와 핫친에게서 도망치기만 하다가
마지막에 거의 미치코에게 붙잡히듯이 재회하게 되지만
역시나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놈입니다.

결국 미치코는 해외로 도망갈 루트를 찾아 핫친과 히로시만을 해외로 도피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감옥으로 돌아가려고 하죠.


결말부에서 미치코에겐 이제 히로시에 대한 미련은 더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친딸은 아니지만 친딸보다 더 아끼는 핫친을 위해 살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돌아가 남은 형량을 다 마치고 떳떳하게 핫친에게 돌아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거의 10년 후,
이제 애엄마가 되어 홀로 애를 키우며 요리사로 열심히 살아가는 핫친.
(애 아빠는 3개월 만에 이혼하고 떠남.)
(핫친의 아버지 히로시는 역시 개버릇 못준다고 새여자 만나 또 핫친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버린지 오래.)


그 핫친이 며칠간격으로 누가 보낸 건지 모를 소포더미들을 받습니다.


며칠간격으로 하나씩 하나씩 여러 상자가 도착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핫친이 지도를 펼쳐 각각의 짐들이 어디에서 온건지를 추적해보니


어딘가 먼 지방에서부터 자신의 사는 도시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며
각각의 짐들이 하나씩 발송된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핫친은 그게 미치코가 마침내 형량을 모두 마치고 출소해서 자기에게로 오면서
사모은 짐들을 하나씩 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걸 깨닫자마자 핫친은 자신의 갓난아기를 안고선 오밤중에 서둘러 미치코가 오는 방향을 향해 출발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망가져서, 트럭을 얻어타고, 트럭 주인에게 미치코와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고는 그 트럭을 빌려서...


결국 아침해가 떠오를 쯔음...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저 멀리 뻗어있는 도로 위에 멈춰 기다리던 핫친은

그리고 멀리 새벽 동과 함께 길 저끝에서
10년전에 그랬듯이 무법자같은 미치코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번엔 어디까지 갈까?"

어렸을 적 미치코가 자신을 안고서 온 세상을 누볐듯이
또다시 미치코와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

    


황무지위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배경으로 둘은 10년 만에 만난 모녀처럼 말없이 서로 껴앉은채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판보다 한국더빙판이 훨씬 더 좋다는 평가가 대세입니다.
미치코의 설정이 말보다 주먹이 먼저나가는 범죄자다보니 상당히 거친말과 욕설을 많이 하는데, 일본어로는 미치코의 욕쟁이 매력이 안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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