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자 : 갤러해드 경
시대 : 중세유럽
지역 : 영국
출전  : 아더 왕 전설
무기의 종류 : 검
(아더 왕 전설에 등장하는 엑스칼리버 다음으로 유명한 무기. 베이린 경을 파멸에 빠뜨리고, 갤러해드 경에게 성배를 찾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검이 바로 이것이다. 이 검을 둘러싸고 켈트 신화의 요정의 마력과 기독교가 전한 신의 기적이 혼합된 세계가 펼쳐진다.)

-또 다른 '바위에 박힌 검'
아더 왕 전설에서 '바위에 박힌 검'이라고 하면 왕의 검 엑스칼리버부터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전설에는 바위에 박힌 또 다른 검이 한 자루 등장한다. 성배를 발견한 기사 갤러해드 경의 검이다.
이 검은 그에게 기적을 주는 성검이지만, 보기 드문 용사 베이린 경의 목숨을 앗아간 저주받은 검이기도 했다.
갤러해드 경과 베이린 경의 이야기는 15세기에 씌어진, 아더 왕 전설의 집대성인 『아더 왕의 죽음』에 묘사되어 있다.
과연 검이 갖는 상반된 힘이란 어떤 것이고, 두 기사의 운명은 왜 크게 어긋 났을까?

-생김새
이 성스러운 검은 편수검이며 금으로 된 자루를 가지고 있다. 칼밑은 크고 자루를 위로 하면 마치 황금 십자가처럼 보인다. 자루와 칼집에 많은 보석이 박혀 있어, 태양빛을 받으면 그것들이 광채를 발하여 검 주위에 동그란 빛무리들이 어린다.
전설에 등장하는 이런 검의 모습은 기독교 십자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베이린 경의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검 자체는 켈트 요정의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검이 갤러해드 경의 차지가 되고 성배 전설에 등장하게 되자, 그 생김새는 기독교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전설을 집대성한 아더 왕 이야기는 여러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보면 바로 이 검을 둘러싸고 켈트 민간 전승과 기독교 설화, 즉 토착 신앙과 기독교의 융합이 우러졌다고 할 수도 있다.

-쌍검의 기사
쌍검의 기사란 '두 자루의 검을 가진 기사' 라는 뜻으로, 브리튼 기사 베이린 경의 별명이다.
아더가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원탁의 기사단이 생겨나지 않았을 무렵, 베이린 경은 아더의 부하 중에서는 달리 겨룰 자가 없을 만큼 뛰어난 기사였다. 그의 실력은 아더의 조카인 가웨인 경에 필적하며, 베이린 경에 맞설 수 있는 자는 그를 제외하고는 그의 동생 베이란 경밖에 없다고 할 정도였다.
어느 날 아더 왕의 궁정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멋진 칼집에 담긴 검 한 자루를 무겁다는 듯 꼭 껴안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중에 갤러해드 경의 차지가 되는 성스러운 검이었다.
그녀는 이 검은 강하고 양심에 거리낄 게 없는 바른사람, 성실한 진짜 용사가 아니면 칼집에서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더 왕은 우수한 기사들에게 한 번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이때 아무도 뽑지 못하던 검을 베이린 경이 멋지게 뽑아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 강력한 저주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검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을, 이 검을 놓칠 수는 없다면서 물리치고 만다. 그리고 그 직후에 요정의 나라에서 검을 찾으려 온 호수의 미녀를 베어 죽이고 만다.
궁정에 나타난 여성은 누구에게 복수할 일이 있어 요정의 나라에서 그 검을 훔쳐왔던 것이다. 그녀는 용사에게 검을 뽑아달라고 하여 그 검의 힘을 이용해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호수의 미녀는 그 사실을 아더 왕에게 전하고 검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베이린 경은 이미 검의 저주에 빠져서 그 검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되었고, 마침내 호수의 미녀를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베이린 경은 궁정에서 여성을 베어 죽인 죄로 아더 왕에게 추방을 당하고 만다. 그는 수치를 씻고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 방랑에 나선다. 이때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검과 궁정에서 얻은 검 두자루를 들고 다녔으므로 '쌍검의 기사'라 불리게 되었다.

-베이린 경의 비극
시련을 찾아 황야를 방황하는 베이린 경 앞에, 궁정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를 죽이려고 기사 란소르가 추적해왔다. 베이린 경은 란소르 경을 검으로 베어 죽였다. 그때 란소르 경을 사랑하는 한 여성이 찾아와 연인의 죽음을 비통해하다가 베이린 경의 검을 들고 자살하고 ㅁ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네 검이 하나의 혼을 공유하는 두 몸을, 두 마음을 가진 한 인간을 죽이고 마는구나" 라는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를 죽이고 비애에 빠져 있던 베이린 경은 깊은 숲 속에 조용히 자리잡은 고성을 찾아갔다. 이 성은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그는 뜻밖의 일로 여기에 보관되어 있던 성스러운 창으로 성주에게 '재앙의 일격'('성스러운 창'편 참조)을 가하고 만다.
고난의 여행을 계속하는 베이린 경. 그는 방랑하며 노력한 보람도 없이 비참하게 죽고 만다.
그는 어느 날 한 성을 방문하려다가 길을 막는 기사와 싸우게 되었다. 싸움은 막상막하가 되어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는데, 길을 막았던 상대는 다름아닌 그의 동생 베이란이었다. 베이린은 싸우기 전에 다른 사람의 방패를 빌렸는데, 동생은 그 방패 문장 때문에 형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형제가 서로 치명상을 입고 죽자 성 사람들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러자 그곳에 마법사 멀린이 나타나 베이린 경이 갖고 있던 검을 들고 사라져버렸다.

-갤러해드 경
갤러해드 경은 아더 왕의 기사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랜슬롯 경의 아들이다. 랜슬롯 경은 아더의 아네 기네비어 왕비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모험 도중에 만난 아름다운 아가씨 엘레인과 하룻밤을 동침하고서 그 아들을 얻었던 것이다.
갤러해드 경은 랜슬롯 경의 힘과 따뜻한 미덕을 두루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결점인 정욕을 극복한 이상적인 기사였다. 그의 어머니 엘레인 공주는 역국에 성배를 가지고 온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기독교도의 자손이었다.
숲 속에서 조용히 자란 갤러해드 경은 성인의 날에 아더 왕의 궁정 캐멀롯으로 찾아왔다. 마침 그날 궁정 옆을 흐르는 강에 커다란 대리석에 박힌 검 한 자루가 떠내려왔다. 대리석은 그 크기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물에 떠 있었고, 표면에는 '이 검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를 위한 것이다. 그 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 검을 만져서는 안 된다'고 새겨져 있었다.
아더 왕은 랜슬롯 경이 최고의 기사라고 생각했으므로 그에게 검을 뽑아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왕비와의 불륜을 부끄러워하던 그는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만다. 그래서 실력에서 랜슬롯 경에 필적하는 가웨인 경이 나서 보았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 검을 뽑을 자는 과연 누굴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날 캐멀롯으로 찾아온 갤러해드 경의 이름이 원탁에 떠올랐다. 원탁에 늘 빈자리로 남겨 두었던 의자, 즉 성배의 영웅이 아니면 그 의자에 앉을 수 없다고 하던 '죽음의 자리'에 갤러해드가 앉았던 것이다.
아더는 그가 바로 강물에 떠내려온 검을 뽑을 수 있는 기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갤러해드는 원탁이 죽음의 자리에 앉는 것을 허락한 기사인 데다가 그의 허리에는 칼집만 달려 있을 뿐 검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더 왕은 갤러해드 경을 데리고 강으로 나가 그에게 검을 뽑으라고 권했다. 갤러해드 경은 너무도 쉽게 그 검을 뽑아 제 칼집에 꽂아넣었다. 베이린 경을 저주했던 요정의 검은 이제 가까스로 진짜 주인을 찾아낸 것이다.

-성배의 탐색
갤러해드 경이 자기 검을 얻은 바로 그날, 캐멀롯에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기사들 앞에 어디선가 성배와 핏방울이 떨어지는 성창(聖槍)을 든 술례단이 나타나더니 그들의 눈앞을 지나 홀연히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저마다 이는 바로 신이 내리는 시련이라고 소리쳤다. 성배를 찾아내라는 신의 계시라는 것이었다. 원탁의 기사들은 각자 성배를 찾아 모험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다시는 캐멀롯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성배를 찾을 수 있었던 기사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랜슬롯 경과 가웨인 경은 성배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감히 손을 대지는 못했다. 갤러해드 경과 퍼시벌 경, 그리고 보즈 경만이 성배를 만질 수 있었다.
갤러해드 경은 퍼시벌 경, 보즈 경과 함께 성스러운 검과 모험 도중에 얻은 성스러운 방패('갤러해드의 방패' 참조)를 들고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 성으로 찾아갔다.
그들이 성 안의 광장에서 검소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성배와 성창을 든 순례자 무리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려고 했다. 그때 갤러해드 경은 성스러운 검을 뽑아 자루를 위로 하여 십자가처럼 쳐들고 "신의 이름으로 고하노니, 잠시 기다리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순례자 무리는 발길을 멈추고 갤러해드 경에게 성배를 내밀었다. 그가 성배에 채워진 술을 입에 대니 그의 몸이 금빛을 뿜어냈다.
갤러해드 경은 퍼시발 경과 보즈 경에게 성배에 든 술을 뿌려 축복을 내려 주었다. 나아가 베이린 경에게 '재앙의 일격'을 당한 성주(城主)의 상처를 치유해주었다.
그리고 갤러해드 경은 성배와 성창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는 육신을 지상에 버리고 성스러운 존재가 되어 승화한 것이다. 이때 그가 가지고 있던 성스러운 검과 성스러운 방패도 영원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사실 이 검은 나중에 갤러해드의 아버지 랜슬롯 경의 차지가 되고, 랜슬롯은 훗날 그 검으로 친구 가웨인 경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겨진 퍼시벌 경은 성배가 있던 성의 주인이 되어 성배 기사단을 창설한다. 보즈 경은 아더 왕이 기다리는 캐멀롯으로 돌아가 전말을 보고했다.
성배를 찾다가 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잃으니 원탁의 기사단도 그 힘이 반감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뒤 랜슬롯 경과 왕비 기네비어의 불륜이 드러나 기사단은 분열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틈타 아더 왕의 아들 모드레드 왕자가 반란을 일으켜 아더 왕국은 멸망하고 만다.('엑스칼리버'편 참조)

-기독교 세계의 출현
유럽에서 성배 전설이 등장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 구석구석까지 펴진 12세기경의 일이다. 그러나 그 즈음 유행되던 전설의 핵심은 그 이전의 켈트 민간 전승과 닿아 있었다. 즉, 그 시대의 기사 이야기는 켈트적인 민화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마법사 멀린은 베이린 경이 죽자 성스러운 검을 가지고 떠났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갤러해드 경을 위해 이 검을 대리석에 박아둔 것은 멀린이었다고 되어 있다. 결국 멀린은 켈트 요정의 나라에서 만든 검을 기독교의 이상을 재현한 갤러해드 경에게 준 셈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멀린은 전설의 변천을 통하여 동시대 사람들을 민간 신앙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유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작 멀린은 기사들의 성배 탐색 이후 모습을 감추고 만다. 이제 사람들은 마법사가 아니라 신을 따르게 된 것이다.


-갤러해드 경의 방패
성배 탐색에 성공한 갤러해드 경은 성스러운 검과 함께 성스러운 방패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 방패를 얻었을까?
그가 처음 캐멀롯에 나타났을 때 아더는 방패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갤러해드 경은 자기가 가져야 할 방패는 어딘가에 따로 준비되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면서 그 호의를 거절한다.
갤러해드 경을 위한 방패는 어느 수도원에 있었다. 주위 마을에는 "이 수도원에 마력이 깃들인 방패가 있는데, 그것을 가지는 자는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 방패를 가지는 자가 성배를 찾는다"는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과연 그 방패를 가졌다가 심하게 부상당한 기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 기사가 수도원에서 가져온 방패를 들고 있는데, 갑자기 새하얀 갑옷을 입은 백기사가 나타나 공격을 하더라는 것이다. 두 기사는 창을 겨루었지만 백기사의 창은 다른 기사가 미처 방패로 가리지 못한 부분을 꿰뚫어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백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 방패의 임자는 갤러해드 경이다. 네가 건드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기사의 종자들이 갤러해드 경을 찾아와 그 방패를 주었다.
갤러해드 경의 방패는 새하얗게 빛날 정도로 잘 닦인 금속판으로, 그 표면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이는 4백년 전에 사라스라는 마을에서 만들어져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성배와 함께 영국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표면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요셉이 죽을 때 흘린 피였다.
방패 자체에는 갤러해드 경 이외의 사람에게 재앙을 준다는 것말고는 특별한 힘이 없다. 이는 성배 탐색에 성공한 갤러해드 경이 성별(聖別)된 존재임을 상징하는 증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