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창작의 자유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적 유희 욕구중 하나다.
게임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결정체이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분량과 복잡도는 다른 어느 산업분야보다 높으며, 수많은 게임 개발
프로젝트의 실패와 도중하차가 그 어려움을 반증한다.
2.
'내가 만든 게임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는 욕구는 게임제작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다.
이러한 활동에 있어서 상업적 활동과 결부되지 않은 영역조차 사전심의를 정부에서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정부의 월권이다. 현재 한국의 게임개발자들 중 상당수는 90년대초중반부터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아마추어 게임제작활동을 하면서 척박한 기반에서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제작기술을 흡수하였고, 그 기반이 인터넷 붐과 시너지를 일으켜 현재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만약 하이텔 게제동에 자기가 만든 게임을 올릴때 정부에 돈을 내고 기다려서
심의를 받아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3.
더군다나 게임과 게임이 아닌 것의 경계가 강과 바다의 경계처럼 확실치 않은데, 게임적 요소가 조금이라
도 들어간 것을 공개 배포할 때마다 정부가 검열을 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식으로 검열을 하다간 자기가 만든 소프트웨어, 음악, 영상, 글에 대해서도 검열의 마수가 뻗쳐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청소년들이 빨간마후라 같은 영상을 만들 가능성도 있으니
아예 대한민국에서는 동영상 ucc업로드에는 반드시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수수료를 내고
유투브의 업로드 버턴을 누르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4.
만약 이 심의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내 딸과 아들을 이런 전체주의 검열사회에 그냥 놔둘 수 없으니
기꺼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이다.
자기의 창작욕구의 산물을 인터넷이라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통해 공유하는 활동을 일일이 심의 받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창의적 활동, 창의적 발상이란 것은 심각하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게임을 소설에 비유해보자.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인 학생이 있다면 자신이 쓴 습작 소설을 다른 아마추어
소설가가 모여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서 다른 이들의 평가를 받고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출판사의 제안
을 받아 자신의 소설을 출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제작도 마찬가지로 게임제작자가 목표인
학생에게 가장 빠른 방법은 대중화된 게임제작 도구 (RPG쯔꾸르나 미션맵에디터등)를 이용해 자신의
습작게임을 만들고 나서, 다른 아마추어제작자들이 창작 게임을 공유하는 사이트를 방문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해 피드백을 받고 실력을 향상하거나 다른 팀에 합류하거나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수도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기획자의 경우 아마추어 게임제작, 특히 대중 게임제작도구를 이용한 포트폴리오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며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게임물 등급위원회의 시정요구조치로
인해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자신이 만든 게임을 배포하고 연구하던 사이트들이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 http://niotsoft.com/zbxe/191500 )
5.
입법활동에 애쓰시는 국회의원님들께 호소합니다. 게임산업은 대한민국이 보유한 문화경쟁력 요소중 하나
입니다. 게임제작자들은 영화제작자처럼 쿼터제를 호소하지도 않고, 많은 거창한 지원을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불법복제라는 시련에 맞서 온라인게임이라는 대안을 찾아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여기까지
성장해왔습니다.
게임산업은 돈을 많이 버는 대형화된 제작자들에 의해서만 지탱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산업에나 젊은
피가 계속 수혈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게임산업이 특별한 이유중 하나는 많은 젊은이들이 정말
게임 그 자체가 좋아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호기심과 자기가 만든 게임을
즐기는 유저와 동료들로부터의 명예가 개발자들에게는 가장 큰 보상입니다. 비상업적 게임에 대한 심의는
이러한 열정과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합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창작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도 모자를 판에 사전심의는 터무니 없는 장애물입니다. 아마추어 제작자들의 토양이 척박해
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개발자들을 찾아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도 모릅니다. 돈을 잃는 것보다도, 땅을 잃는 것보다도, 문화와 창의적 정신을 잃는 것은 더 큰 손실입니다.
제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사행성게임 단속을 위해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만들어진 관련 법과 규정
이 하루속히 전면재검토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주)아이엠씨게임즈 대표 김학규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