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공포가 사라진 헐리우드는 이전까진 마이너한 괴물에 불과했던 좀비를 선택했고,

지금은 그야말로 좀비 세상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드라마, 게임, 영화, 소설, 만화 모든 곳에서 좀비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흔히 생각하는 좀비도 사실은 헐리우드의 변형품(?)이었습니다.

주술/환각에 의해 정신을 잃은 인간인 좀비와,

죽은 상태이면서 걸어다니고 살아있는 것을 뜯어먹는 구울과,

물리거나 할큄을 당하면 감염이 되는 늑대인간의 설정이 대충 섞여져서 헐리우드식 좀비가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워낙 많은 종류의 좀비들이 있지만, (사랑을 하는 좀비라든지, 운동능력 좋은 좀비라든지..)

미국의 영화 채널중 하나인 AMC(American Movie Classics의 약자라는군요)가 제작/방영하는 '워킹데드'는,

초기의 헐리우드 좀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만화가 원작이라던데..)







음. 참고로 이 밑으로 쓰는 글은 크고작은 스포일링을 포함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시즌3의 중후반부를 보고 있는데,

점점 드는 생각은, 정글에 떨어진 사람들의 생존기를 보는 듯 합니다.


정글에서 맹수/독충과 척박한 환경에 해당하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는 '좀비'로 축약되는거죠..


끝없이 펼쳐진 정글에 던져진 사람들이 생존해가는 모습을 드라마로 만든다고 합시다. (영화가 아닌)

사람들은 처음엔 모여서 주변 환경의 혹독함에 고생을 합니다.

근데 시즌2로 넘어가면, 주변 환경의 혹독함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게됩니다.

그러면 드라마 작가들은 점점 내부의 갈등이나 또다른 무리와의 조우를 스토리 라인에 넣게됩니다.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

처음엔 좀비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적대적인 좀비로 변했을때의 심리변화를 묘사했지만,

에피소드가 쌓일수록,

처음엔 멀리서 좀비만 나타나도 정신줄을 놓던 등장인물들이,

이제는 들고있던 망치나 칼로 능수능란하게 좀비들을 물리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마치, 정글에서 이동할 때 정글칼로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달까?


시즌이 지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해진 등장인물들의 생존기만 보여줄수는 없으니,

이젠 또다른 문제들을 던져줍니다. (중간중간 소규모 무리들과 만나긴합니다만, 본격적인 갈등은 없었죠)

시즌3에서는 좀비로부터의 생존보다는 인간대 인간의 싸움이 더 집중적으로 묘사됩니다.

좀비 드라마에서 좀비가 병풍화되는 순간이죠..


워킹데드가 지향하는 점은, 끝없는 사투끝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시즌1에서 '구원'으로 생각했던 CDC도 결국엔 희망이 아니었고,

위협이 되는 상황이나 사람들을 벗어나도 결국엔 또다른 갈등이 있을 뿐입니다.

처음엔 생존자들을 보면 반가웠지만, 이젠 좀비보다 생존자들이 더 무섭습니다. (한길 좀비 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통치자'가 있는 '우드버리'마을만 해도, 처음엔 살기좋은 쉼터였는줄 알았지만,

그 속은 약탈과 배반,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워킹데드가 매력적인 점은, 아무래도 이러한 희망없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인 '릭'이 어떻게 변하는가 지켜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수도 있겠네요.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옳은 것인가?'라는.

뭐, 사실 이러한 이기주의는 현실에서는 눈에 드러나지 않게 야금야금 표출되고 있긴합니다만,

드라마에서는 시청자들을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으로 데려와서 등장인물들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시킨뒤, 이러한 힘든 결정을 하게 만드는거죠..


아무튼 요약하자면,

워킹데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물'의 탈을 쓴 액션 스릴러입니다.


그나저나 같은 방송사에서 제작한 '브레이킹 배드'가 드디어 9월 부터 시즌5 후반부를 시작하는군요. (브레이킹 배드는 범죄물의 탈을 쓴 막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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