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사실상 게임 개발 및 프로그래밍 커뮤니티로 기능해왔던 GPG 스터디 포럼이 원래의 취지였던 GPG 독자들의 포럼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책의 번역자이자 포럼의 관리자인 류광님은 “애초에 특정 번역자의 특정 번역서를 위해 만들어진 GpgStudy 포럼이 국내의 대표적인 게임 개발자 공동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그리고 그 동안 GPG 포럼이 맡아왔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을 모색하고자 의견과 토론을 청했습니다.

  KGDA의 사단법인화 이후로 사라진 커뮤니티에 대한 열망은 분산되고, GPG 포럼 같은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대체로 프로그래머는 GPG 스터디 포럼, 그래픽 디자이너는 게그 카페, 게임 디자이너는 게기모 카페나 여기 레임프루프에 모여서 소통하고 있죠. 물론 그동안 블로그가 널리 보급되면서 개인화된 공간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게임 커뮤니티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 분야인 게임 디자인 커뮤니티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게기모와 레임프루프 모두 7천에서 8천명 가량의 회원수와 게시물마다 수백건의 조회수를 나타내고 있지만, “거기서 진정 어떠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도구의 문제기도 합니다. 게기모가 이용하는 네이버 카페 서비스나, 레임프루프의 제로보드 모두 한국적인 ‘게시판’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올린 게시물이 순차적으로 쌓이고, 독자들은 글 밑에 댓글을 씁니다. 댓글로 좋은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게시물은 목록 뒤로 밀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물론이고 토론 당사자들의 열기도 쉬이 식어버립니다. 게다가 댓글을 통한 토론에서 어떤 성과가 나온다 해도 원래 게시물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하기 때문에, 혹여 나중에 검색을 통해 그 게시물을 찾았다 해도 게시물만 읽고 토론의 성과를 놓치기 쉽습니다. 토론의 성과는 토론 당사자나 그 당시 게시물을 봤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만 남고, 의미 있는 형태로 보존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이고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당장 우리 게임계가 많이 개발하고 있는 MMORPG나 FPS, 근래에 부상한 웹게임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는 잘 돌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게임 디자인의 근본을 논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찾기가 힘듭니다.

  물론 이 모든 우려를 일소시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긴 ‘그냥’ 커뮤니티”라는 것. 애초에 게기모 카페나 레임프루프가 그러한 논의를 하기 위한 목적의 사이트가 아니었다면, 앞선 내 우려는 모두 “그래서 뭐?”가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게임 디자인의 발전을 논의하기 위한 커뮤니티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되죠. 물론 소규모 스터디 모임이 있고, KGC가 있고, 게임산업종합정보시스템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터디 모임의 결과물은 폐쇄적이고, KGC는 논의의 장이라기 보다는 1년에 한 번 논의의 성과를 발표하는 행사이고, 게임산업종합정보시스템은 논의의 장이 아닙니다. 특히 세 가지 모두 다 공통적으로 ‘장기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커뮤니티, 즉 공동체라는 말은 같은 목적을 공유한 사회적 집단을 의미합니다. 게임 디자이너가 가진 공통된 목적은 무엇일까요? 게임에 재미가 중요하다는 재미주의자든, 예술로서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예술주의자든, 게임으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상업주의자든, 모두 공통된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게임을 잘 만드는 것’입니다. 게임 디자이너 공동체는 친목을 다지면서도, 좋은 게임을 잘 만들기 위한 논의가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추상적으로나마 진정 게임 공동체를 위할 수 있는 사이트를 구상해 봤습니다. 토론이 결실을 맺어 역사로 보존될 수 있는 곳. 블로그 같은 개인공간을 의미 있는 가치로 연결해 주는 곳. 단기적인 노하우나 실용적인 지침이 아니라, 장기적인 발전을 구상할 수 있는 곳. 아직 웹과 게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미천하여 근시일 내에 그 구상이 실현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 뜻 있고 실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 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플레이 문서고”는 그 기틀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한국 게임계에 잘 논의되지 않고 전달되지 않는 철학과 사상, 교육 등 장기적인 사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한국 게임 디자이너들의 철학적 사고를 촉진하길 바라는 마음이고, 블로그가 잘 되어 앞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튼, 모든 우려와 불안을 씻고, GPG 스터디 포럼의 이전이 좋은 방향으로 잘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것이 본보기가 되어 게임 디자이너 커뮤니티의 구성에 대한 논의도 촉발되었으면 합니다. 1-2년 내다보고 게임 디자인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덧붙여, 명문은 아니지만 이 글이 담고 있는 문제가 널리 회자되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글도 결국 목록 뒤로 밀릴 테니까. 이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개인공간이든 어디에든 많이 퍼가서 공유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