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튜러스가 영향받은 점들 >>>>

    악튜러스는 제가 만든 게임중 처음으로 제대로 어떤 기획의도라는 것을 가지고 만든 게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전에도 리크니스, 라스 더 원더러, 개미맨2, 스팅등의 게임들을 만들었지만 깊은 내용을 지닌 게임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 모든 것을 한 것은 아니고 많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완성이 가능했습니다. 시나리오 작성은 많은 부분을 그라비티의 기획실장 김세용 실장과 함께 상호 문답식으로 보충해나갔고, 실제 이벤트들이 유니트화되어나가는 과정은 거의 김세용실장과 그 휘하의 기획팀들이 공동으로 이루어낸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주로 담당한 것은 그러한 진행과정에 있어서의 중요한 가닥을 골라내고 팀원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기획의도에 대해 주지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완전한 저의 창작일 수 없으며 제가 지금까지 재미있게 즐겼던, 혹은 감명깊게 보았던,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저에게 영향을 준 요소들의 융합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악튜러스의 제작에 있어서 깊게 영향을 준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서 설명해볼까 합니다

    1. 그란디아
    그 자체로서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 RPG이고 그란디아가 발매되기 전에 외지의 소개란을 통해 소개된 설정그림과 스크린 샷만으로도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게임이 앞으로의 중요한 RPG 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불행히도 그 생각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지만 (제작의 어려움과 온라인 RPG 라는 보다 쉬우면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란디아에서 영향받은 2 가지라면 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게임세계의 창조라는 한가지의 목표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조합된 전투시스템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악튜러스가 발매되면서 그란디아의 모방작이라는 논란도 PC 통신상에서 많이 오르내리고 했습니다만 게임비평같은 잡지에서 굳이 그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울티마 6 과 더불어 가장 저에게 많은 느낌을 불어넣어주었던 게임입니다.

    2. 에반게리온과 무라카미 하루키

    그란디아가 게임의 구성이나 표현등의 외적인 요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게임의 내적인 요소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역시 에반게리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반게리온 TV 판을 끝까지 보고나서 허탈감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만.. (거의 몇분동안 말이 없이 계속 엘리베이터에서 침묵하고 있는 씬이라던가를 보면서 정말 돈 아끼는 방법도 여러 가지군..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흡입력의 존재에 대해서 새삼 감탄하게 되었고 최대한 에반게리온의 관념적 요소를 도입해야겠다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슷한 영향을 준 것이라면 유명작가 하루키씨의 소설들중 양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던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상의 끝 같은 역시 관념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소설들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3. 개조 스트리트파이터

    우리나라의 기묘한 복제문화의 부산물인 개조스파! 모르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대만에서 만든 것이라고도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볼때 게임역사상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던 전무후무한 창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조스파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점은 부조리함과 게임성의 만남이라는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나갔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공중에서 멈춰서 땅에 떨어지지도 않은채 장풍을 쏜다던가 하는 게임성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부조리함의 범주에 속하지만 게임적으로는 나름대로의 밸런스가 갖추어진 구성이라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처음 나온 개조스파는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아 일부 캐릭터만 선택하게 되었지만 그 후에 나온 개조스파들은 점진적인 밸런스 조정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성과 게임성의 만남’ 이라는 한 영역을 당당히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미술계에서 피카소가 개척한 신세계만큼이나 개조스파가 그 이후 게임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대하고 실제 그 후에 나온 격투게임들중 개조스파를 연상하게 하는 것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당장 그 후에 나온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츠바메가에시부터 보아도 공중장풍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그 이후부터 격투게임이 극단적인 폭열난투풍으로 급속히 발전해간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개조스파의 게임성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던 것은 격투게임의 전술게임화라는 점입니다. 켄으로 혼다를 상대할 때 먼저 느린장풍을 몇 개 쏴 놓고 점프한 상태에서 선풍각으로 적의 뒤로 넘어가게 되면 적의 뒤에서는 장풍이 느릿느릿날아오고 나는 적의 앞에서 다시 장풍이나 하단 강발등의 공격으로 적을 조여갈 수가 있습니다. 이때 뒤에서 날아오는 장풍은 마치 하나의 내 아군유니트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1:1 격투에서 다대다 전술전투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혁신적인 체험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튜러스에서도 착안한 점은 기존의 대부분의 RPG 가 ‘화이어볼’ 이라는 마법을 사용하면 시간이 멈춘채로 내가 적에게 마법으로 공격하는 표현이 된 다음에 넘어가는 식이었는데, 마치 개조스파의 느린장풍처럼 시즈가 느릿느릿 진행하는 화이어볼을 띄워놓고 마리아가 적을 공격해서 튕겨나간 적이 화이어볼에 맞으면 2 hit combo 가 되는 식의 구성을 생각한 것이지요. 비록 실제로 구현하는 단계에서 여러 가지 애초의 의도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만, 게임이 발매된 후 유저들이 파이어필라 5 개를 이용해서 적들을 불구덩이에 가둬놓고 마치 가스렌지 위에다 오징어를 구워먹는 듯이 1000 Hit Combo를 구현한 스크린샷을 자랑스럽게 인터넷상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제작진들이 매우 흐뭇해하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1000 hit combo 에 도전해보세요. 어떤 사람은 바제랄드 소환술까지 조합해서 2000 hit combo 까지 구현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4. 데스/블랙메탈

    악튜러스라는 제목은 사실 동명의 노르웨이 출신의 블랙메탈 프로젝트 밴드 Arcturus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는 물론 그들의 열렬한 팬중 하나이고 그들의 2 집 앨범인 ‘La masquerade infernale" 는 국내에 라이센스로 발매되기도 하였습니다. 상당히 전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저처럼 듣고 좋아하실 분들이 몇분이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데스/블랙메탈음악을 접해들으면서 니힐리즘적인 사고의 기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악튜러스의 그림 풍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참고로 제가 요즘 제일 많이 듣는 그룹은 프랑스의 심포닉 5 인조 블랙메탈그룹 Anorexia nervosa 의 자칭 Nihilistic Orchestra, Drudenhaus 라는 앨범입니다.

악튜러스의 후반 연출은 Theatre of tragedy 의 A Hamlet for a slothful vassal 이라는 곡에서 전체적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다음 글은 마지막 X튜러스 비평4 입니다.~(ㅇ.ㅇ)/(과연 보시는 분이 있을지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