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들이 텍스트를 읽기 싫어하는게 아니라, 게임 메뉴얼이 개판인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게임 메뉴얼 = 읽을 가치가 없는 것]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형용사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XCOM의 [아크 방사기]라는 아이템이 있는데, 이것을 소재로 메뉴얼을 작성시키면
유형 A)
이 아이템을 장비한 대원은 [기절] 커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2타일 이내 적 외계인에게 사용이 가능 (특정 타입 제외)
아이템을 장비한 대원이 적 외계인에 커서를 가져다 대면 노획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측면에서 시도하거나, 대상의 체력이 낮을 수록 성공율이 증가합니다.
기절한 외계인은 미션 종료 후 자동으로 포획됩니다.
포획된 외계인을 연구하면 좀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유형 B)
연구팀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외계인을 살아있는 상태로 포획하기를 원합니다.
외계인들을 심문한다면 그들의 목적 등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를 통해, 외계인들의 신체 구조가 인류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강력한 전기 충격을 준다면 그들을 기절시켜 살아있는 상태로 포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충 위와 같은 유형이 나옵니다.
사용자가 게임하기 전에 꼭 메뉴얼을 보게 하고 싶으면 A처럼 단순 명료한 팩트만 정리해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꼭 문서화를 시켜도 설정 자료집 같은 부록에 적었어야 할 B같은 내용들을
함께 적어두는게 문제인거죠. 색인도 어렵고 얻는 정보는 쥐꼬리만큼도 안 됩니다.
차라리 게임 옵션 열어서 키 셋팅만 확인하고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게임을 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대부분의 게이머가 알아챘다고 하는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무슨 무기를 양손으로 들고 강력하게 휘두른다느니 이런 묘사는 전혀 유용한 정보가 아니거든요.
메뉴얼이 스펨메일과 비슷하다는데는 같은 의견입니다만. 예는 약간 부적절한것이 아닌가.
제가 볼때, 이고랩터가 말하는 오프닝의 문제는 A처럼 쓰지 말라는 거라고 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뉴얼을 쓰지 말라는거죠.
[아크 방사기]를 예로 들자면.
A에서 말하는 내용은 모두 게임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할수 있습니다.
1번째줄은 게임에서 아이템을 들고 있는 대원에게 자동으로 나오며
2번째 줄 역시 마찬가지, 3번째 줄 역시 실제로 사용할때 팝업 메시지로 뜨죠.
성공률의 경우도 게임에서 %표시로 나오지만, 그 전에 미리 연구소장이 따로 설명해 줍니다.
남은 2줄은 정확히 말하면 아크 방사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후 흐름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옵션이죠.
즉 아크 방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필요한 내용은 '전기 충격을 줘서 기절시켜 포획' 인데.
이 내용이라면 오히려 유형 B에서 마지막 한줄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1,2,3 줄은 옵션이죠)
얼핏보면 불친절해 보이지만, 이미 게임플레이에서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고 있으므로 중복해서 같은말 또 하지 말라는거죠.
또, 굳이 둘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일일이 텍스트 덩어리로 시험공부를 시켜주는게 아니라
직접 플레이를 하면서 유저 스스로 알아낼수 있게끔 유도하라는게 아닌가.
이러한 방식으로 필요한 부분만을 요약한것이 최근에 즐겨본 '다크 소울'이군요.
(록맨 같은 오프닝의 튜토리얼과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
AVGN 맞아요.
메뉴얼이나 튜토리얼이나 '어차피 게임 해보면 다 알게될거 뭐하러 해보냐' 라는게 대부분의 게이머의 인식인것 같아요.
그런면에서 AVGN에서 찬양했던 록맨의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조작법이라던가
위에서도 예를 드셨던 앵그리버드의 진행이라던가 와우의 '만랩 찍는 과정이 튜토리얼' 이라는 내용이 가장 적절한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 대중적인 게임은 '대중'을 이야기하지 않죠. 그냥 게임을 만들고 나면 잘 팔릴수도 있고 안팔릴수도 있는것.
그렇다고 해서 요즘의 게임과 같이 '대중' 이라는 불분명한 안개를 목표로 나아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과거 게임에서 요즘과 같은 맥락의 '대중'을 찾아다니는 게임이 없는건 아닙니다만.)
이고랩터의 해당 영상에서 가면 갈수록 '이제 알겠군' 지수가 높아지는것은 위와 같은 문제에서 나오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호기심이라는것을 망각하고, 있는 인간 없는 인간을 몽땅 하나의 게임이 쏟아넣으려고 하니 잘 될수가 없겠죠.
1) 요즘 게임은 록맨같은 자연스러운 튜토리얼이 힘들다는 건 동의하기가 좀 힘듭니다.
일례로, 휴대폰 게임의 대명사인 로비오의 게임들을 보면 '처음엔 그냥 새 쏘는 것'만 있고, 스테이지가 진행될 수록 새의 종류나 이용할 수 있는 기믹이 늘어나는 식이죠. 록맨만큼 세련되진 않습니다만. WOW의 경우는 만렙 찍고 사용하는 단축키수를 따지면 직업에 따라서 40개가 넘고 마우스까지 사용합니다만, 레벨업 과정 자체가 캐릭터 튜토리얼이고요. 그냥 튜토리얼 페이지나 텍스트 적는 것보다 기획하는 노고가 월등히 들어가서 그렇지, 환경의 변화로 예전에는 게임이 단순해서 가능하지만 요새는 어렵다...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나 싶어요. 개념 문제에 가깝지 않을까요? 사실 요즘 게임들 중에서도 유저 움직임 막아놓고 '이 입력은 무슨 효과가 있다'라고 주절주절 텍스트로 떠드는 대신에 그냥 게임하다보면 새 무기 얻고 새 스킬 얻고 새로 얻은 스킬을 써먹을 수 있는 패턴의 적이 새롭게 등장하고 하면서 한판에 하나씩 언락되는 방식으로 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2) 옛날 게이머가 매뉴얼을 잘 읽었나요? 요즘 게이머들이 옛날 게이머들보다 참을성이 부족한 건 동의합니다.
3) 오히려 이렇게 휘발적으로 컨텐츠가 소모되는 시대일 수록 오프닝 스테이지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봅니다.
저같은 경우는, 물론 지금이야 돈을 버니까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돈 주고 산 게임마저도 초반부가 지루하거나 짜증이 나면 박아놓고 플레이 안해요.
터치 영역이 작아서 조작이 어렵다던가, 인풋에 대한 반응이 제대로 안 이뤄진다던가, 텍스트량이 많은데 출력속도 조절이 안된다던가... 뭐 이런 UI 관련된 자잘한 게 몇개 겹치다보면 그냥 안하게 됩니다.
4) 제가 봤을 때는 그냥 인력 문제 같습니다. 그렇잖아도 야근에 노동력 빨아먹기로 유명한 IT 쪽인데, 저렇게 디테일하게 UX 적용할 여력이 안되지 않나 싶어요. 저런 거 리서치하고 기획하고 하는 걸 제대로 하려면 시간 엄청 깨질테니 사실 그냥 앉혀두고 텍스트로 좍 펼쳐서 보여주는 게 편하거든요.
5) 사실 인력 문제보단 기획자(혹은 그 윗사람)의 개념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