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책 중에는 인문학 서적이 꽤 있는데 이 책이 저한테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기대한 것과 좀 다른 논지로 가는데, 마지막 두 챕터에서는 농경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에 일침을 놓고,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저로선 정말 예상할 수 없었던 결말 -_-;).

사람이 애완동물과 사육 동물에 대해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인류학적인 근거를 많이 들어놓고 있고, 사람이 동물을 왜 키우는가,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무엇인가 등등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도 포함.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상당히 고도의 인문학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너무너무 쉽다는 점일겁니다. 번역도 가끔 이상한 부분이 있지만 매끄럽게 된 편이고요. 개인적으로 너무 맘에 든 책이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홈페이지에 올린 발췌문 중 하나입니다. 제일 마지막 챕터 초반부예요. 여유가 있거나 없거나 이 책은 꼭 읽어보셨으면 해요. 최근 개고기에 대한 리플 등을 보면서 느낀 것은 레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이 책이 그 생각의 결론을 내리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분야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더 읽어볼 책에 대한 도움말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301 분야의 책입니다.  (도서관 기호)

도서관에 반납하러 와서 홈페이지에 감상문과 발췌문 올리고 가는 길. 전 이만. ^^


(전략)
창세기에서 채집자에서 농사꾼이 되도록 하여 생활수준을 낮춘 것을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내리는 벌로 표현된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것은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 대부분이 오느날 제기하는 견해와 대략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세기 동안 서구인들은 농업과 동물 사육의 발달이 경제적인 번영을 낳은 엄청난 도약이었따고 믿어왔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이 충분한 먹이를 얻기 위해 쉴 새 없이 허덕이면서 짧고도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존재였으며, 이름 모를 구석기시대의 어느 천재가 농업을 발명함으로써 우리 조상들을 야만의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사냥과 채집으로 연명하는 힘들고 불편한 생활에서 벗어나 좀더 나은 삶을 향한 길을 개척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신석기 형명으로, 이 혁명은 사람들이 영구적인 마을에 정착하여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현대 문명의 모든 혜택의 근거가 되는 예술.문학.과학 같이 유쾌하면서도 비생산적인 온갖 종류의 활동에 종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화의 발전을 이렇게 속 편하고 단선적인 것으로 바라본 진보주의적 관점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구석기시대 말기의 생활은 종래 생각했떤 것보다 훨씬 더 쾌적했떤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슈의 코끼리, 들소, 야생동물, 말 등 초식성 포유동물이 빙하기 유럽과 북미 지역의 비옥한 대초원과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석기시대 사냥꾼들에게 풍부한 식량과 옷감을 비롯한 여러 천연자원을 제공했다. 그들의 정착지 주변에 많은 양의 동물 뼈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멋지게 다듬은 돌, 뼈, 나무 도구와 무기를 사용하여 거대한 짐승도 능숙하게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냥꾼-채집자와 그 뒤를 이은 농경민의 유물을 비교해 보면 사냥꾼-채집자는 기생충이나 전염성 질병으로 고생하는 일이 별로 없이 비교적 건강한 삶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냥꾼-채집자는 농경민보다 수명이 길었던 것이다. 세계 각지의 옛사람들에 대한 고고학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성인의 평균 연령은 사냥꾼-채집자들이 농경민보다 더 높았던 것 같다. 아동과 유아 사망률 역시 농경 이전 사회가 더 낮았다. 또한 사냥꾼-채집자가 영양 상태도 더 좋았떤 것으로 보인다. 약 3만 년 전 빙하기의 한복판에서 살았던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7센티미터, 성인 여성은 165센티미터였다. 그로부터 2만 년 후 농업이 시작되었을 때 남성의 신장은 빙하기 여성의 키 정도로 줄어들었고, 여성은 153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따. 치아 상태도 빙하기 사람들이 훨씬 좋았따. 3만 년 전에는 사망할 때까지 빠진 치아 수가 2.2개였다. 기원전 6500년에는 3.5개로 늘어났고, 로마시대에는 6.6개나 되었다. 기아와 전염병에 시달리기 시작한 증거로 보이는 치아 법랑질의 미세한 손상과 기형적인 성장 역시 사냥꾼-채집자에 비해 초기 농경민에게서 훨씬 많이 나타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