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연한 마음으로...
출처 :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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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로 있는 동안 선배가 보여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서의 부검 참관기를 읽어본 적
이 있다.


그 글에는 부검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한 진행과정과 함께 말미에 '기자라면 겪어봐야 할 것 같다'는 말
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정이 단지 호기심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막
연함 때문이었으리라.

부검 현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인턴으로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뜻모를 불안함이 다였으니 말이다.

이제, 참관을 마친 지금. 매우 복잡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 "기대반,두려움반 말수는 적어지고.." **


서울시 양천구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겨울 내내 거의 오지 않던
눈이 잔뜩 내려 조금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국과수 현관으로 올라가는 길.. 강력계 형사를 오랫동안 했다는 홍보담당관이 우
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노컷뉴스 인턴기자뿐만 아니라 KBS의 신입 아나운서들도 참관을 하게 되어서
국과수 현관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울이라 아마 부패하거나 그러진 않았겠지?” “나 시신 처음 봐..걱정된다..” “..마스크 써야겠다 슬슬.”

옆 건물로 가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철컹!..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라는 아이보리색 페인트가 그때처럼 차가워 보인 적은 없었을 것 같다.

들어가서 복도를 돌자마자 형용하기 힘든 시큼한 냄새가 난다. 누구는 쉰 빵 냄새 같을 거라 하고, 누구
는 포르말린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게 어땠다고 설명하기 힘들다.

코가 살짝 시큰거렸다. 준비해온 마스크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꺼내기도 뭣해서 주변을 흘깃 봤더니 모
두가 표정이 확 변해서 굳은 듯 했다.

부검의 대상이 되는 시신은 ‘변사자’로 처리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의사가 사망진단 시 1차 사망
원인으로 명확하게 ‘***이 원인이다’ 라고 써두지 않거나, 사망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시신, 또는 사법, 행
정권에 의해 부검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시신이라면 의무적으로 국과수로 온다고 한다.



** "좁은 통로에 가득한 시신들...부검의들의 침묵" **


국과수에 부검을 위해 들어온 시신을, 관은 아니더라도 단체 영안실(?)처럼 모셔두지 않을까 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좁은 통행로 양편에 죽 놓인 철제 들것, 흰 천을 덮어둔 그것들이 모두 시신이라는 생각에
그 사이를 지나갈 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서늘한 복도를 몇 번 돌았을까.. 마지막 문을 열자 숨을 멎게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운을 입고 수
술 장갑 위에 목장갑을 낀 부검의가 4명, 꺼낸 장기들의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한명, 부검입회를 요청해 들
어온 유족들, 형사들, 그리고..

‘..그래. 여기가 부검실이구나.’

시신은 총 2구였다. 여자 사체(死體)는 중간정도 진행된 상태였고곧 부검의가 유족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사인을 ‘폐색증’ 으로 확정한다),

남자 시신은 부검을 막 시작한 듯 했다.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멀찍이 떨어져서 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
하면 과연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 인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동네에서 흔히 보는 중년 남성의 몸이다. 차마 ‘어떤 아저씨’라고 부르기 힘
든 상태였다. 머리카락을 제외한 체모를 제거한 상태로 몸통 부위가 열려져 차가운 금속 부검대 위에 누
워 있었다.

몸통이 열려 있었다는 말 그대로 목 아랫부분부터 성기 바로 위까지, 마치 지퍼가 달린 옷을 펼쳐놓은 듯
(나중에 두피를 절개할 때 들어보니 메스로 긋는 소리도 지퍼처럼 ‘부욱!’ 하고 났다) 피부를 양쪽으로 갈
라서 고정해 둔 상황이었다.

칼을 대기 전에 외양을 자세하게 살피는 ‘검안’ 단계는 이미 거친 듯 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서로간의 대화도 없이 기계적으로 장기를 분리해내고 있는 부검의들, 그리
고 축축한 실리콘 같은 피부를 보고 있자니.. 유족들과 형사가 없었다면 그것이 연습용 인형이 아닐까 하
는 엉뚱한 생각을 할 뻔 했다.



** "울컥 쏟아지는 눈물...두개골 절단하는 톱소리" **


그림으로만 보던 장기들이 눈앞에 하나씩 들어올려지고 있었다. 심장, 폐, 간, 위장...심장이 있던 자리,
목 부근에서 국자로 고인 피를 떠서 버렸고, 간에서는 번들거리는 윤기가 났으며, 떼어낸 위장을 기울이
자 며칠을 담겨있었는지 모를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저것이 과연 내가 인사하고, 마주치고, 싸우고 하던 ‘사람’ 일까. 저게 과연 살아서 밥을 먹고, 사랑을 하
고, 가슴 터지게 뛰어보던 ‘사람’ 이었을까.

계속 말이 없던 부검의가 유족을 향해 한마디를 툭 던진다.

“욕조 밖에서 사망했다고 하셨죠?” “네? 네..”

초점이 흐려져 멍하니 자기의 아버지였을, 또는 형이나 삼촌이었을 시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
며 대답한다. 내 가족이 저 금속대 위에서 발가벗겨져, 아니 시쳇말로 ‘배를 째고’ 누워있는 나를 보고 있
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몸속을 비워내고 이젠 두개골을 열 차례. 북! 부욱! 한쪽 귀에서 정수리를 지나 반대쪽 귀로..메스를 움직
인다. 그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뭘 하는 건가 했더니..두개골이 잘 드러나도록 이마까지 피부를 젖
히는 것이다.

그 다음, 톱으로 정수리를 힘주어 썰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옆에 있던 인턴 몇 명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딱’ 소리를 내며 두개골 조각이 떨어지고 회색의 뇌가 보인다.

"브레인(brain), 1385."

한 인간의 뇌가 마치 호두 속을 긁어낸 것처럼 두개골에서 분리되어 차가운 저울 위에 그렇게 얹혀 있었
다. 어떤 존재를 살아가게 하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는 말은 단지 ‘무게가 1385g’이란 것, 그것뿐이
다.

사진을 찍고, 장기들의 무게를 재고 나면 다시 피부를 봉합하는 일이 남았다. 조금씩 조직을 떼어낸 부분
이 다시 주인의 몸속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 뿐. 이미 생명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는 사체
에 불과한 것이다.

더 이상 각종 장기들이 제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플라스틱 대야에 담겨져 있던 그것들
이 ‘철퍼덕’ 하고 뱃속에 쏟아질 땐 울컥 하는 심정이었다.

살을 지탱하는 뼈를 얹고 굵은 실로 벌려져 있던 피부를 모아 꿰매고 나면 그들이 낱낱이 조사했던 시체
가 이제 영정사진을 두고,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고인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부검은 모두 끝이 난다.

부검실을 나와 이동하면서 각종 장기를 보존액에 담궈 놓은 병을 지나게 되었다. 혈관이 터진 부분을 화
살표로 표시해 둔 것, 노란 지방이 잔뜩 쌓여 비대해진 심장, 암세포가 시멘트처럼 붙어있는 간(특히 간질
환은 말기가 아니면 거의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등등..

** "최선을 다해 살아 움직이는 것, 부끄럽게 살지 않는 것" **

‘아기들’이 옆의 병에 있었다. 6주째부터 34주된 태아까지..엄마가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더 이상 살지 못
한 아이들이었다. 특히 가장 큰 아이는 죽기 직전의 찡그린 표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낙태라는 것, 수술용 가위로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12주째) 아이의 목을 자른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이유
이든 간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슬퍼해야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땐 눈이 이미 많이 녹아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부검에 입회하지 못한 듯한 어느 유족
이 욕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사연의 시신이 있을 봉고차가 막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기자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라도 다른 정보를 얻을 것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덕분에 이렇게 자세하다면 자세한 참관기를 남기게 되었지만 실상 내가 얻은 것은 이런 기억보다는 앞으
로 살아갈 내 자신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인 것 같다.

예전부터 내 좌우명들 중 하나는 ‘언제 죽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자’ 였다.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모두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 최선을 다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곳 국과수 비공개 부검실. 이번에 본 시체는 외상 하나
없는 단정한 모습이었지만 훗날 진짜 기자가 되어서 취재를 나가면, 또는 진상취재를 위해 여길 다시 오
면 이보다 훨씬 더한 사건현장들을 보게 되리라.

아마도 그때 나는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아니면 그 이상의 기삿거리를 찾아내
기 위해 지금과는 또 다른 태도로 임할 것 같다. 그때까지 내가 나와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살 수
있길 바란다.

첨언한다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메스를 잡고 '죽은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위해 애쓰던 국립과학수사연
구소 부검의의 냉정하지만 날카롭게 빛나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노컷뉴스 박재주 인턴기자 nocutnews@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