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세번 읽는중인데 워낙 재미있어서 그중 일부를 지인께 보여주기위해
타이핑을 쳐봤는데, 쳐놓고보니 그냥 놔두기는 아까워서
레임에도 올려봅니다.






'성지'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두 개의 세력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투를 반복했다.
적을 근절해 성지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것 이 양측의 소원이며, 따라서 더 이상 타협이나
교섭의 여지가 없다.
대립의 뿌리가 너무나 깊어 평화적인 대화란 도저히 실현될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업신여기며 틈만 있으면 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양 세력이 자웅을 겨루기 위해 '성지'에 집결했다.
일촉즉발의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는 양군의 병력은 일개 보병 소대에
필적하는 숫자였다. 소규모이긴 하나, 이런 종류의 전장에서는 이례적
이랄 만큼 대병력이다.
'성지'.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놀 이 터를 사이에 둔 형태로 양군은 대치
하고 있었다.
한쪽은 센가와 초등학교 5학년 3반 남학생을 중심으로 한 30명.
한쪽은 시바사키 초등학교 5학년 1반 및 4학년 우지로 편성된 32명.
양군 다 완전무장 상태다.
주 장비는 플라스틱 방망이와 낡아빠진 대걸레, 금 간 플라스틱 양동이,
물풍선 등. 분대지원용 중화기로서 로켓 불꽃과 폭중, 딱총 등도 실전배치
되어 있다.(사족으로 금속방망이와 짱돌 등은 쌍방이 전멸할 위험이 있으
므로 조약에 따라 금지되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양군의 전투력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그럼에도 쌍방
의 지도자는 둘 다 적의 전력을 얕보았으며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대단히 좋지 못한 징후였다.
20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대전쟁들은 이러한 적 전력에 대한 과소평가와
오산이 발단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은 당초에 그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거라고 믿었기에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저항은 예상 밖으로
끈덕졌고, 결국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은 뜻밖에도 4년이나 계속되었으며, 그
러는 사이에 몇백만이나 되는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한 역사적 교훈도 헛되이, 초등학생들은 놀이터를 두고 어리석은 인류의
역사를 반복하려는 것이었다.
양군의 지휘관이 최후 통첩을 전달했다.
"얼른 꺼져, 똥싸개 놈들."
"늬들이나 꺼져, 오줌싸개야."
지극히 정통적인 아동 용어를 사용한 의례적인 권고.
그 시점에서 분쟁 당사자 62명은 놀이터에서의 군사적인 긴장이 돌이킬 수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 사이로 습기 찬 바람이 불었다. 어디에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떨어
진 도로에 세워진 크레페 장사 트럭이-잇츠 어 스몰 월드-라는 곡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침묵을 깨고-.
"......해치워!"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양군이 격돌했다.
대나무 빗자루와 화판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고대 그리스의 밀집형처럼 정연하게 늘
어서 돌진한다. 후방에서는 덩치 작은 병사들이 물풍선과 폭죽을 소나기처럼 집어던진
다.
교묘한 전술적 응수는 처음뿐이었다. 전투는 금세 혼전 양상을 띄었으며 무질서한 주
먹질과 격투전으로 돌입했다. 무시무시한 함성과 폭죽과 딱총 폭발소리가 난무한다.
"맛 좀 봐라!"
"아야, 코피 났다."
"돌려줘, 도둑놈아-! 내 팬티 돌려줘-."
사방에서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달아나는 자, 울음을 터뜨리는 자, 여럿
에게 의복을 강탈당하는 자가 속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