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과 비슷하고, 반말로 썼으나 양해 바랍니다. 두서도 없는데다 다 쓰고 보니 어디에서 본 것 같기도...쩝.)

- [그라나도 에스파다(이하 GE)]에 대한 해외 유수 웹진들의 평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Sword of the New World의 런칭 덕) 음악이나 그래픽 부분은 공히 최고급 게임이란 평가를 받지만 게임성 분야(Gameplay)는 50점을 못 넘기고 총 평점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주범이 된다. 강점으로 내세운 MCC나 자동전투모드는 평론가들에겐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일뿐. 지금까지 세 군데 평점이 올라왔는데,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 IGN의 평론가가 GE를 평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It's MMO”라는 구절이 있는데, 좀 이상하지 않나? 왜 MMORPG라고 하지 않았을까? ‘무슨 내가 오토프로그램이나 작업장 노릇을 하는 것 같았다’는 언급으로 보아 MMO-Arcade, 혹은 MMO-Action을 쓰려다 ‘아직 없는 단어’이고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기는 게임이라고 MMO라 눙친 것 같다. 이 생각에 이르니...도대체 ‘한국산 MMORPG’중에 진짜 MMORPG라 칭할 수 있는 게임이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라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아마 레벨 업이나 아이템 획득에 광분하는(혹은 광분하도록 조장하는) 게임이 계속 나온다면 앞으로 서구시장 진출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할 것 같다. 분명 그들은 우리 게임들을 한국형 MMORPG라고 부른다. 이건 '그저 때리고 부수는게 끝없이 되풀이 되는 게임'을 지칭하는 말로 자리잡힌 것 같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MMO-RTS/ MMO-Arcade / MMO-Action으로 당당하게 신 장르를 개척하며 커밍아웃 하는게 어떤가?

- RPG는 ‘현실과 다른 새로운 나’를 창조하고 그 삶을 이끌어가는 게임 장르라고 본다. 이건 원래 RPG의 뿌리인 보드게임의 특성에서 유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RPG게임의 본질적 특성을 좁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즉 우리가 RPG라는 게임 장르에 대해 일본 RPG의 영향을 받아 ‘성장’, 그러니까 레벨 업이나 아이템 획득에만 초점을 맞춘 기형적 인식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 핵 앤 슬래시(때리고 부수기)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 그리고 일순간의 허영심은 MMORPG의 재미에 있어 주가 되어선 안된다. 이는 RPG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보드게임이라면 끝까지 때리고 부수는데 재미가 있을까? 잘났다고 나대면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판이 깨질 수도 있고, 마스터가 신의 의지를 가하여 약하게 만들거나 쫓아냈을 것.) RPG는 ‘새로운 나’,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나'가 '끝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가는 즐거움을 제공해야한다. MSX의 명작 '로도스섬전기'가 실제 보드게임의 결과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 게임의 마스터는 상상력과 기획력만으로도 무한한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 그러나 국내 게임산업 자본과 유저들은 이런 때리고 부수는 게임, 아이템 경쟁 게임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때리고 부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나아가 중독되고, 캐릭터 성장을 위한 무한 접속과 아이템 경쟁 속에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한국 게임계에 일깨워 준 것은 디아블로2였다.

- GE는 그런 자기 분신 구현으로서의 RPG라기 보다는 200유닛까지 움직일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하다고 본다. RTS의 특성이 강하다. 화려한 코스튬은 배틀넷 래더의 별 다섯 개와 엄청난 승수를 보는 것 같다. 강점으로 내세우는 사진찍기, 포즈 취하기 기능도 일종의 오마케 같다. 나아가 엄청난 몹들을 베며 정신이 없어지는 걸 보면 Action의 성격도 강하다. 콕 찝어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다.

- 어제 인터넷 뉴스를 장식했던 ‘세컨드라이프(secondlife.com)’야말로 게임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진짜 MMO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GE가 아무것도 아닌 MMO로 치부된 수치와 달리...


* 그런 의미에서 하큐횽의 ‘세컨드라이프’에 대한 평을 한 번 듣고 싶다. 이건 게임인가? 게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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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 GE 비판 - RPG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해 허덕이는 콘텐츠

- 흔히 GE를 콘텐츠가 부족한 게임이라 하는데, 이는 좀 불분명한 말이다. 물론 맵이나, 퀘스트나, 코스튬이나 아이템 같은 면에서라면 분명 GE는 콘텐츠가 (EVE온라인과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풍부한 게임이다. 그러나 GE에 부족한 콘텐츠라면 그런 가시적,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게임의 재미’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논해야 할 것 같다. 때리고 부수면서 캐릭터들을 성장시키고 나면 좀 심하게 말해 ‘더 이상 뭘 해야할지 공허한 게임’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개척을 할 것이냐, 희귀한 아이템을 획득할 것이냐...이것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재미’다. 그렇기 때문에 양적 콘텐츠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백 메가의 업데이트를 자주 하지 않고서도 유저가 풍부한 콘텐츠에 만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GE가 본질적으로 부족한 콘텐츠, 그러니까 내용은 무엇인가?

- RPG의 본질적 속성인 ‘가상 사회성’과 ‘치밀하고 끝없이 샘솟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를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으나 이는 ‘정치’나 ‘사회성’에 대한 오해의 산물이라고 본다. 사회가 구성된 다음에 자연히 정치가 생기는 법인데, 정치를 만들고 나면 사회가 자연히 형성된다는 본말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당을 만들거나, 왕당파/공화파를 나누지 않았어도 자연히 사람들이 뭉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스쿼드에 대한 이득을 준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애시당초 ‘혼자 하는 것 보다 같이 게임하는 게 즐겁도록’ 디자인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 함께 게임하라며 내준 스쿼드에 대한 이득은 일종의 마지못해 일해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회사 보너스랄까... 즐거운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함께 하도록 강요함에 지나지 않는다. 함께 하면 즐겁도록,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려면? MCC가 이를 불가능하게 한 주범이 아닌가 싶다. 이미 자기 완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스카우트의 존재로.

- 당쟁은 리니지의 ’혈전‘’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당쟁에 관심 없는 비당원 유저들에게 ‘사회성을 즐기고 싶다면 당에 가입하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당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으면 게임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체제는 일종의 전체주의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당원으로서의 ‘가상 인생’이 과연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를 다 만족시키는지도 미지수다. 당에 가입하지 않고 솔로 플레이를 해도 충분히 게임의 사회성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과연 무엇이 있는가?

- 그리고 왕당파와 공화파를 나눠서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었나? 매일매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모를까, 커다란 스토리에 뭍혀 버려서 전혀 기능을 못한다. 큰 뼈대만 있지, 자잘한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없으면 ‘이야기를 즐기는 재미’가 없다. 작가를 고용해서라도, 아니면 매주 직원들 회의를 통해서 자잘한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구현한다면 업데이트에 대한 강박을 줄일 수 있을텐데... 즉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만들어내는 게임마스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WWE가 작가를 수십명 고용해서 시나리오를 짜지 않았다면 단순한 기믹 구도 속에 제대로 짜고 치지도 못하고 망하고 말았을 것임을 잘 알지 않는가?

- 그리고 MMORPG 게임속의 캐릭터는 유저의 새로운 나, 즉 분신이어야 하는데, GE의 강점이라는 MCC는 오히려 이를 불가능하게 했다. GE의 가문 시스템은 유저를 ‘당주’로 만들었고, 캐릭터들에 애착은 있어도, 캐릭터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 되게 하는 ‘가상의 삶’을 체험하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GE의 캐릭터는 유저의 분신이 아니란 말이다. 해외 유저들의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가 ‘얼굴이 다 똑같은 캐릭터’, 다시 말해 ‘캐릭터 커스터마이제이션’ 기능의 부재였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 이런 것 때문에 하큐횽이 ‘GE'를 실패한 게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형 MMO에 익숙해진 전 세계의 GE팬들은 어떡하나. 힘내서 더 재미를 찾아줘야지. 그런 경험이 차기작 구상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GE를 이대로 방치하면 차기작 내봤자 WOW 아류작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만약 실패하지 않을 게임을 만들어서 퍼블리셔 돈벌게 하고 싶으면 대박 히트를 친 판타지 소설을 게임화하는 걸 권한다. 탄탄한 이야기에 디테일까지 살아있고, 열성적인 독자들이 원작에 대한 충성심으로 게임을 할테니. 그러나 [드래곤라자]이후 게임화할 판타지 소설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