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의 방향


1. 세션.

에반은 도둑(Theif)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지나치지
않을만큼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도둑이다. 그가 노린 목표는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었으며, 가정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일상생활과
직업과의 괴리 역시 훌륭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관리기술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뒷세계에서는 의뢰인과의 약속을 잘 지키기로도 소문이
파다한 인물이다.
그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도(Knife)와 음식을 너무나 좋아한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오늘 밤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대저택에 잠입할
계획을 세웠다.

밤.
에반은 대저택의 외벽을 타고 올라가, 커다란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그는 1층의 창문을 통해 들어갈 것이다.
그는 창문이 잠겨있는지 조사한 후, 열려있음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깜깜한 밤이었고 불빛이 없었기에 창문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반은 조심스럽게 창문의 문틀을 넘는데 성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에반은 가방에서 초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곳은 주방이었다.

철그럭.

문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두런두런 이야
기를 나누는 소리였다. 경비병이다. 에반은 황급히 초를 끄고 식탁아래 숨었다.(!)
곧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비병이 지나갔다고 판단되자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주방을 둘러보았다.

'훔쳐갈만한것이 없나?'

의뢰인은 서류를 원했지만, 그는 재물을 원했다. 좋은게 좋은거지.
은으로 만든 식기구는 꽤나 좋은값에 팔릴것이다.
그는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게끔 신경쓰면서 찬장과 서랍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에반은 두개의 은제 나이프와 약 300그램 정도의 후춧가루를 챙길수 있었다.
후추는 꽤나 비싼값에 팔리는 향신료다. 실크로드가 발견된지 수년째지만 아직도
이런 향신료는 일반인에겐 멀고 먼 당신이다. 결국 비린내를 감수하고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것이다.
에반은 더 찾아봤지만 나오는것은 없었고, 곧 주방을 나가기로 했다.

'식량을 저장하는곳은 따로 있나보군.'

요리하는곳, 식량을 저장하는곳, 식당이 따로 분리되어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이렇게 살지는 못할것이다.
에반은 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오른쪽으로 기다란 복도 끝에 계단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양옆으로 갈라지는 T자
복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복도엔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만큼 벽걸이 램프가 켜져
있다. 노출되면 상당히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어쨋든 그는 꺾어지는 복도로 가기로 했다.
T자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뭔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긋하고 구수한 냄새가 난다.
음식이었다. 아직 그것이 뭔지 알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에반은 그것에 유혹당하고
있었다.(!)

'참아야돼! 지금은 일이 우선이야.'

하고 생각했지만, 결국 유혹에 굴복. 그는 식당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것은 큰 냄비속에서 약한불에 보글보글 끓고있는
양고기 스튜였다. 에반은 조심성있게 주위를 살펴본 후,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스튜에 그 비싼 후춧가루를 몽땅 쏟아부어 다 먹어버렸다. 쨍그랑 쨍그랑 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좀 났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족감은 있었지만 배가 너무 불렀기에 제대로 일할수 있을것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해야한다. 에반은 비어버린 냄비를 보며 시간을 지체한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건진것은 있었다. 냄비 옆에 하인이 먹다가 남긴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소세지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조용히 식당을 나와 계단으로 가기위해 복도를 걸었다.

"월!!"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개짖는 소리였다.
계단으로 향하는 복도의 끝에있는 창문 너머로 개가 짖어대면서 점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반은 되도록 조용하려고 애쓰면서 계단의 그림자 속으로 황급히 숨었다.(!)
개가 무슨 낌새를 챈것일까? 개가 다시 짖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경비병이나 초병이
나타날것이었다. 개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미약한 소리를 내고있었다.

'야단났네..'

그는 손에 쥔것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할지 생각했다.

"누구냐!"

경비병이다!
에반은 그림자 속에 숨어서 경비병이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램프의 불빛에 커다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의 무시무시
한 외모를 가진 사내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갑자기 코를 벌름거렸다.
뭔가 낌새를 챈 모양이다. 경비병은 사방을 살피면서 천천히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기회는 한번 뿐인가.'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에반은 되도록 조용히 은제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주방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흡!"

에반은 짧게 숨을 내쉬며 나이프를 던졌다.(!) 그것은 정확히 경비병의 목을 꿰뚫었다.
팟! 하고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목을 뚫린 경비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러나 경비병은 죽지않았다. 휘청거리던 경비병은 나이프가 날아온 방향으로
롱소드를 크게 휘둘렀다.

"퍽!"

에반은 날아오는 롱소드는 간신히 피했지만,(!) 그의 발길질까지 피할수는 없었다.
가슴에 정통으로 꽂힌 그의 육중한 발길질 때문에, 에반은 갈비뼈가 즉각 부러져버린것을
알수 있었다.

"...컥! 컥!"

그러나 경비병은 다시 공격할수가 없었다. 그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에반은 부러진 갈비뼈때문에 기침이 나오는것을 억지로 참으며 죽은 경비병의 시체를
끌어당겨 그림자 속에 숨겨놓았다.(!)
그러나 사방으로 튄 피까지 닦을수는 없다. 이젠 시간이 없었다.

"크르르...크르르..."

밖에서 개가 한바탕 짖기 직전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떻하지? 에반은 이 상황을
타개할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그가 손에 쥐고있는건 소세지였다.

소세지를 창문밖으로 던져서(!) 개가 다시 짖는걸 멈추게 만든 에반은, 계단을 올라가
이 대저택 주인의 방문 앞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드르렁... 드르렁..."

하얀 잠옷을 입고 배가 숨을 쉴때마다 들썩거리는 뚱뚱한 늙은이가 침대위에 누워
있다. 찾았다. 에반은 부러진 갈비뼈때문에 통증이 심했지만, 조용히 걸음을 걸어
늙은이의 침대와 바짝 붙어있는 작은 서랍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잠겨있다.'

그는 그러나 도둑이었다. 정밀설계된 자물쇠도 도구와 시간만 충분하다면 열어버리는
인물이었다. 이런 서랍의 잠금장치 쯤이야. 에반은 바지 주머니에서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꼬챙이를 꺼내 들었다.(!)

"...으음...?"

이상한 소리에 에반이 고개를 돌려보니, 노인네가 게슴츠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것이
아닌가! 흠칫 놀란 에반은 눈을 크게 뜨고 노인네를 노려보았다. 잠꼬대인가?
노인네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에반을 쳐다보고있다가 눈을 도로 감았다. 역시 잠꼬대인가?
그러나 곧 노인네가 갑자기 깜짝놀라며 눈을 부릅뜨는게 아닌가.

"누...누구! 헉!"
"제길!"

에반은 노인네에게 뛰어들며 입을 막음과 동시에 목을 졸랐다.(!) 노인네는 팔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에반의 힘이 더 좋다는 이유로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어찌할수가 없었
다. 하지만 소음이 너무 심하다. 침대가 덜썩거리며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에반은 주머니에서 은제 나이프를 꺼내 힘껏, 그러나 조용히 노인네의 심장에 꽂았다.(!)

"..."

이제 좀 조용하군. 에반은 다시 서랍을 열기위해 꼬챙이를 이용했다. 덜컥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서랍이 열리고, 그는 서류를 되찾을수 있었다. 임무는 완수되었다.(!)
그러나 에반은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임무는 완수했지만...(!)
그가 챙긴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비록 의뢰비는 받겠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그것은 도둑으로써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만한 규모의 저택이라면 보석을 숨겨놓는 곳이 있을 것이다.'

에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석따위의 귀중품은 주인이 관리하는것이 이반적이다.
그렇다면 그의 침실인 이곳 어딘가에 뭔가 단서가....
마침 그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침대밑으로 삐져나온 길다란 끈.
정말 딱 잡아당기기 좋을만큼 삐져나와있는것이 아닌가. 에반은 뭔가 발견했다 싶어서
길게 생각하지 않고 끈을 당겼다.(!)

덜컹!

갑자기 바닥이 열리며 에반은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것은 보석과는 전혀 상관없는,
함정이었던 것이다.

"...흠!"

그리고 그가 떨어져내린 곳은, 경비병 사무실이었다. 슈릉! 슈릉! 슈릉! 카드놀이를
하고있던 경비병들은 놀라더니 곧 분노에 찬 얼굴로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에반은 움직일수가 없었다! 위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부러진 갈비뼈가 뭔가
내장을 손상시킨것이 분명했다. 손끝하나 까딱할수가 없었다.

"도둑이군. 죽어!"

경비병의 롱소드가 허공을 가르며 에반의 목을 꿰뚫었다.



2. 상호작용.

갑자기 이상한 소설이냐고 생각하실듯 하여 약간의 보충설명을 드립니다만...
저것은 소설이 아닙니다. 제 친구 Y 모 군과 함께 플레이했던 TRPG 의 세션입니다.
실제로 저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수한 분기가 존재하며, 그렇게 되도록 할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플레이했습니다. 마스터는 제가 했구요..
에반이 죽는걸로 플레이가 끝나버리자 제 친구 Y군은 통탄해 마지않더군요.
인내심(지능) 굴림에서 지지만 않았어도 스튜를 안먹었을 것이고, 그럼 개가 냄새를
맡고 짖지도 않았을것이다. 순전히 Y군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끈을 당겨버려 결국
캐릭터가 죽어버린 상황에 대해서는 제탓을 하더군요.
왜그리 당기고싶게끔 설명하냐며.. -_-
위 글중 (!) 가 붙어있는 곳은 '조용히 걷기' 스킬 굴림이라거나, 공격을 피하거나,
심장에 나이프를 꽂는 등, 에반이 직접 행동하도록 Y군이 선언했던 일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먼저 삽입한 것은, 바로 RPG 의 정의를 먼저 이야기하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위 세션에서 알수있듯이, 이것은 도둑의 이야기입니다. 전투 일색의
박진감도, 뭔가 화려한 기술도 없지만 도둑질에 알맞는 긴장감은 충분히 조성할수
있습니다. 재미있었죠. 그리고 그런 긴장감이 도둑에 걸맞는 RP 였던 겁니다.

물론, 다음번 세션에는 Y군은 도둑답게 아무도 죽이지 않고 임무에 성공했으며,
그에따라 획득한 CP(스킬포인트)를 가지고 더 도둑질 잘하는 캐릭터를 육성시킬수
있었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는 이쯤해서 접어두고 본론을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위 세션에서 알수있듯이, Y군은 '도둑질' 이라는 RP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킬포인트를
얻어, 더 도둑질 잘하는 캐릭터를 키웠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수단과 목적의 차이입니다.
Y군이 키운 도둑놈(!)에반은, '도둑질을 더 잘하기 위해' 육성되었습니다.
현재 MMORPG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육성을 잘하기 위해' 사냥합니다.
수단과 목적이 완전히 정 반대인 경우입니다.
무엇을 위한 RPG입니까?
사냥을 더 잘하기 위해 육성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나 똑같은 방식의
클릭질과 스킬질로 몹을 사냥하여, 더 강한(중요한 부분) 캐릭터가 되기위해 렙업을
한다는걸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지만 강하다는것은 '무언가를 더 잘하는' 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오로지 사냥에 특화된 갖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사냥되기 위해
갖가지 몹이 존재할 뿐입니다.
몹이 존재하는 이유는, 캐릭터를 '육성시키기 위함' 이고,
유저는 '캐릭터를 육성시키기 위해' 몹을 사냥하죠.
그럼, 사냥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 '캐릭터를 육성'하겠습니까?

현질을 위해?

현재 MMORPG는 모든 촛점이 '육성' 에 맞춰져 있습니다. 필드엔 항상 몹이 넘쳐나고,
아무 이유도 없이 몹들은 필드를 방황하다 사냥되어 아이템이나 떨구고 사라집니다.
몹이 그곳에 있는 이유도 아무도 모릅니다. 산이 있으므로 오르듯이, 몹이 있으므로
사냥합니다. 오직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
RPG가 역할분담놀이라는걸 인지한다면, '육성을 위해' 캐릭터를 키우는 것과
'역할놀이를 하기 위해' 캐릭터를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것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럼, 현재 MMORPG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바로 유저가 선택할수 있는 폭이 너무나 좁다는 겁니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뭐 대작 평작 졸작 등등으로 평가되는 각종 MMORPG를 살펴봅
시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액션 RPG라는 겁니다.
턴제 RPG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클릭하면 즉각 반응하는 액션 RPG입니다.
끝내주는 타격감이라거나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 게임들이 많습니다.
타격감의 경우, 클릭하자 실감나는 퍽! 소리와 함께 몹들이 나가떨어집니다.
분명히 말해서, 그건 '액션 RPG' 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캐릭터가 '액션' 을 하지
유저는 단 한번의 클릭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한 '액션' 입니까?
그건 '유저가 캐릭터로 펼치는 액션' 이 아니라, '실감나는 화면을 위한 액션'인 겁니다.
액션을 위해 캐릭터는 육성되는것이 아니라, 더 실감나는 화면을 위해 캐릭터가 육성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각종 아이템과 추가되는 필드맵, 새로운 몹, 스킬등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새로운 전투화면' 을 위해서 말이죠.
문제점은, 이런 '새로운 전투화면' 은 시간이 지나면 곧 식상해져, 개발자들은 또다른
것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추가되고,추가되고,추가되죠.
그리고 새로운 전투화면에 유저들은 눈길을 주고, 또 식상해져버려 다시 추가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
왕가의 의뢰를 받아 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해 구성된 용사들은, 반역자가 도망친 깊은
굴 속으로 들어갔다. 곧 앞이 벽으로 막힌다. 그중 호기심 많은 캐릭터가 벽에 걸린
횃불을 빼어 들자, 바닥이 푹 꺼지면서 그들은 모두 밑으로 떨어졌다.
빈 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사방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며, 그들이 떨어졌던 천정은
닫혀버렸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기 시작하고, 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때, 한 캐릭터가 비명을 지른다. 으악!
그의 가죽갑옷이 녹고있었던 것이다.
뭔가가 물속에 있다!
이어져 터져나오는 비명소리, 그들은 곧 패닉상태에 빠졌다.
강력한 산성기운으로 피부가 벌겋게 타들어가는 캐릭터도 있었고, 그들은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대체 물속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

위 글은 제가 준비했던 트랩입니다. 제가 오리지널로 제작했던건 아닙니다. 어느분이
제작했던 트랩을 제가 가져다 쓴거죠. 위 글에서 물속에 뭐가 있었는지 맞추신분도
계실것 같습니다만, 정답은 슬라임입니다. 저 슬라임 한마리가 플레이어의 HP를 상당수
깎아버리는 대단한 역할을 해 줬습니다만, 결국 마법사가 '라이트' 마법으로 물 속을
비추고 하는 바람에 퇴치되었죠.(플레이어가 초보들이라 대단한 몹을 풀어버리면
전멸할까봐 슬라임으로 대체했었습니다만, 원래는 머멘입니다. 아주 강력한
몬스터죠.)
보통 슬라임은 칼질 몇 번이면 그냥 죽습니다. 산성액으로 먹이를 녹여 먹고, 산성액으로
공격한다는 설정의 단세포 비슷한 생물이라서요. 핵이 파괴되면 죽어버리죠.

이 경우, 지능도 없고 정말 하잘것없는 단세포 몬스터인 슬라임 한마리라도
캐릭터들에게 충분히 긴장감을 줄수 있는 몬스터로 재탄생되었다는 것에 촛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어쨋든 위의 예는, 트랩이라는 환경과 몹, 플레이어 캐릭터들간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일반적으로 MMORPG는 육성을 위해 몹을 사냥하고, 더욱 현란한
게임 화면을 위해 몹을 사냥하고, 새로운 필드맵으로 이동합니다. 그곳에 있는것은
나무, 풀, 땅, 배경들 뿐이죠. 현재 MMORPG는 '액션' 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 칼럼의 마지막에서도 말했듯이, 현재 유저들의 수준은 높아져만 가는데
온라인게임의 수준은 더디게 상승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목표하는것은 언제나 사냥일
뿐이고, 현란한 게임화면을 위한 그래픽일 뿐입니다.
현재 하드웨어로 이미 3D 그래픽은 한계에 다달았다고 합니다. 하프라이프 2라거나
에버퀘스트 2 같은건 이미 절정에 다다르고 있죠. 실사라고 해도 믿어줄거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란한 그래픽의 홍수 속에서 유저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할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적습니다. 국내 MMORPG에선 유저가 할수 있는것이 별로없죠.
오직 하드웨어의 대단한 성능이 '그래픽' 에만 거의 치중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실상 게임내의 깊이라거나 내용 등은 언제나 비슷하고, 똑같고, 어디서 한번 해본듯한
느낌 뿐이죠.

그러나 만약, 나무, 풀, 땅, 배경들이 몹과 함께 유저와 상호작용한다면?
위의 트랩도 현재 하드웨어로 충분히 구현가능한 수준입니다 좌표를 3차원으로 이동하며
자유롭게 물속을 떠다니는 슬라임? 4D 복서 시절에야 그것이 컴퓨터로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하드웨어를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활용할수 있고, 유저들은 그런 하드웨어의 성능
속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운 '액션' 을 펼칠수 있는겁니다.
오직 숫자가 허공으로 날라가는 그 데미지와 스킬의 사용을 보기 위해서만 하드웨어가
사용되고 있는 현재, 이런 일들은 단지 망상에 불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설령
펜티엄 6, 7이 나오고 AMD 10000 정도가 나와서 진짜 사람처럼 생긴 녀석이 3D그래픽
이라며 컴퓨터 속을 어슬렁거린다 하여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사냥일색, 아이템 일색의
RP 에 오직 육성만을 위한 사냥 시스템, 뽀대를 위한 인챈트 시스템 등을 한결같이
유지해 나간다면, 온라인 게임 강국이라는 자리를 언제 어느 국가에게 내어줄지 정말
모른다고밖에 생각할수가 없습니다.

현재 플레이어 캐릭터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은 오직 '몹' 뿐입니다. 지금부터는 플레
이어 캐릭터가 상호작용할수 있는것은 '게임 내 모든것' 이 되어야 합니다.
몹에게 얻어맞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뒤로 튕겨져 날라가 부딪힌 '나무가 부러졌다' 라든지,
무식하게 힘좋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휘두른 도끼에 찍힌 '바위가 쪼개졌다' 라든지.
물론 이것은 단순한 예입니다만.
그리고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이유와, 이를 위한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육성을 위한
사냥'에서 벗어나 '상호작용을 위한 RPG' 라고 말할수 있을겁니다.



3. 요금.
게임 제작사와 유저는 지금 현재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게임 제작사는 땅파서 게임을 개발하는것이 아닙니다. 정말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죠.
그리고 그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기 때문에 무리한 모험을 할수가 없는겁니다. 그들에게
게임은 돈을 버는 수단입니다. 언제나 회사의 이윤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들은 이미 성공한 게임을 벤치마킹합니다. 그 결과, 지금 현재 많은 유저가 내심 느끼고
있다시피 언제나 비슷한 게임들 뿐입니다.
왜그럴까요?
유저가 현금결재에 심각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때문입니다. 이 역시 유저 스스로에게
딜레마를 주고 있습니다. '게임 내 아이템' '게임머니' '고레벨 계정' 은 유저가 '갖고싶다!'
고 느끼고, 그것이 좋고나쁨을 떠나서 실제로 구매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정
결재에는 웬지모르게 '아깝다!' 고 생각하는겁니다.
왜그럴까요?
바로 오픈베타때문입니다.
게임 제작사는 언제나 오픈베타를 마케팅으로 이용합니다. 적어도 지금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오픈베타를 이용한다는 자체가 유저에게는 특전이나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지금현재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픈베타때까지만 하고 유료되면 계정이랑 아템팔고 접어야지. 그때되면 다른 게임이
오픈베타를 시작할테니까!"

오픈베타로 인해 많은 유저들을 모을수 있었던 온라인 게임이, 바로 그 오픈베타로 인해
현금결재를 직접 하는 유저의 숫자를 점점 줄어들게 만들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온라인게임은 '공짜로 즐겨서 몇달뒤 유료되기 전에 팔면 용돈까지 벌수있는 별천지'
나 다름없습니다. 즐기면서 하는 알바 비슷한겁니다.
이건 인식을 잘못 가져버린 유저에게도 물론 잘못이 없다고 말할수 없습니다만,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버린건 개발사 스스로였다고밖에 판단할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픈베타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발사는 회사이고 회사는 이윤을 남기는 집단
인것을 고려했을때, 그것이 반드시 옳고 회사에 이윤을 주었던 마케팅이었다고 판단하기는
정말 어려운겁니다. 오픈베타가 가진 축복과도 같은 '구름같은 유저수' 와 마찬가지로,
오픈베타가 개발사에게 주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도 자각해야합니다.

"오픈베타때 정말 재밌게 했었는데... 다시 무료되면 할텐데..."

이런 생각을 유저에게 심어놓은것은, 무결제주의를 가진 유저에게도 잘못이 없지 않습니다만,
개발사들이 오픈베타라는 마케팅을 너무나 난발했던 잘못도 있습니다.

그럼, 유저들이 가진 딜레마는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유저들이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싶다' 는 욕구와 '공짜로 즐기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유저들이 선택할수 있는 폭을 줄여버리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충분히 만들수 있는 신생 개발업체라 할지라도, 유저가 오픈때만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유료되자 결재도 안해주고 우르르 빠져나가버리면 그 회사는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본전치기나 하던가 말이죠. 그건 결국 개발의욕의 감퇴로 표출될수
밖에 없는겁니다. 아직 뭔가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들에게 그 가능성을 더욱
펼칠수 있도록 댓가를 주는것이 마땅합니다.

당신이 온라인 게임을 하며 요금을 결재하는 것은, 게임을 즐기고자 결재하는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스스로 더 재밌는 게임을 미래에 하기 위해 지금 개발비용으로 투자하는 것'
입니다.

한국의 개발사들은 이미 수년째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왔고, 프로페셔널들입니다.
그들에게 충분한 돈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세계수준에 올려버릴 대단한 게임을 만드는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유저의 인식이 게임 개발의 다양성을 대폭 줄여버리고 있고, 개발자들에겐 의욕의
감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런 환경 속에서 게임제작업체는 '돈을 많이 번 게임' 을
벤치마킹한 게임밖에 만들어낼수가 없는겁니다.

더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고싶습니까?

그럼 정말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게임업체에게 투자하세요.
그럼 일년 후, 이년 후, 당신이 꿈꿔왔던 게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두시간째 두드렸더니 두통이.... -_-;
* *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0-30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