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정재숙]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 김영세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236쪽, 1만2000원


디자이너 김영세(55.이노디자인 대표)씨는 나이를 잊고 산다.
아니, 나이를 잊고 살려 한다.
디자이너는 때와 곳에 따라 고무줄 나이를 지녀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장난감을 디자인할 때는 너댓 살 어린이가 되고,
노인용 지팡이를 만들 때는 일흔 넘은 노인으로 변신해야 한다.
'바늘에서 우주선까지' 디자인하려면
세상과 사람을 다 품는 예술가의 경지가 필요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생각을 그리는 남자' 김영세씨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냅킨 쪼가리에라도 재빨리 구상을 스케치한다.
그가 4년 전에 펴낸 '12억짜리 냅킨 한 장'은 세계 디자인계에 우뚝 선 자신의 치열한 디자인 삶을 담아 화제가 됐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가 격찬했다는 아이리버를 디자인한 그의 철학은 21세기가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임을 자신한 예감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생각도 바뀌었다.

'디자인은 기술이다'에서 시작해
'디자인은 상술(商術)'이라 이해했다가
'디자인은 인술(人術)'이라 깨달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소비자를 100% 만족시키는 디자인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트렌드를…'는 김영세씨가 이렇게 '디자인은 인술'이란 깨달음에 이르게 된
자신의 체험과 일화를 곁들여 내리는 디자인에 대한 서른아홉 가지 정의다.

'디자인이란(Design is…)'
상상이고, 차이를 만드는 것이며, 편안한 공간 창조이고,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멋진 커뮤니케이션이고, 아이덴티티를 창조하는 것이며, 생명을 구하고 남을 돕는 일이다.

한마디로 삶 자체가 디자인이고 나날을 혁신하며 사는 우리 모두는 디자이너라는 것이 김씨의 결론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남의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해준다는 뜻의 중국 고사성어 '온후지정(溫厚之情)'으로 나타낸다.
그에 따르면 이 말은 21세기 최고 부가가치를 실현해줄 디자인의 목표를 상징한다.
'중후장대(重厚長大)'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한다.
기술과 마케팅만으로는 부족한 고객만족 1%를 디자인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멋진 디자이너가 되는 그만의 비결이 궁금한 이에게 이 책은 지침서이자 본보기가 된다.
'누구나 보는 것을 보되,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생각을 해내야 한다'
'와이 낫(Why not?)에서 출발하라' 같은 경구가 있는가 하면,
'블랙박스' '디자인 게이트' '적절한 디자인(right design)' 'D(Digital)+D(Design)=D(Dream)'처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단어도 튀어나온다.


198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창업한 뒤 그가 디자인해 히트한 제품의 사진과 뒷얘기를 바탕에 깐 글이라 술술 읽히고 설득력도 높다.
김영세씨의 디자인 정의를 보고 나서 스스로 '디자인이란?'답할 수 있다면 당신도 벌써 이노베이터, 혁신가다.